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년 전통 日사케, ‘친환경 거인’ 어깨에 올라탔다...우리 막걸리도?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일본의 오가닉(유기농) 식품 매장은 우리보다 구색이 다양하다. 그중에는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제품도 꽤 있다. 의류 회사인 파타고니아가 식품을 만든다고? 그렇다. 파타고니아는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스’란 자회사를 만들어 2012년부터 식품 사업에 진출했다. 창업자 이본 쉬나드가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려면 ‘어쩌다 한 번 구매하는 의류’보다, ‘매일 구매하는 식품’으로 사업을 확장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후 방목한 버펄로로 만든 육포, 매년 땅을 갈 필요가 없어 이산화탄소 방출을 줄인다는 ‘컨자(다년생 밀 품종)’를 활용한 맥주 등 의미 있는 제품을 많이 만들고 있다. 오가닉 식품 매장에서 파는 컨자 캔맥주의 가격은 일반 캔맥주의 세 배 정도인데, 의식 있는 소비자, 의식 있는 사람이라 보이고 싶어 하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매출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선 2021년부터 ‘파타고니아 사케’도 출시하고 있다. 파타고니아가 사케도 만드나? 그렇지는 않다.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스가 직접 생산하는 제품이 아니라 일본의 양조장과 컬래버(협업)한 제품에 파타고니아 사케란 명패를 붙이고 있다.
일본의 350년 역사를 지닌 오래된 양조장, 데라다혼케(寺田本家)와 컬래버한 제품을 살펴보자. 브랜드는 ‘지젠슈 고닌무스메(自然酒 五人娘)’다. 왜 굳이 데라다혼케였을까? 무농약에, 현지 쌀과 물로 만들고, 발효도 시간이 걸리지만 자연 발효 공법을 고집하는 등 대충 상상할 수 있는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제조하면 개성적인 맛을 내기 때문에, 일본 내 팬이 은근히 많다고 한다. 데라다혼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니이다혼케(仁井田本家)의 사케처럼 또 다른 브랜드도 있다. 특정 양조장과 독점 계약을 한 게 아니라, 파타고니아와 철학이 같은 제품은 얼마든지 컬래버할 수 있는 구조다.
파타고니아 측은 “심지어 이 제품들은 표시 의무가 없는 첨가물조차 넣지 않고, 인공적 개입을 최소화한다”고 말한다. 파타고니아가 하는 말이니 신뢰가 간다.
사실 컬래버라고 하지만 방법은 너무 쉽다. 기존 술병에, 파타고니아의 설명서 한두 장을 거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 사케를 만드는 양조장은 1500곳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많다 보니, 자기 회사 제품을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명 사케 브랜드인 ‘구보타’는 최상급 만주(萬壽)부터 센주(千壽), 하쿠주(百壽)처럼 숫자로 제품 등급을 나타낸다. 닷사이는 23, 39, 45 등 쌀을 깎는 정미율을 브랜드에 표시해 소비자가 제품 속성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도 한다.
그래도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소비자가 맛보도록 해야 그 품질을 알릴 수 있는데, 지방 중소 양조장 입장에선 이게 쉽지 않다. 이때 필요한 방법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이다. 파타고니아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서 얼마나 강력한 브랜드인지는 다 알고 있다. 이 회사랑 컬래버한다면 일단 눈길이 간다. 사연을 알게 되면 구미가 당긴다. 구매할 기회가 있으면 지갑을 연다.
일본이 사케라면 우리나라는 막걸리다. 우리 막걸리 제조 업체도 800곳 이상이라고 한다. 내가 생산하는 방식, 혹은 나의 경영 철학이 파타고니아와 비슷하다면, 먼저 파타고니아에 연락하면 어떨까. “일본 사케랑 컬래버하던데, 한국 막걸리랑도 제휴하는 게 어떻겠는가”라면서 말이다.
새로운 콘셉트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세상엔 의미 있는 소비, 뜻 있는 소비를 콘셉트로 내세우는 브랜드가 꽤 있다. 그들의 어깨에 올라타서, 순식간에 멋진 콘셉트를 지닌 회사로 변신할 수 있다. 실제 일본 사케 양조장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