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베를린의 영웅

2024. 3. 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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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선수단장으로서 한국의 스페셜올림픽 선수단을 이끌고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23 스페셜올림픽 세계하계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손기정기념재단이 선생의 스포츠 정신과 민족혼을 기리기 위해 2016년 세운 동상이다.

대회 참가를 위해 베를린에 오는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이나, 유럽을 찾는 여행객들이 베를린 시내에 손기정 선생의 동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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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선수단장으로서 한국의 스페셜올림픽 선수단을 이끌고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23 스페셜올림픽 세계하계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대회 장소 인근에는 '올림피아 스타디온'이라고 불리는 올림픽파크가 있는데, 이곳에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생의 동상이 있다. 손기정기념재단이 선생의 스포츠 정신과 민족혼을 기리기 위해 2016년 세운 동상이다.

3월에도 답사차 이곳을 찾았다가 동상이 새똥으로 얼룩져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 일정이 촉박했고 마땅한 세척 도구도 없던 터라 대회 참가를 위해 왔을 때 깨끗하게 만들어드리자고 일행들과 약속했다. 다시 찾은 동상은 덕지덕지 묻은 새똥과 거미줄로 방치돼 있었고 왠지 우리가 버림받고 모욕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최근에 아무도 찾지 않은 듯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져온 수건에 물을 묻혀 동상을 닦아드리는 내내 숙연한 분위기가 지속됐고, 정성스러운 손길 끝에 말끔해진 모습을 보자 짐 하나를 내려놓은 것처럼 조금이나마 무거운 마음이 덜어졌다. 가져온 꽃으로 헌화하는 일행의 얼굴에도 잔잔한 안도감이 번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노구에도 불구하고 성화 봉송을 위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트랙을 돌던 손기정 선생의 생전 모습이 기억난다. 당시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십억 시청자는 TV를 통해 백발이 성성한 올림픽 영웅을 지켜봤다. 자신의 모국에서 올림픽이 열린 감격을 감추지 못해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선생의 웃음에 덩달아 흐뭇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사연을 찾아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국내에는 손기정 선생을 기리는 장소가 곳곳에 있다. 서울시 중구의 손기정 체육공원이 대표적이다. 경내에는 선생의 행적을 돌아볼 수 있는 손기정 기념관이 있고, 손기정 문화체육센터, 손기정 둘레길에서 시민들이 건강을 다지고 있으며, 어린이도서관에도 선생의 이름이 붙어 있다. 선생의 동상도 공원 내에 전시돼 있다. 선생의 모교인 옛 양정고보 자리에는 손기정 문화도서관이 세워졌다.

이처럼 선생을 기리는 곳이 여럿 있는데도 불구하고 타지에서 바라본 풍경은 또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비록 동상이지만 손기정 선생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달려나갈 듯 당당하고 늠름했다. 먼 타국 땅에 있다고 해서 서슬 퍼런 기상이 어디 가지 않는다. 금메달을 목에 걸 당시에는 조국의 국기를 달지 못한 설움을 겪었지만, 이제 선생의 가슴에는 태극기가 선명하다.

대회 참가를 위해 베를린에 오는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이나, 유럽을 찾는 여행객들이 베를린 시내에 손기정 선생의 동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꽃 한 송이 놓고 진심 어린 묵념으로 인사드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혹시라도 동상에 얼룩이라도 묻어 있다면, 우리 일행처럼 손수건에 물을 묻혀 정성껏 닦아드리고 선생의 힘찬 모습을 눈에 담아 오래도록 기억하기를 권해본다.

영웅의 실화는 사람들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대를 이어 전해지는 전설이 된다. 손기정 선생 외에도 우리에게는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많은 영웅이 존재한다. 자칫 소홀함이 쌓여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사람들의 더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이용훈 스페셜올림픽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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