“광주의 ‘최초 이야기’ 추적” 향토지리학자의 호기심 천국

정대하 기자 2024. 3. 1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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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광주최초’ 전 3권 낸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 김경수 소장 제공

김경수(65) 향토지리연구소장은 ‘최초’에 관심이 많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볼 때마다 그 뿌리를 궁금해하며 탐구한다. 저서 ‘광주 땅 이야기’(2005) 개정판을 내려고 했던 그는 “남이 썼던 글을 또 인용하고 다시 쓸 것이 아니라 뿌리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 광주광역시를 사례로 실제 생활과 밀접한 주제를 선정해 최초 탐구의 길에 나서게 된 계기였다.

첫 궁금증은 아파트였다. 2013년 귀농해 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전남 담양군 창평면 한옥에 앉아 “아파트는 언제 처음으로 생겼을까?”라고 질문부터 던졌다.

그는 각종 자료를 찾아 사회적관계망 서비스에 ‘광주의 최초 이야기’ 첫 소재인 아파트에 대한 글을 올렸다. “광주에서 처음으로 아파트 시대를 연 것은 계림동 미도(1966)였다. 계림동 505-126에 김태만의 설계로 지어진 3층 27가구 건물이다. 이 아파트는 1973년 전화번호부엔 대지여관으로 나온다.” 광주에 본격 아파트 시대를 연 광천시민아파트는 1969~70년 공영프로젝트로 들어섰다.

`광주최초\' 1~3권.

광주의 최초 추적 소재는 입체교차도, 상수도, 은행, 미인대회, 노래방, 지하철, 조선시대 읍성 등으로 이어졌다. 그의 글을 흥미롭게 읽었던 지역 신문사 관계자가 연재를 제안했다. 그는 2021~2023년 100여 가지의 소재로 매주 최초 추적기를 실었고, 연재 글을 모아 최근 ‘광주최초’(향지사) 1~3권을 냈다. 책에는 2300여장의 사진·지도·표 등 참고자료도 넣었다. 천득염 전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은 “이 책은 고산자처럼 발로 찾아 광주의 지리와 의미를 밝혀 낸 흔적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현장을 탐사하고 토지 문서를 통해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또 사람의 생몰 연대를 찾는 일도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간 고교에서 지리 교사를 하면서 향토지리학을 꾸준히 공부한 게 큰 힘이 됐다. 그는 고려대에서 ‘영산강 수운 연구’ 논문으로 석사학위(1987)를, 전남대에서 ‘영산강 경관 변화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2001)를 받았다. 김정호 전 진도문화원장은 이번 책을 두고 “향토학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보여준 광주 지역사의 보물”이라고 밝혔다.

1940년대 광주 대인동 조선운송 광주지점 직원들. 차종순씨 제공

광주의 최초 기록들은 흥미롭다. 영화(1908), 중화요리(1920년대), 이미용(1926), 다방(1928), 목욕탕(1931), 수영장(1938), 동물원(1971), 지하보도(1979), 입체고가도로(1989), 노래연습장(1992) 등이 언제 광주에 들어왔는지를 탐구했다. 이정록 전 대한지리학회장은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지리적 상상력을 발휘해 광주의 지역성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풀어낸 지역 연구”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광주 옥터는 읍성 안에 있었다. 1872년께 규장각 소장 광주지도에 둥근 담장과 정면 2칸 측면 1칸집 ‘형옥’이 표기돼 있다. 김 소장은 “현 황금동 29번지 일대로 1912년 땅 문서를 열람하니 363평이었다. 1908년 4월11일 설치된 광주감옥에서 한말 의병장들이 유명을 달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옛 광주교도소 사형장 내부. 광주교도소사(2014)

아파트, 영화, 중화요리 등
최초 100여 군데 찾아 글로 풀어
“사람 사물 볼 때 늘 뿌리 궁금
앞으로 더 탐구해 4권도 낼 것”
“광주 지역사의 보물” 호평 나와
지리교사 하며 향토지리학 익혀

광주의 최초 수돗물은 1920년 5월 말께 충장로 일대 439가구에 제공됐다. 1970년 전남 화순에 동복수원지가 생겨 시민들은 영산강 물 대신 섬진강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광주의 최초 스케이트장은 “계림동 경양방죽으로 짐작”된다. 광주의 최초 카페는 광산동 옛 전남매일 옆 ‘제비’(1928)다. 1963년 이후 가장 대중적인 만남 공간은 광주우체국 앞을 의미하는 ‘우다방’이었다.

5·18민주광장 분수대는 1969년 등장한 광주 최초 공공분수다. 전남공론사가 1969년 낸 ‘새전남’ 9월호 표지 사진이 분수대다. 양산을 쓴 시민들이 분수대를 보는 흑백사진이다. 김 소장은 “1971년 2월17일 전남 화순 동복수원지 물이 분수대를 통해 솟아올랐다는 기록 때문에 1971년 준공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고 했다. 광주의 두번째 공공분수는 1970년 광주역 역전 광장 분수대다. 그는 “최초·최신을 육하원칙에 맞게 찾으려 살얼음판을 걸었다”고 했다.

1969년 새전남 9월호 표지. 김경수 소장 제공
광주 민속현장을 찾은 김경수 소장.

그는 ‘최초’를 찾는 길에 다시 나설 참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빠삭하게’ 알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다. 소재도 선정해뒀다. 증권회사를 필두로 복권집, 가구점, 제재소, 모자점, 금은·시계점, 안경점, 완구점, 카센터, 철물점, 골프장, 승마장, 간판집, 가방집, 복덕방(부동산)중개사, 전당포, 저울집, 점술집 등이다. 김 소장은 “우리와 일상을 함께한 곳을 찾아 기록해 4권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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