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재편·경영권 두고 곳곳서 표 대결...주총 앞두고 ‘전운’ 드리운 제약바이오 기업들
한미약품 일가 모녀 vs장·차남 표 대결
씨티씨바이오 경영권 분쟁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주총을 앞두고 일부 기업들이 경영권 확보와 직제 개편을 두고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14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OCI그룹과의 통합 발표 이후 창업자 일가가 경영권 분쟁에 들어간 한미약품과 회장 직제 신설을 두고 해석이 엇갈리면서 내홍에 휩싸인 유한앙행이 이번 주총에서 표대결을 벌일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 씨티씨바이오의 경영권을 두고 경영진과 최대 주주인 파마리서치 간 힘겨루기도 이번 주총 기간 중 예고되고 있다.
유한양행은 이달 15일 주주총회를, 한미약품 지주사 한미사이언스는 28일, 씨티씨바이오는 29일 주총을 연다.
유한양행은 이번 주총에서 정관 일부를 변경해 회장과 부회장 직제를 신설하는 안을 표결에 부칠 것으로 보인다. 유한양행이 회장과 부회장 직급을 만드는 건 30여 년 만이다.
하지만 회사 내부와 시장 일각에서는 정관 개정을 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기업을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한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훼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고 유일한 박사의 하나뿐인 직계 후손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도 회장직 신설에 대해 우려 목소리를 내며 미국에서 귀국해 주총 참석을 예고했다.
유한양행은 앞서 이와 관련해 “목표로 세운 글로벌 50대 제약회사로 나아가기 위해 선제적으로 직급을 유연화하려는 조치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OCI와 통합을 두고 벌어진 한미약품그룹의 창업자 일가의 갈등도 이번 주총에서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을 주도한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과 임주현 한미사이언스전략기획실장 겸 한미약품 사장, 통합에 반대하는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겸 코리그룹 회장, 임종훈 한미약품·한미정밀화학 사장 측은 28일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서 이사 선임건을 두고 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은 지난해 12월 OCI에 지분 매각을 통한 그룹 합병을 결정했다.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7703억원에 취득하고, 임 실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는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하는 방식이다. 통합이 완료되면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의 최대 주주가 된다.
하지만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는 OCI와 통합을 위한 한미약품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임씨 형제는 또 이번 주총에 본인들을 포함해 5명을 신규 이사에 포함하는 안을 이번 주총에 제안했다.
한미사이언스 측과 임종윤·종훈 사장 측이 제시한 이사 선임 건 등을 표 대결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다. 표 대결 결과에 따라 이달 예정인 법원의 가처분신청 결정은 물론 한미약품과 OCI그룹 간 통합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동물의약품 개발기업 씨티씨바이오의 경우 이번 달 29일 열리는 주총 현장에서 사내이사와 감사 선임안을 놓고 현 경영진과 최대 주주간 표 대결을 벌인다. 지난해 씨티씨바이오의 경영권을 놓고 파마리서치와 씨티씨바이오 경영진은 지분 확보 경쟁 경쟁을 벌여왔다.
씨티씨바이오의 최대 주주인 파마리서치는 김원권 파마리서치 경영전략본부장과 서동민 미앤누 대표이사를 사내이사로 추천했다. 씨티씨바이오 이사회는 이민구 씨티씨바이오 대표이사의 재선임과 오성창 씨티씨바이오 전무를 신규 사내이사로 추천했다. 3대 주주 에스디인베트스먼트는 조창선 에스디비인베스트먼트 감사를 사내이사로 내세웠다.
경영권 확보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씨티씨바이오 경영진과 파마리서치는 양측이 각각 제안한 사내이사 선임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크다. 주주들의 투표 참여 결과에 따라 씨티씨바이오와 파마리서치의 경영권 분쟁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씨티씨바이오는 김성린·조호연·우성섭·성기홍 4인이 1993년 공동 창업해 30년간 이끌어온 동물의약품 개발 기업이다. 이후 2021년 이민구 현 대표이사로 경영권이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씨티씨바이오 창업주, 전문경영인 등은 순차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지난해 재생의학 바이오기업 파마리서치가 씨티씨바이오의 경영 참여를 선언하며 이민구 대표와 지분 확보 경쟁을 벌였다. 결국 작년 9월 파마리서치외 1인이 지분 씨티씨바이오 18.32%를 확보하며 최대 주주 지위를 탈환했다. 현재 이민구 씨티씨바이오 대표(회장) 외 1인의 지분율은 15.33%로, 최대 주주보다 3%가량 적다. 앞서 이 대표는 회사에 대한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해 60억원 규모의 주식담보를 통해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3대 주주는 지분 8.7%를 보유한 에스디인베트스먼트이다.
이 대표 측은 주총을 앞두고 소액주주 의결권 위임 호소문을 내며 소액주주 의결권 위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주주가 된 파마리서치와 주주총회 표 대결을 앞두고 소액주주 표심 잡으려는 것이다. 파마리서치는 최근 씨티씨바이오 주주명부 열람 등 가처분 신청도 진행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3월 파마리서치는 씨티씨바이오와 어떠한 협의나 실사 과정 없이 경영권 참여 목적으로 지분을 장내 매수를 시작했다”며 “적대적 M&A 시도로 급격한 주가 변동을 초래하며 주주 가치를 훼손시키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파마리서치는 (씨티씨바이오를) 헐값에 인수하기 위해 주식 가치를 하락시켜야만 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시장에서는 파마리서치가 씨티씨바이오 인수합병 등 사업 목적으로 경영권 확보 경쟁에 뛰어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파마리서치 측도 “씨티바이오가 동물의약품 등 자사가 보유하지 않은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만큼 사업 시너지 차원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향후 계획 등에 대해서는 주총 결과를 보고 언급하겠다고 했다.
만약 이번 표 대결 결과로 씨티씨바이오 경영진에 힘이 실리면, 최대 주주인 파마리서치로선 계획하던 인수 추진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 사내이사 임기가 남은 상태에서 인수합병에 성공하려면, 정관을 변경해 이사 수를 늘리거나, 현직 이사를 해임해야 하는데 이는 모두 특별 결의 사안이다. 반면 파마리서치에 힘이 실리면, 파마리서치의 더욱 적극적인 인수 행보도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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