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비급여가 의사수입 좌지우지 …'피·안·성·정' 쏠림 부추겨
실손 가입 12년새 71% 급증
비급여진료비 17조로 두배
병의원 실손가입 확인한 후
고가 진료·입원치료 권해
지역 필수의료인력 늘리려면
실손기반 비급여 관리가 우선
◆ 의사 파업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A씨는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에서 2년 정도 근무하다 최근 서울의 한 피부과로 자리를 옮겼다. 파트타임으로 피부 레이저처럼 간단한 시술을 하는 그는 경험을 쌓은 뒤 피부과 개원까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소아과에서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수가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다 비급여 진료가 많은 미용 분야를 경험한 뒤 실제 피부과로 개원한 소아과 전문의 사례가 주변에도 있다"고 귀띔했다.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의 확대로 급성장한 비급여 진료가 '피안성정(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형외과)'으로 대표되는 인기 과로의 쏠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실손보험은 의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급여 항목을 뺀 본인 부담금과 비급여 의료비를 보장하는 보험 상품이다. 의사 재량으로 얼마든지 비싸게 책정이 가능한 비급여 항목이 실손보험과 맞물려 17조원 규모의 거대 시장으로 팽창하면서, 손쉬운 비급여 진료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비(非)필수의료 과목과 개원가로 의사들을 빨아들이는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실손보험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2010년 2080만명에서 2022년 3565만명으로 71.4% 급증했다. 이 기간 비급여 진료비는 8조1000억원에서 17조3000억원(2021년)으로 두 배 넘게 뛰었다. 다만 비급여 진료비가 병원마다 제각각인 데다 정확한 실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아 실제 비급여 진료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실손보험은 비급여 과잉 진료를 유발하는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병·의원들이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 뒤 불합리한 과잉 진료를 권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50대 B씨는 서울의 한 의원을 방문해 무릎 관절염으로 골수 줄기세포 치료를 권유받았다. 해당 시술에 필요한 시간은 약 1시간으로 특별한 부작용은 없었지만, 1430만원에 달하는 비급여 비용을 실손보험으로 보전받기 위해 1박2일 입원을 권유받았다.
최근에는 병원이 보험사기단과 유착해 실손보험 누수를 야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C병원 상담 직원은 "원하는 성형수술, 미용시술을 80~90% 할인된 가격에 받을 수 있다"며 "도수치료를 받은 것처럼 서류를 발급하는데, 내원하지 않아도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도록 영수증을 발급해드린다"고 환자를 꼬드겼다. 도수치료 명목으로 성형수술(코, 쌍꺼풀 등)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보험 브로커는 환자들을 병원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맡았다.
이렇듯 실손보험이 유발한 비급여 풍선효과 탓에 비급여는 곧 의사들의 실제 수입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혼합진료 금지를 통한 실질의료비 절감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문의 과목별 연간소득은 안과(3억8918만원)가 가장 높고 정형외과, 신경외과, 피부과, 재활의학과가 뒤를 이었다. 같은 기간 비급여 진료율은 의원급을 기준으로 재활의학과(42.6%), 안과(42.3%), 정형외과(36%), 신경외과(35.3%) 순이었다. 비급여 진료 비율이 높은 과목과 높은 수익 간의 연관관계가 확인된 셈이다.
비급여 진료 확대는 기피 과의 의사 인력 유출을 부추길 뿐 아니라, 대학병원을 떠나 개원을 결정하는 주요 배경이 되기도 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의료기관 종별 비급여 진료 비중은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서 각각 39%, 42.3%에 불과한 반면, 병·의원급에서는 70%대 중후반에 달한다. 종합병원 의사의 2배 수준인 개원의 연소득의 상당 부분을 비급여 항목이 견인하고 있다. 2018~2022년 사이 새롭게 문을 연 일반의원 5곳 중 1곳 이상이 피부과라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특히 실손보험으로 비급여 시장이 커지면서 의대 졸업 후 전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개원가로 나오는 일반의 비율도 급증했다.
의료계에서는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실손보험에 기반한 비급여 진료를 통제·관리하지 못하면 지역·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인력 공급 기반이 지속적으로 취약해질 우려가 높다고 지적한다. 다만 실손보험은 민간 보험사와 국민의 계약 사항인 만큼 정부 개입이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실손보험이 비급여 팽창의 원인임을 알고도 관리에 소홀해온 점이 문제"라며 "국내에서 실손보험이 도입되던 초기에 환자가 의료비를 인지할 수 있는 본인 부담금이 거의 없는 상품을 내놓으면서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지희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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