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직원들, 창업주 기일날 트럭시위 왜 [한양경제]

권태욱 기자 2024. 3. 14. 18: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양why] 11일 故 유일한 박사 53주기 추모일에 본사 앞서
회장·부회장직 신설안 상…소유·경영분리 어긋나
회사측 “글로벌 제약사 발돋움 위한 직제 유연화 조치”

이 기사는 종합경제매체 한양경제 기사입니다

11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유한양행 본사 앞에서 직원들이 트럭시위를 벌이고 있다. 블라인드 화면 갈무리

국내 제약사들의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됐습니다. 그간 주총은 신규 대표 선임이나 연임 안건으로 비교적 조용히 치러졌습니다.

하지만 올해 주총에는 사정이 달라져 일부 제약기업의 경우 시끄러울 전망입니다. 15일 주주총회가 열리는 유한양행과 모자간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미약품은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보여집니다.

먼저 유한양행은 내일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장·부회장 직제 신설을 위한 정관 변경안을 상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직제신설을 놓고 사유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11일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故) 유일한 박사 제53주기 추모식날 서울 동작구 본사 사무실 앞에서는 일부 직원들의 트럭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트럭시위는 유한양행 주주총회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트럭시위를 벌인 직원들은 “유일한 박사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트럭시위를 추진했다”며 “1회 중임 가능한 3년 단임 전문경영인 제도를 회장, 부회장직 신설로 사유화하려는 전·현 사장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분이 아시다시피 유한양행은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의 유지에 따라 경영에서 창업주 일가를 배제하고 공채 출신 사내이사들을 중심으로 한 전문 경영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분 구조상으로도 유한양행은 사실상 주인이 없는 회사입니다. 회사 연관 공익재단인 유한재단이 지분율 15.72%로 최대주주이며 국민연금이 11.98%를 보유한 2대 주주입니다.

이밖에 유한학원이 7.57%, 연세대가 3.7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은 현재 유일한 가문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연세대가 보유한 지분은 유일한 박사가 개인 재산이었던 주식 1만2천주를 기증한 몫입니다. 이들 세 곳은 유일한 박사의 유지에 따라 모두 유한양행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배당금은 모두 공익사업에 쓰고 있습니다.

유한양행 내에선 불문율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같은 직무를 두 번까지만 맡을 수 있도록 한 일명 ‘투텀룰(Two-Term-Rule)’입니다. 사장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상법상 사장 임기인 3년에 한 번 더 연장해 최대 6년까지만 직을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리에 연연하기보다 본인 위치에서 최선의 결과 혹은 회사를 위한 일에 전념하게끔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 유한양행 제공

그럼에도 유한양행이 회장, 부회장 직제를 신설한 것은 회사 성장에 따른 직제 유연화의 조치라는 게 회사측의 입장입니다.

유한양행은 “회장, 부회장 직제 신설은 회사의 목표인 글로벌 50대 제약회사로 나아가기 위해 선제적으로 직급 유연화 조치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회장직에 오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서는 “특정인의 회장 선임 가능성에 대해서는 본인이 (언론)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와 같이 절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택해 이사회를 중심으로 주요 의사결정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이사회 구성원은 사외이사 수가 사내이사보다 많으며 감사위원회제도 등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유한양행의 회장직을 수행한 이는 유일한 박사와 연만희 전 고문 2명뿐입니다.

연 전 회장은 1988년 유한양행 사장에 취임해 5년간 임기를 마치고 1993년에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창업자의 유일한 직계 후손인 유일링씨가 미국에 체류 중인데다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 창업 정신을 이어갈 분이 필요해 유한양행의 최대 주주인 유한재단의 요청으로 회장직을 수락했고 1996년에 은퇴했습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 사장. 유한양행 제공

하지만 유한양행 직원들은 ‘소유와 경영 분리한다는 유일한 박사의 창업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28년만에 부활하는 회장·부회장직 신설이 고 유 박사 유지와 맞지 않고,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과 조욱제 사장이 회사를 장악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직원들이 이 의장에 대해 불신을 갖는 이유는 대부분의 전임 대표이사들은 임기가 끝나면 회사를 떠났음에도 이 의장은 6년간 역임한 후에도 2021년 2월 주총을 소집해 그간 없었던 직위인 기타비상무이사 선임건을 상정해 선임됐으며 이후 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3월 개정한 가이드라인에도 맞지 않다는 의견입니다.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기위해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가 맡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유한양행은 이 의장이 장기간 의장 자리를 맡도록해 스스로 이사회 독립성을 유지하지 않았습니다.

■ 국민연금 “경영진 보수 많다, 스튜어드십 코드” 발동도

또 전, 현직 사장의 도덕성 문제도 도마위에 올랐습니다.

한 직원은 “이 의장이 받은 퇴직금은 59억1천600만원에 달하고 의장 월급도 많이 받을 텐데 뭐가 아쉬워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조욱제 대표는 ‘채용비리’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유한양행 전직 임원이 ‘조 대표가 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기 때문입니다. 유한양행 협력사 대표의 아들이 2022년 상반기 경력사원에 뽑혔고, 여기에 조욱제 대표가 관여했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이들 대표들은 2대 주주인 국민연금으로부터 경영진들의 보수가 과다하다는 이유로 감시 대상으로 낙인 찍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2022년 3월 주총에서 “유한양행의 보수한도 수준 및 보수금액이 경영성과 등에 비춰 과다한 경우에 해당하다”며 이사보수한도 승인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습니다. 이른 바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를 발동한 것입니다.

국민연금은 유한양행의 전,현직 대표이사 등 경영진들이 실적에 비해 과도한 보수를 챙기는 도덕적 해이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해 반대표 행사 결정을 했습니다.

2021년 기준 개인별 보수총액은 △조욱제 대표 10억5천800만원(급여 7억1천800만원, 상여금 3억3천400만원) △이정희 전 대표(현재 기타비상무이사) 66억900만원(급여 5억5천800만원, 상여 1억9천500만원, 퇴직기념품 2천만원, 퇴직금 59억1천700만원) △이병만 부사장 6억1천300만원(급여 4억1천300만원, 상여 2억원) △박종현 전 부사장 19억6천만원(급여 9천400만원, 상여 1억600만원, 퇴직기념품 1천300만원, 퇴직금 17억4천700만원) △김상철 전 전무 9억8천300만원(급여 7천100만원,상여 5천700만원, 퇴직기념품 800만원, 퇴직금 8억4천700만원) △김재교 전 전무 13억2천100만원(급여 2억400만원,상여 9천100만원, 퇴직기념품 5천800만원, 퇴직금 9억6천800만원) 등입니다.

유한양행의 당시 영업이익은 486억원으로 전년(843억원) 대비 반토막 수준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당기순이익도 991억원으로 2020년(1천904억원)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2020년의 경우 이사 보수는 당시 이정희 대표가 9억4천200만원, 조욱제 부사장이 5억2천800만원, 박종현 부사장이 5억2천300만원이었습니다.

내일 열리는 주총에서 회장직 신설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유한양행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의 하나뿐인 직계 후손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귀국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유 이사는 “공석으로 남길 자리라면 왜 만드느냐”며 “회장직 신설은 ‘기업은 사회와 직원의 것’이라던 할아버지 유지에 어긋난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이에대해 유한양행 관계자는 “회사의 양적·질적 성장에 따라, 향후 회사 규모에 맞는 직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특정 인물 선임에 대해서는 전혀 아니라고 말한 바 있고 주총에서도 직제만 개편할 뿐 회장 선임은 예정돼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논란이 있지만 주총 결과를 끝까지 지켜봐달라고” 덧붙였습니다.


종합경제매체 ‘한양경제’가 선보이는 ‘한양why’는 경제·사회·정치 각 분야에서 발생한 이슈나 사건, 동향 등의 ‘이유’를 집중적으로 살펴 독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본질을 들여다보기 위한 인사이트를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기획 코너입니다.

권태욱 기자 lucas45k@hanyangeconomy.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