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세종도서사업, 나중에 부끄럽지 않은 책으로 선정바란다"
"우수한 책이라면 900종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지원할 것이다. 다만 지원 종수를 정해두고 이에 맞추어 선정하다 보니 좋은 책 발간 지원이라는 정책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이를 개선해 정말 좋은 책을 선정하고 책에 대한 지원을 늘리자는 것"
14일 출판계 간담회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예산 축소에 대해 출판계가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세종도서 지원사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유 장관은 과거 좋은 책을 선정해달라는 취지로 사비를 공공기관에 기부했지만 처음에는 좋은 책들이 선정되었다가 이후 기부금 소진을 위해 형식적으로 책을 선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나쁜 사례를 직접 경험했다는 사실도 밝힌 뒤 "올해는 주어진 예산만큼 진행하지만, 내년에는 더 충분한 예산을 가지고 정말 우수한 도서라면 모두 선정하도록 진행하겠다. 선정은 출판계에서 하는 만큼, 나중에 부끄럽지 않은 책으로 선정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세종도서는 우수도서 900여 종을 선정해 800만원씩 지원하는 사업이다. 문체부는 정부 예산으로 출판계가 직접 집행하는 이 사업에서 소액을 다수에게 나눠주는 방식으로 우수도서를 900종이나 선정하는 관행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올해 관련 예산을 축소했다.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재정비해 제대로 된 우수도서를 선정해 집중 지원하겠단 방침을 문체부는 이미 밝힌 바 있다.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K-콘텐츠의 다음 주자는 K-북이 될 것이며, 지금이 지원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며 "국내에 등록 출판사가 10만여 개이고 1년에 책을 1권 이상 출판하는 출판사가 6000개 이상일 정도로 다품종 소량 생산의 특성을 가진 출판계 특성상 900권의 숫자는 어떻게 보면 많은 숫자가 아니다. 세종도서의 지원을 받아 양서를 발간하고 있는 작은 출판사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정부가 문제삼고 있는 나눠먹기식 기존 세종도서 지원 사업에 대한 출판인 입장을 전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정부에선 문체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저작권보호원이 민간에선 한국출판인회의,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한국학술출판협회, 한국대학출판협회,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등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는 출판계에서 지속적으로 정부에 건의해온 불법복제 확산에 따른 도서 저작권 보호 강화, 세종도서 사업 개편, 독서 진흥, 도서 해외수출사업 개편 등에 대해 논의가 이어졌다.
유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초임 장관 시절부터 문화의 범주가 한정적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판을 문화의 범주에 넣어 산업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올해 4~5월이면 벌써 내년 예산을 위한 준비가 마무리되는 시점이기에 오늘 각 단체 대표분들이 많은 의견을 주시면 내년 예산에 잘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도서 불법복제가 만연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주문했다. 박찬익 한국학술출판협회장은 "대학교재와 학술교재로 경제를 유지하는 출판사들은 한계에 와있다. 과거 IMF 금융위기 시절에도 1000부에 달하던 발행 부수가 이제는 300부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3년에 걸쳐 판매하고 있다"며 불법복제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장주연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장은 "학술교재에 필요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출판사가 일러스트레이터 7명을 직접 고용하는 등 전문 학술 서적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가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끊임없이 투자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신선호 한국대학출판협회장은 "이제는 학생들의 20% 정도만이 책을 구입하고 있는 실정인데, 처벌이 능사가 아닌 만큼 좋은 책이 지속 출판될 수 있도록 인식을 개선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인식개선을 위해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자를 대상으로 저작권 교육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라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유 장관은 "2008년 장관이 되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분야가 저작권이다. 당시 많은 노력을 통해 우리나라가 저작권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학술교재 등과 관련해서는 아직 독자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문체부는 지속적으로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을 알려 인식을 개선하는 데 힘쓰겠다"라고 답했다.
문체부는 향후 출판단체, 도서 저작권 수출 에이전시, 한국문학번역원, 국제문화교류진흥원 등 유관기관이 참여하는 해외진출 협의체를 구성해 민간이 그간 축적해온 역량을 정책 사업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소통을 강화하고 민관협업방안을 구체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대적인 독서 운동이 일어나야한다는 참석자들의 건의도 있었다. 고영은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대한민국 전체가 나서서 책 읽기 운동에 나서야 할 때"라며 독서 진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했다.
이에 공감한다는 유 장관은 "4월 23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을 기점으로 독서 부흥 운동을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인문학 진흥 차원에서 국립국어원, 세종학당, 한글박물관 3곳에 인문학을 퍼뜨릴 수 있는 역할을 주문하는 등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갈 것이며, 도서관 등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도서정가제 개선과 관련해 지역서점 정가제 제외에 대해서도 할인 여력이 없는 지역서점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 장관은 "서점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으며, 국회에서 법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아직 시간이 있다"라며 지역서점 지원방안에 대해서도 업계 의견을 꾸준히 수렴하겠다고 설명했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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