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만명의 사랑을 학살할까? [김소민의 그.래.도]

한겨레 2024. 3. 1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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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한 개농장 뜬장에 있는 개들. 한국 HSI 제공

김소민 | 자유기고가

실험실에 심장박동기를 단 사람이 앉아 있다. 긴장했다. 심장이 빨리 뛴다. 이어 심장박동기를 단 그의 반려견이 들어온다. 사람과 개, 두 존재가 만나자 둘의 심장박동수가 떨어진다. 둘 다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다. 이어 두 심장은 동기화돼 같은 속도로 함께 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크레이그 덩컨과 미아 코브 연구팀이 벌인 실험이다.

내가 편의점만 다녀와도 내 반려견 몽덕이는 갈색 몸통 전체를 흔들며 환희를 표현한다. 이 개가 온몸으로 보여주는 감정을 나는 ‘사랑’이라는 말로밖에 적을 수가 없다. 이 개는 왜 이럴까? 책 ‘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쓴 클라이브 윈(애리조나주립대 개과학 공동연구소 연구원)은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간다.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늑대는 개와 비슷할까? 이 책에 소개된 마리아나 벤토셀라 연구팀은 이런 실험을 벌였다. 지름 2m짜리 원을 그린다. 그 한가운데 사람이 앉는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 손을 탄 울프파크의 늑대들과 개가 실험 대상이었다. 실험 결과, 울프파크의 늑대들이 가장 친한 사람 곁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개가 낯선 사람 곁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 울프파크 늑대는 낯선 사람 곁엔 오지도 않는다. 개들은 본능적으로 인간에게 끌린다.

다 간식 때문일까? 사실 개들은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기는 걸까? 그레고리 번스는 개 15명(이 글에선 목숨을 뜻하는 명을 쓴다)의 뇌 엠아르아이(MRI)를 찍었다. 인간에게 칭찬받을 때와 음식을 받아먹을 때, 보상체계를 담당하는 뇌의 활성도를 측정했다. 15명 중 2명만 음식을 보여줄 때 보상체계가 더 활성화됐다. 개의 뇌는 음식보다, 적어도 음식만큼 인간의 애정을 갈망하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일본 기쿠스이 다케후미 연구팀은 인간과 반려견이 서로를 바라볼 때 두 존재의 뇌 속에 모두 친밀감을 키우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것을 발견했다.

클라이브 윈은 개와 늑대를 가르는 유전자 구조까지 파고들어 간다. 인간에게서 윌리엄스-뷰렌 증후군을 야기하는 유전자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극도로 사교적이다. 유전학자 브리지트 폰홀트는 늑대와 개의 유전자를 비교한 뒤 윌리엄스-뷰렌 증후군의 발현과 관련 있는 유전자 가운데 세개의 돌연변이를 개에게서 발견했다. 약 1만4천년 전 이 사랑스러운 유전자의 변이로 개와 늑대는 갈라졌다는 거다. 개의 유전자, 뇌 구조, 호르몬까지 존재 전체가 애착 관계를 맺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개의 어린 시절 경험에 따라, 애착의 대상은 사람뿐 아니라 염소, 양 등 다양한 종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래서 윈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개의 본질은 사랑이다.” 나와 반려견 몽덕이가 경험하는 애착은 내가 아니라 몽덕이의 능력 덕분이다.

나는 개가 다른 동물보다 우수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소, 닭, 돼지, 돌고래, 참새에겐 그들의 특별한 역량이 있다. 자기 서식지를 파괴하는 독보적으로 멍청한 종이 인간인 걸 감안하면 이성이 인간의 역량인지는 의심스럽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인간의 역량이 개, 닭, 돼지, 돌고래, 참새의 역량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할 근거는 없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에 따르면, 정의는 모든 존재가 역량을 펼치며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부정의는 그 반대다. 인간만큼 개, 소, 닭, 돼지, 돌고래, 참새도 역량을 펼치고 살 권리가 있다. 개는 사랑하며 살 권리가 있다.

지난 1월6일 ‘개 식용 금지 특별법’이 공표됐다. 유예기간이 3년이다.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식용 개 사육유통 실태 조사’에 따르면, 사육농장에 갇힌 개는 52만여명이다. 이 52만명은 뜬장에 갇혀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 땅을 밟지도, 깨끗한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개농장 주인에게 편한 방식으로 도축당한다. 개농장 주인은 사료값이 들기는커녕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거로도 돈을 번다. 정부는 특별법을 공표만 해놓고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나마 개농장 주인들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담은 기본계획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보인다. 한국이 개들에게 어떤 곳인가? 2주 안에 입양 가지 못한 유기견은 안락사당한다. 강아지들을 개공장 어미 뱃속에서 빼내 펫숍에서 상품으로 팔고, 장난감처럼 샀다 싫증나면 버리기 일쑤인 이곳에서 ‘고기’로 태어난 이 52만명은 어떻게 될까? 나는 52만명의 사랑이 학살당할 것 같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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