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와 첫 간담회’ 유인촌 “저작권 보호, 독서 진흥, 해외수출 지원”···‘불참’ 출협 “진정성 없어”
“의견을 내주면 내년 예산에 잘 반영할 것”
문체부와 고소고발 중인 출협은 참석 안해
문화체육관광부는 14일 유인촌 장관이 출판계 인사들을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동안 현장 간담회가 언론에 공개됐던 데 비해 이번에는 비공개로 처리하고 대신 주요 내용을 보도자료로 전해왔다. 그동안 고소고발 등 분쟁을 빚고 있는 대한출판문화협회 측은 “진정성이 없다”며 참석하지 않고 입장문만 내놓았다.
문체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출판계 현장 간담회’에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저작권보호원과 함께 한국출판인회의,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한국학술출판협회, 한국대학출판협회,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등 주요 출판 관련 단체장들이 참석했다. 유인촌 장관이 지난해 10월 취임후 출판계 인사와 간담회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출판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을 논의했다. 특히 ▲ 그동안 출판계에서 지속적으로 정부에 건의해온 불법복제 확산에 따른 도서 저작권 보호 강화 ▲ 세종도서 사업 개편 ▲ 독서 진흥 ▲ 도서 해외수출사업 개편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고 문체부는 전했다.
유인촌 장관은 우선 “초임 장관 시절부터 문화의 범주가 한정적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판을 문화의 범주에 넣어 산업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올해 4~5월이면 벌써 내년 예산을 위한 준비가 마무리되는 시점이기에 오늘 각 단체 대표분들이 많은 의견을 주시면 내년 예산에 잘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출판사가 학술서를 출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대학가를 중심으로 도서 불법복제가 만연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주문했다.
박찬익 한국학술출판협회장은 “대학교재와 학술교재로 경제를 유지하는 출판사들은 한계에 와있다. 과거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시절에도 1000부에 달하던 발행 부수가 이제는 300부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3년에 걸쳐 판매하고 있다”고 불법복제의 심각성을 전했다.
장주연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장은 “학술교재에 필요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출판사가 일러스트레이터 7명을 직접 고용하는 등 전문 학술 서적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가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끊임없이 투자하고 있다”고 출판사의 노력을 알아줄 것을 호소했다.
신선호 한국대학출판협회장은 “이제는 학생들의 20% 정도만이 책을 구입하고 있는 실정인데, 처벌이 능사가 아닌 만큼 좋은 책이 지속 출판될 수 있도록 인식을 개선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인식개선을 위해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자를 대상으로 저작권 교육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이에 유 장관은 “지난 2008년 장관이 되어(첫번째 임기)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분야가 저작권이다. 당시 많은 노력을 통해 우리나라가 저작권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학술교재 등과 관련해서는 아직 독자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문체부는 지속적으로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을 알려 인식을 개선하는 데 힘쓰겠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문체부 측은 “관련 출판단체 등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모니터링, 교수자에 대한 저작권 교육, 인식개선 캠페인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저작권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라며 “불법복제에 대한 합리적인 양형과 관련해서는 저작권 미래 포럼 등을 통해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 참석자들은 K컬처 다음 주자는 K북이 될 것이라며 그 기반이 될 우수도서 발간을 위한 ‘세종도서’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K북 수출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K콘텐츠의 다음 주자는 K북이 될 것이며, 지금이 K북 지원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며 K북 해외진출을 추진하는 중소출판사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또한 “국내에 등록 출판사가 10만여 개이고 1년에 책을 1권 이상 출판하는 출판사가 6000개 이상일 정도로 다품종 소량 생산의 특성을 가진 출판계 특성상 900권의 숫자는 어떻게 보면 많은 숫자가 아니다. 세종도서의 지원을 받아 양서를 발간하고 있는 작은 출판사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유인촌 장관은 과거 좋은 책을 선정해달라는 취지로 사비를 공공기관에 기부했는데, 처음에는 좋은 책들이 선정됐으나 이후 기부금 소진을 위해 책을 선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을 보아온 경험을 전하며, “우수한 책이라면 900종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지원할 것이다. 다만 지원 종수를 정해두고 이에 맞추어 선정하다 보니 좋은 책 발간 지원이라는 정책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이를 개선해 정말 좋은 책을 선정하고 책에 대한 지원을 늘리자는 것”이라며 “올해는 주어진 예산만큼 진행하지만, 내년에는 더 충분한 예산을 가지고 정말 우수한 도서라면 모두 선정하도록 진행하겠다. 선정은 출판계에서 하는 만큼, 나중에 부끄럽지 않은 책으로 선정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는 어려운 중소출판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중소출판사 성장도약 지원사업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정책 내용을 설명했다.
세부적으로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2023년 13억 원) 및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2023년 7억 원) 사업이 올해 ‘중소출판사 성장도약 지원사업’으로 통폐합돼 10억 원이 증액된 30억 원으로 마련됐다. 문체부는 해당 사업 내에서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지원과 경영지원, 유통 등 마케팅 지원을 추진하고 이번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해 3월 중 사업수행 기관 선정을 위한 공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고영은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은 “K컬처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지금이 K북 수출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다. 책 저작권 수출을 중심으로 집중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오늘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참석하지 않아서 아쉽다.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름의 상황을 이해한다”며 K북 수출과 관련해 “최소 내년까지는 공공기관인 출진원이 주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이로 인해 출판계 현장에 피해가 가지는 않도록 하겠다”며 이와 관련해 업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이날 문체부는 향후 출판단체, 도서 저작권 수출 에이전시, 한국문학번역원, 국제문화교류진흥원 등 유관기관이 참여하는 해외진출 협의체를 구성해 민간이 그간 축적해온 역량을 정책 사업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소통을 강화하고 민관협업방안을 구체화해 나가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책을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대대적인 독서 운동이 일어나야한다는 참석자들의 건의도 이어졌다. 고영은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대한민국 전체가 나서서 책 읽기 운동에 나서야 할 때”라며 독서 진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했다.
유인촌 장관은 독서 부흥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매우 공감하며 “4월 23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을 기점으로 독서부흥 운동을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인문학 진흥 차원에서 국립국어원, 세종학당, 한글박물관 3곳에 인문학을 퍼뜨릴 수 있는 역할을 주문하는 등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갈 것이며, 도서관 등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도서정가제 논란에 대해서 참석자들은 도서정가제 개선과 관련해 지역서점 할인율 유연화는 할인 여력이 없는 지역서점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유 장관은 “서점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으며, 국회에서 법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아직 시간이 있다”며 지역서점 지원방안에 대해서도 업계 의견을 꾸준히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3년 11월에 발표한 ‘제4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을 바탕으로 출판 및 독서 활동의 중심인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 지원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4월 중으로 ‘제4차 독서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독서 및 서점 지원 예산은 서점을 통한 문화 활동 지원 예산이 삭감된 바 있지만, 물류망과 디지털화 구축사업 등이 새롭게 반영돼 지역서점을 지원하는 예산 총액은 증가했다.
개별 서점과 프로그램을 지원하던 방식에서 업계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개편하고 내년도 사업으로 책을 읽지 않는 비독자를 끌어들일 유인체계 설계 등의 신규사업계획 등을 마련해 재정 당국과 긴밀히 협의해나갈 예정이다.
이 외에도 간담회 참석자들은 ▲공공대출보상권 도입 등 출판사 권리 확대 ▲ 도서 제작비 세액공제 도입 ▲ 청년 도서 구입비 지원 등의 다양한 현안을 건의했다. 정부는 연구 용역 등을 통해 관련 쟁점을 정리해 실현 가능한 방안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갈 예정이다.
토론은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유인촌 장관은 열띤 토론을 마무리하며 “오늘을 시작으로 출판계와는 자주, 지속적으로 소통하겠다”며 “제가 필요한 자리라면 언제든 초대해 달라”며 출판계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약속했다.
다음은 대한출판문화협회 측이 ‘문체부 장관 출판단체 간담회에 출협은 참가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이날 간담회 불참 입장문 전문이다.
<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의 윤철호 회장은 3월 14일 오전에 시작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출판계의 간담회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출협은 지난해 10월 초 유인촌 장관 임명 직후에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출판 현장과의 대화를 통해 책문화 발전을 위한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출판계와의 불필요한 갈등이 해소되어야 한다고 건의한 바 있습니다. 유인촌 장관 임명 6개월째에 접어들어서야 간담회 자리가 만들어졌지만, 유인촌 장관 하의 문체부가 보여온 모습은 굳이 간담회에 참가해야 할 의미를 찾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문체부는 출판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습니다. 문체부는 서점계와 출판계에 전자책 및 지역 서점과 관련해 도서정가제를 뒤흔들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책문화 발전을 위해 출판사, 서점, 도서관, 작가들에게 쓰이던 예산은 대폭 삭감된 상황입니다. 다양한 양서 출판을 위해 진행된 세종도서 사업은 예산이 삭감된 데 이어, 사업 시기도 방법도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사회는 파행 상태입니다. 저작권정책도 책문화 발전과는 거리가 멀고, 책과 출판생태계는 현장과 거리가 먼 정책들로 인해 아우성입니다. 상상을 불허하는 불법복제로 출판사들이 고사하고 있습니다. 늘어가던 신간발행 종수가 지난해부터 줄기 시작했고, 국민독서율이 최근 급격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출판 발전을 위해 머리를 모아야 할 이런 심각한 상황에, 지난해 7월 말 박보균 전 장관은 뜬금없이 출판협회에 이권 카르텔이 있다고 기자간담회를 연 데 이어 8월 초에는 서울국제도서전 수익금 정산에 의혹이 있다고 수사 의뢰를 한 바 있습니다. 이후 수사의뢰 8개월 째에 접어들지만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출판업계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문제가 있다면 하루빨리 회장을 기소하고 구속이라도 할 일입니다. 2021년부터 진행하여 햇수로 4년 차 접어드는 서울국제도서전 관련 감사는 아직까지 완결되지 않은 채 전례도 찾기 힘들고, 기준도 세우기 힘든 수익금 환수 논란이 진행 중입니다.
결국 문체부는 이런 상황을 이유로 들며 지난해까지 출협이 주최하던 서울국제도서전, 해외도서전 주빈국 사업, 해외도서전과 관련하여 편성된 모든 예산에서 출협을 배제하고 다른 사업에 쓰거나 다른 방식으로 사용할 거라고 합니다. 특히, 문체부는 출협이 지난 50여 년간 지속적으로 참가해 온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대해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예산을 주어 진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주빈국 예산은 파리올림픽에 맞춰서 홍보에 쓰겠다고 합니다. 문화와 도서전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하기 어려운 발상들입니다.
유인촌 장관은 물론 현 문체부 담당자들은 지난 장관이 벌인 일이고, 수사는 경찰청에서 하는 일이라 자신들은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수사 의뢰를 한 당사자들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하고,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자신은 모르겠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수사 대상으로 규정한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하겠습니까?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민간단체를 길들이겠다는 의도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유인촌 장관은 취임 후 문화예술, 체육, 관광 등 업무 전 분야를 아우르며 간담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진정성 없는 만남 뒤에 남는 것은 무성한 말잔치와 사진 몇 장뿐입니다.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해서 의견을 전달하는 분들의 노력도 의미가 있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불참으로 전달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화와 출판 발전을 위한 좋은 논의가 간담회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
최수문·정혜진 기자
최수문기자 기자 chs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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