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다양성’이란 말의 오염

손제민 기자 2024. 3. 1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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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多樣性). ‘모양·빛깔·형태·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을 뜻한다. 존재하는 세상 자체를 가치중립적으로 묘사할 때 쓸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생물다양성이나 문화다양성처럼 앞에 수식어를 붙여 어떠한 의지·지향을 담아 쓰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의 놀라운 사용법을 최근 접했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5·18민주화운동 북한 개입설 등을 주장한 도태우 변호사 공천 결정을 유지하며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당이지 않으냐”고 해명했다. 도 변호사의 5·18 폄훼 발언은 소수에 속한다. 그것이 소수인 이유는 이미 사실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허위에 기반한 의견으로 5·18 희생자와 유족에게 한번 더 상처를 주는 말도 다양성으로 감싸줘야 할 것인가.

일본 자민당에서도 다양성이 입방아에 올랐다. 당 소속 남성 정치인들이 연 친목회에 반라의 여성 댄서들을 불러 춤추게 하고, 입맞춤으로 팁을 전달하는 사진들이 공개됐다. 그러자 이 자리를 만든 의원은 다양성을 강조하는 취지에서 댄서들을 불렀다고 했다. ‘다양한 직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는지 돌아보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궤변인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이 뭐가 문제냐’고 하는 이 사회 주류의 변함없는 인식 수준을 보여준 것인가.

다양성은 밀려날 위기에 처한 소수자·약자·타자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게 순전히 주류의 이타심 때문은 아니다. 우세 단일종이나 주류 문화만으론 변화와 도전을 뛰어넘어 생존하기 어렵다는 공리주의적 시각도 담겨 있다. 기실, 다양성은 진화론적으로도 어떤 생명체가 오랜 세월 생존해온 요인이다. 사회도 다양한 정체성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함께 살 수 있어야 좋은 사회이고 지속 가능하다. 하지만 부족할 것 없고, 권력을 휘두르는 주류 정치권이 소수자를 혐오하고 낙인찍는 데 다양성을 가져다 쓴다면 그 말의 심각한 오용이다. 주류의 퇴행적 생각을 강요하는 폭력과 혐오 표현까지 다양성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나 생명과 직결돼 정말로 다양성을 희구하는 사람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영화감독 봉준호가 2007년 3월 18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 발효 기념 및 국회 비준 촉구 문화제’에서 국회에 문화다양성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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