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공천 과정 난맥상과 유권자 힘
총선에서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는 것은 특정 지역에서 국민을 대표할 인물을 제시하는 것이다. 만일 정당의 후보가 능력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후보가 공천된다면 그 자체로서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과 같다. 거대 양당의 후보 중에 선택하는 경향이 높은 유권자들이기에 그 위험성은 더욱 심각하다. 무능력하거나 부도덕한 후보일수록 자신을 공천한 정치지도자에게 무조건적 충성을 보이고, 국민과 공동체의 이익을 무시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총선을 불과 26일 남겨둔 시점에 거대 양당은 대부분의 지역구에 공천을 마쳤다. 수많은 선거의 공천을 봐왔지만 이번처럼 명분과 도덕성을 잃은 공천은 처음이다. 공천에서의 잡음 때문이 아니다. 자리는 적은데 하려는 사람은 많으니 잡음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보다는 원칙과 상식을 잃었고 최소한의 논리적 합리성과 도덕적 정당성도 찾을 수 없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민주당의 대다수 비명 친문 현역의원들은 모두 공천 과정에서 탈락했는데, 그 이유는 현역의원 활동 평가에서 하위 10%, 또는 20%로 평가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애초부터 이들을 배제하기 위한 시스템을 설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차세대 정치지도자로서 촉망받던 박용진 의원도 비명횡사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은 '친명횡재, 비명횡사'를 위한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내부에서조차 적절성에 문제가 제기된 검사장 출신 20% 가산점 제도도, 무원칙한 안귀령, 김동아 후보의 공천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공천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혁신공천을 위해 정치신인에 대한 최대 20%의 가산점을 주었고, 동일지역 3선 이상 현역의원에게 최대 35%를 감산하고, 권역별 하위 10% 이하 현역의원은 공천에서 원천 배제하는 규칙까지 적용했지만 많은 현역의원이 재공천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5.18 당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던 도태우 후보를 대구 중남구에 공천했다가 문제가 지적되자 재검토했음에도 결국 공천을 확정한 것은 지금까지 호남에 공들여 온 국민의힘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더 심각한 것은 이제 막 시작된 비례대표 공천 과정이다. 준연동형 비례제가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 결과, 이번에도 비례용 위성정당이 대거 출현했고, 민주당은 다수 정치세력과의 연합비례정당을 구성하면서 반국가단체 활동 전력이 있는 사람이나 해산된 통진당 출신 인사들을 당선권에 배치하는 등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거센 비판에 해당 인사가 사퇴하고, 민주당 내부에서 비례대표 후보의 전면 재공천을 요구했다고 한다.
문제의 핵심은 준연동형 비례제로 인해 민주당과 연립으로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으면 결코 국회에 진출할 수 없던 종북·반국가단체 출신 인사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세비를 받고 각종 특혜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국회의원이 될 길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2심까지 유죄판결을 받아 법정구속만 겨우 면한 조국 전 법무장관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조국혁신당'을 창당해 이번 선거에 참여한 것도 비상식적이다. 참정권이야 국민의 기본권이니 정치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거나 유죄가 확실시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불체포특권을 누리겠다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에서 법학교수를 지낸 인사가 처음 제출할 법안이 '한동훈 특검법'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드는 것을 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이유가 '개인적 복수'라는 것을 공공연히 떠들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건 정당을 창당해 비례대표로 출마하는 것이다.
20년 가까운 세월, 정치평론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 국민은 항상 현명한 선택을 해왔다는 점이다. 직전의 21대 총선을 제외하면 유권자들은 항상 균형 있는 선택을 통해 특정 정치세력이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했었다. 지금까지 국가와 국회의 운영 과정과 성과, 그리고 이번 공천 과정도 유권자들은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유권자들은 입으로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두 발로 투표한다. 모두 투표에 참여해 국민의 무서움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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