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벌써 당선됐나 봄? 5선과 승리의 ‘V’…멀어진 모스크바의 봄 [월드뷰]

권윤희 2024. 3. 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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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치러지는 러시아 제8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선거관리위원회의 대선 캠페인 로고는 승리의 ‘V’다.

블라디미르 레닌이 1917년 10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건국했을 때만 해도 러시아 민중들은 모스크바에 비로소 ‘봄’이 왔다고 생각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내분으로 피폐해진 러시아에 레닌은 신경제정책, 정부 주도의 국가자본주의를 도입했고 배를 곯던 소작농들은 곡식을 팔며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1924년 레닌 사망 후 이오시프 스탈린의 29년 철권통치 시대가 개막하고, 제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모스크바에는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스탈린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 집권으로 다시 찾아온 봄도 레오니트 브레주네프 반란으로 끝이 났고, 1985년 소련 최초이자 마지막 대통령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탄생하기까지 모스크바는 21년간 혹한의 추위에 시달렸다.

고르바초프의 사임과 소련 해체 후 보리스 옐친과 새 러시아 연방이 등장했으나, 옐친이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1인자 자리를 넘기면서 모스크바는 기나긴 겨울에 접어들었다.

오는 15일 오전 8시(한국시각 오후 2시)부터 러시아 제8대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봄은 멀기만 하다.

24년 넘게 집권한 푸틴 대통령의 연임이 기정사실로 여겨지면서 2030년까지 동토 러시아의 계절은 겨울을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 ‘대항마’ 없는 푸틴과 ‘투명 투표’…러시아식 민주주의?
● 푸틴 예상 득표율 82%…역대 최고 기록 세울까 주목

13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러시아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지역 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이 이동식 투표소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대선 캠페인 로고인 승리의 ‘V’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재선을 암시하는 듯하다. 2024.3.14 AFP 연합뉴스

이번 대선은 러시아 본토는 물론 임차 중인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 2022년 ‘새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4개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에서 17일까지 사흘간 시행된다.

유권자는 18세 이상 러시아인으로 약 1억 1230만명에 이른다. 미국 등 해외에 거주 중인 러시아인 190만명도 투표할 수 있다.

무소속으로 5선에 도전하는 푸틴은 재선이 확정적이다.

일단 푸틴에 제대로 대항할 후보가 없다. 니콜라이 하리토노프(공산당), 레오니트 슬루츠키(자유민주당),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새로운사람들당) 등 3명이 후보자로 등록했지만, 이들 모두 친푸틴·친정부 성향의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 상원 178석 중 138석, 하원 450석 중 324석을 차지하는 등 의회를 장악 중인 통합러시아당은 올해 러시아 대선에서 후보자 선출 없이 푸틴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푸틴에 대항하겠다며 도전장을 내민 반(反)푸틴 인사들은 선거관리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어서지 못했다. 그의 최대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도 지난달 의문의 사고로 숨졌다.

러시아 선관위가 내세운 이번 선거 캠페인의 로고가 5선의 ‘5’와 ‘승리’를 상징하는 ‘V’인 것이 놀랍지 않다.

13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마키이우카에서 러시아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된 가운데, 한 여성 주민이 투명한 투표함에 용지를 접지 않은 채 넣고 있다. 2024.3.13 TASS 연합뉴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에서 러시아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지역 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이 투명 투표함에 접지 않은 선거 용지를 넣는 유권자를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제 시선은 득표율로 쏠린다.

11일 친정부 성향 러시아여론조사센터(VCIOM·프치옴) 조사에 따르면 이번 대선 투표율은 71%, 푸틴 득표율은 82%로 전망됐다.

지난해 푸틴 평균 지지율이 82.08%였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선거에서 그는 2018년 76.69%의 득표율을 상회하며 압도적 승리를 거둘 것으로 점쳐진다.

사전 투표가 비밀 아닌 비밀 투표로 이뤄진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해외거주자 및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된 사전 투표는 ‘투명 투표’로 이뤄졌다.

투표함은 속이 훤히 보였고, 일부 지역에는 기표소가 없었다.

유권자는 선거 관리원 앞에서 투표하고, 용지는 접지 않고 그대로 넣었다. 누구를 찍었는지 누구나 볼 수 있었다.

러시아식 민주주의인 푸틴이 주창하는 ‘주권민주주의’의 비민주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 벌써 당선? 선관위는 ‘V’ 캠페인, 푸틴은 2030 청사진 제시

13일(현지시간) 시리아에 있는 러시아 크메이밈 공군 기지에서 군인들이 러시아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투표함은 투명하고 투표용지도 접지 않은 채 넣어지는 모습이다. 2024.3.13 러시아 국방부

푸틴 본인도 마치 연임을 확정지은 것마냥 최소 2030년까지의 청사진을 내놨다.

푸틴은 지난 달 연례 국정연설에서 경제 발전, 교육, 출산율과 건강, 과학기술, 환경, 교통 등 다양한 분야의 ‘6년 후 달성 목표’가 담긴 정책 청사진을 제시하며 국민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다.

그는 각종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도 러시아가 “가까운 미래에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 4대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이미 지난해 러시아의 경제 성장률이 주요 7개국(G7)보다 높았다고 강조했다.

또 앞으로 6년간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출산율이 낮은 지역의 가족을 지원하는 데 최소 750억 루블(약 1조 1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2030년까지 최저 임금을 현 월 1만 9000루블의 약 두배인 3만 5000루블(약 51만원)로 인상하고, 의료시스템 현대화에 약 1조 루블(약 14조 7000억원)을 투자해 평균 기대 수명을 현 73세에서 78세로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학교와 유치원 개선을 위한 점검에 4000억 루블(약 5조 9000억원)을 투입하고, 러시아산 스쿨버스 구입에 660억 루블(약 1조원)을 배정한다는 세세한 계획도 설명했다.

2030년까지 러시아 주식시장 시가 총액을 배로 올리고 핵심 분야 투자 규모를 70% 늘리며 최소 100개의 기술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또 ‘데이터 경제’ 국책사업에 6년간 7000억 루블(약 10조 3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말했다.

● 현대판 ‘차르 대관식’ 임박

1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겸 대선 후보의 홍보물이 깔려 있다. 2024.3.13 EPA 연합뉴스

총리 시절(2008∼2012년)을 포함해 2000년부터 24년째 러시아를 통치하고 있는 푸틴이 이번에 5선에 성공하면 2030년까지 정권을 연장하게 된다. 스탈린의 집권 기간을 넘어서는 것이다.

푸틴은 2020년 개헌으로 2030년에 열리는 대선까지 출마할 수 있어 이론상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 연장도 가능하다. 사실상 종신집권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 경우 푸틴 대통령은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의 재위 기간(34년)도 넘어선다. 러시아제국 초대 차르(황제) 표트르 대제(43년 재위)만이 푸틴보다 오래 러시아를 통치한 인물로 남게 된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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