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참전 유엔군 후손들, 70여년 만에 한반도 안보 위해 돌아왔다

허고운 기자 2024. 3. 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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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6·25전쟁)에 참전해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유엔군의 후손들이 70여년이 지난 2024년 한미 연합 군사연습 '프리덤 실드'(FS)의 증원군으로 참여했다.

조부가 6·25전쟁 참전용사인 니콜라스 코리건 영국 공군 대위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 종종 참전 당시 이야기를 들으며 군인정신을 배웠다"라며 "할아버지가 몸 바쳐 싸웠던 곳인 한국 땅을 밟았다는 것 자체가 뜻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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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실드' 연합연습 증원군으로 참가…"할아버지에게 군인정신 배워"
벨기에, 6·25 참전형제 기념행사 매년 개최
지난 13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유엔군사령부 본청 의장대홀에서 '2024 FS(Freedom Shield· 자유의 방패)' 훈련에 참가한 유엔사 증원 요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2024.3.14/뉴스1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한국전쟁(6·25전쟁)에 참전해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유엔군의 후손들이 70여년이 지난 2024년 한미 연합 군사연습 '프리덤 실드'(FS)의 증원군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선조들의 발자취를 다시 밟으며 유사시 한국을 돕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지난 4~14일 11일 연속으로 진행된 FS 연습에는 유엔군사령부를 구성하고 있는 총 17개 유엔사 회원국 중 미국·호주·캐나다·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12개국 본국에서 선발된 수십여 명의 증원요원들도 참가했다.

각 유엔사 회원국은 한국으로 병력을 지정하고 물자를 조율하고, 전방으로 병력 및 물자를 전개했으며, 각국에서 도착하는 병력 또는 물자가 원활하게 쓰일 수 있도록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이는 한반도에서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한 상황 숙달 훈련이다.

지난 13일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취재진과 만난 유엔사 증원요원들 중엔 6·25전쟁 참전용사의 후손들도 있었다. 이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한다'라는 사명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조부가 6·25전쟁 참전용사인 니콜라스 코리건 영국 공군 대위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 종종 참전 당시 이야기를 들으며 군인정신을 배웠다"라며 "할아버지가 몸 바쳐 싸웠던 곳인 한국 땅을 밟았다는 것 자체가 뜻깊다"라고 말했다.

코리건 대위는 영국군에서 훈련 교관이지만 FS 연습에선 공보 업무를 맡았다. 그는 "임무 수행 중 미디어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올바른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법을 배웠다"라며 "FS 기간 여러 국가와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024 FS(Freedom Shield· 자유의 방패)' 훈련에 참가한 유엔사 증원 요원들이 지난 13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유엔사 기념비 및 조형물을 살펴보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2024.3.14/뉴스1

블레이크 팔베리 호주 육군 대위의 조부와 큰조부는 6·25전쟁 때 가평전투에 함께 참전했다. 호주 육군은 해마다 4월 24일 '가평의 날' 행사를 성대하게 열어 호주군의 희생과 활약을 추모하고 기념한다고 한다.

FS 기간 가평 전투 전적지를 직접 탐방한 팔베리 대위는 "할아버지들이 한국을 위해 73년 전 목숨을 바쳐 싸웠던 그 장소를 다시 방문했을 때 느낀 벅찬 감정은 말로 다 전할 수 없다"라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다시 오고 싶어 한 한국에 대신해서 온 것이 뜻깊다"라고 말했다.

벨기에에서 온 에릭 옵드벡 육군 대령은 의장대원인 자신의 아버지가 6·25참전 전쟁 영웅의 관을 운구한 사연을 전하며 벨기에와 한국의 인연을 강조했다.

1951년 3월 피에르 가이 벨기에 대위는 김화 잣골 전투 중 경비행기를 타고 전방을 시찰하다 고사총에 피격돼 전사했다. 다음 날 새벽 그의 형 에티엔 가이 대위가 수색에 나섰으나 동생을 찾지 못했다.

에티엔 가이 대위는 파견기간이 완료돼 귀국했다가 1953년 3월 다시 참전해 전투 도중 지뢰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쳤다. 1948년 런던올림픽 마라톤 동메달리스트인 그는 부상으로 운동선수로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옵드벡 대령은 "벨기에에선 매년 군인들이 마라톤 거리만큼을 종주하며 가이 형제를 기리는 행사를 치른다"라며 "한국에 온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한국인들이 벨기에를 기억해 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참전용사 후손들을 비롯한 유엔사 증원 요원들은 연합연습이 끝나는 이날부터 순차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들은 한국에서의 추억을 평생 간직하고, 한국에서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한국을 지원하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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