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 집권’ 굳히는 푸틴···안으론 철권통치 밖으론 反서방 고삐 죈다
당선 기정사실화···예상득표율 80%
개헌 통해 36년 장기 집권 길 열어
나발니 죽음 계기로 내부 통제 강화
핵전쟁 도발 등 반서방 움직임 가속
서방 제재로 인한 경제 타격은 과제
‘푸틴의, 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날’에 반전은 있을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종신 즉위식’이 될 러시아 대선이 15일(현지 시간) 시작된다. 반정부 인사들의 출마는 모두 좌절된 데다 경쟁을 펼칠 나머지 후보들은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실상 들러리로 푸틴 대통령의 5연임은 기정사실화한 분위기다. 권위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푸틴의 행보는 5기 정부에서 한층 과감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안으로는 푸틴의 최대 정적이던 알렉세이 나발니의 죽음으로 공포 정국이 강화되고 밖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한 세력 확장과 노골적인 핵 위협이 계속되며 민주주의 서방진영과의 관계가 새로운 갈등 국면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36년까지 집권 길 닦아둬=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대선(15~17일)을 하루 앞둔 14일 “조국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 시민인 여러분뿐”이라며 직접 투표 독려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당선 시 2000년부터 이어진 임기에 6년을 더해 2030년까지 정권을 연장한다. 그는 이미 개헌을 통해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현재 그의 나이가 71세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종신 집권이 가능한 셈이다. 이 경우 푸틴의 집권 기간은 총 36년.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29년)을 뛰어넘어 러시아 제국 초대 황제인 표트르 대제(43년) 다음으로 장기 집권한 통치자가 된다.
‘푸틴의 재선’이 확실시되는 이번 대선의 주안점은 그가 얼마나 높은 지지세를 업고 당선되느냐다. 러시아 여론조사 센터 브치옴이 11일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푸틴의 예상 득표율은 82%에 달한다. 이는 그가 직전인 2018년 대선에서 기록한 최고 득표율(76.7%)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공산당의 니콜라이 하리토노프, 새로운사람들당의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 자유민주당의 레오니트 슬루츠키 등 나머지 후보들의 예상 득표율은 5~6%에 그쳤다. 러시아는 이례적으로 투표 기간을 사흘로 늘리고 처음으로 온라인 투표를 도입했는데 전시 상황에서 대선을 맞은 푸틴이 국민 집결로 귀결되는 투표율을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앞서 러시아는 2022년 강제 합병한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에서도 사전투표를 강행했다.
◇제거된 최대 정적···‘1인 체제’ 강화=푸틴은 재집권 후 내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공포정치를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러시아 민주화 운동가 나발니의 옥중 의문사를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고 있지만 당국은 수백 명을 체포·수감하는 등 고강도 탄압으로 대응하고 있다. 무엇보다 반정부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나발니의 죽음 이후 그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다시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주요 반정부 활동가인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 일리야 야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한 혐의 등으로 모두 구금된 상태다. 알자지라는 “이제 러시아에서 전국적인 운동을 주도한 경험이 있는 인사가 너무 적다”며 “(나발니 시위 역시) 더 나은 러시아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는 감정적 충격에 의해 촉발된 일회성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푸틴 정권의 국가 통제 강화 계획은 뱌체슬라프 볼로딘 하원 의장이 그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우크라이나 매체가 입수한 서한에는 △모든 원자재 산업 국유화 △과학·문화·예술에 대한 국가 역할 증대 △TV·인터넷 검열 강화 △반정부 운동 대처 강화 등 정부 권한을 전방위로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담겼다. 볼로딘 의장은 서한에서 “하원 위원들이 모두 계획을 지지하고 있으며 법안 초안을 작성할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핵전쟁’ 도발···서방과의 대립 심화=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조된 러시아와 서방 간 긴장 관계 역시 극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유럽 등이 잇따라 전쟁에서 열세를 보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에 나서자 러시아는 연일 핵전쟁 가능성을 언급하며 맞불을 놓았다. 푸틴은 13일 자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언제든 군사기술적으로 핵전쟁에 준비돼 있다”며 “국가의 존립과 관계되거나 우리의 주권·독립이 훼손되는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를 두고 에이드리언 왓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러시아의 핵무기 관련 언사는 이 분쟁 내내 무모하고 무책임했다"고 논평하며 실제로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을 준비하는 동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전세계에서 비난이 이어지는 등 파장이 끊이지 않자 크렘린궁은 14일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를 불가피하게 사용하게 되는 이유를 말한 것으로, 이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문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고 밝히며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핵 위협이 아니라고 한 발짝 물러섰다.
러시아는 핵 도발 외에도 최근 이란·북한 등 반(反)서방국가들과 경제·군사적 밀착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랫동안 유지돼온 군축·비확산 규범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서방이 제재 강화를 통해 러시아 경제를 옥죄고 있어 ‘푸틴 리더십’이 점점 더 큰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푸틴의 높은 지지율은 전시 상황에도 러시아 경제가 비교적 견조하게 유지된 영향이 크다. 그러나 전쟁과 제재가 장기화할수록 경제적 타격은 불가피하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주요 수출 품목들에 대한 규제 범위를 넓히고 우회 경로가 되는 제3국의 개별 기업들을 대상으로 제재를 세분화하고 있다. 군 징집과 이민 급증에 따른 인력 고갈은 노동시장에 부담을 키운다. 러시아가 국방비 증액을 위해 감내하는 막대한 지출은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 도이체벨레(DW)는 “전문가들은 국방·안보에 지출을 집중하는 러시아의 전쟁 경제가 위험할 정도로 과열됐다고 평가한다”고 전했다.
정혜진 기자 sunset@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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