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 공격 전 140만명 ‘집단 이주’시킨다는 이스라엘···“인도적 대피 아닌 전쟁 범죄” 비판도

선명수 기자 2024. 3. 14. 16:5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위치한 피란민 캠프. 이스라엘군은 피란민 140만명이 몰려 있는 라파에 대한 대대적인 지상작전을 예고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지상전을 강행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며 작전 개시 전 피란민 140만명을 가자지구 중부로 집단 이주시키겠다고 밝혔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13일(현지시간) “라파에 있는 140만명 중 적어도 상당수를 우리가 국제사회와 함께 만들 ‘인도주의 구역(humanitarian islands)’으로 이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하가리 대변인은 가자지구 중심부에 피란민을 수용할 ‘인도주의 구역’을 조성할 예정이며, 이곳에서 피란민들에게 임시 거주지와 식량, 식수 및 기타 생필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집단 이주가 언제 이뤄지는지, 이스라엘군이 수차례 예고해온 라파 지상작전이 언제 개시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문제는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군이 이른바 ‘안전지대’로 지정하며 대피를 명령했던 곳조차 무차별 공격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부터 이스라엘군이 대대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는 남부 최대도시 칸유니스와 다음 공격이 예고된 라파 역시 이스라엘군이 한때 ‘안전지대’라며 북부 피란민들에게 대피하라고 명령했던 곳이다.

이 명령에 따라 북부와 중부 주민 200만명이 남부로 대거 피란을 왔으며, 그 결과 현재 라파에는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60%에 달하는 140만명이 밀집해 있다.

이스라엘군이 지도가 그려진 전단까지 공중 살포하며 안전한 ‘인도주의 지역’이라고 선전했던 남부 해안가 알마와시 역시 이후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사상자가 속출했다.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군이 북부에서 남부로 지상작전을 확대하면서 가자지구 주민들은 비좁은 가자지구 땅 이곳저곳을 계속해서 옮겨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군은 전쟁 초반엔 하마스 사령부의 근거지가 북부 가자시티에 있다며 북부에 대한 대규모 작전으로 이곳을 사실상 초토화시켰다. 그런데도 하마스 궤멸과 인질 구출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점차 지상작전을 중부에서 남부까지 확대했다. 그러는 동안 가자지구 전역의 거주지는 물론 기반시설 대부분이 파괴됐다.

이런 방식의 전선 이동과 이에 따른 강제이주 조치가 민간인 ‘보호’는커녕 ‘살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골드스미스대학에 기반을 둔 연구단체 포렌식 아키텍처는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스라엘군이 ‘인도주의적 대피’라고 주장하는 ‘강제 이주’ 조치가 그 자체로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 연구단체는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의 ‘대피 명령’은 주민들의 대량 강제 이주를 초래했으며, 이는 가자 전역에서 민간인 학살로 이어졌다”면서 이스라엘군이 ‘안전’을 보장한 대피로와 대피 구역에서 폭격과 총격, 처형, 체포, 고문 등이 자행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조치가 아니라 대량 학살을 조장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이스라엘군이 지정한 ‘인도주의 구역’으로 떠날 수 없는 민간인을 자의적으로 ‘테러세력’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문제라고 짚었다. 실제 전쟁 초반 이스라엘군이 북부지역에 살포한 전단에는 “가자지구 북부에서 와디 가자(가자지구를 양분하는 하천) 남쪽으로 떠나지 않은 이들은 테러조직의 공범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연료 부족으로 차량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약자와 중환자 대피가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해 왔다.

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한 피란민 여성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배급소 문 앞에서 식량을 얻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특정 시점을 못 박지는 않았으나 재차 ‘피란민 대피’를 거론한 것을 두고 지상전이 곧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라파 공격을 거듭 반대해온 미국은 이스라엘로부터 민간인 보호와 관련한 어떤 계획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미국 정부는 아직까지 그런 계획(민간인 보호 대책)을 보지 못했다”며 “민간인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피난처와 식량, 의약품을 확보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스라엘군이 이날 라파에 위치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식량배급센터를 공격해 구호요원 1명을 포함해 최소 5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다쳤다. 필립 라자리니 UNRWA 집행위원장은 “국제인도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공격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스라엘군은 공격을 받은 곳이 유엔의 식량배급시설이라는 점을 언급하지 않은 채 사망자 가운데 1명이 하마스 사령관이며 그를 “정확하게 표적 삼아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이 공격 몇 시간 뒤 가자지구 북부에서도 구호요원 6명을 포함해 최소 9명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팔레스타인 와파통신이 보도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