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15~17일 승자 정해진 대선 실시···‘차르’ 푸틴, 종신집권으로 간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2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가 오는 15~17일(현지시간) 사흘간 대통령 선거를 실시한다. 사실상 적수가 없는 상태여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72)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승리할 경우 푸틴 대통령은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의 기록을 넘어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차르(황제)의 전제 정치가 무너진 이후 최장기 집권하는 독재자가 될 전망이다.
이번 선거는 투표를 사흘 동안 실시하는 첫 대선이다. 처음으로 온라인 투표를 허용하는 선거이기도 하다. 온라인 투표는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름반도에서 실시된다. 러시아는 국제 사회와 우크라이나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 자포리지아주, 헤르손주 등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획득한 영토에서도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러시아가 선거를 3일 동안 치르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인 2020년 9월 지방선거가 처음이다. 팬데믹 확산 방지라는 보건상의 이유가 사라졌는데도 사흘 동안 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투표소 감시 인력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감시를 피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000년 첫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5선에 도전한다. 푸틴 대통령 이외에도 3명의 후보가 있지만 푸틴 대통령이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할 것이 확실시된다.
러시아 정부 산하 여론조사기관 브치옴(VTsIOM)이 지난 1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82%를 득표할 것으로 예측됐다. 공산당의 니콜라이 하리토노프, 극우 민족주의 성향 자유민주당의 레오니트 슬루츠키, 새로운사람들당의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 등 다른 후보들은 5~6%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비교적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비영리 독립 여론조사 기관 레바다 센터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푸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86%를 기록했다. 러시아 경제가 올해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서방 제재를 잘 견뎌내고 있는 것도 푸틴 대통령에게는 호재다.
유일한 야권 후보였던 정치평론가 보리스 나데즈딘은 출마를 위해 10만명 서명을 모았으나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8일 서명의 오류를 이유로 후보 등록을 불허하고 대법원도 지난 4일 선관위 결정을 추인하면서 출마가 좌절됐다.
푸틴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혔던 반정부 활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지난달 16일 시베리아의 감옥에서 돌연 사망해 야권의 구심점도 사라졌다.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러시아 독립 언론들은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다수 불법화됐다.
푸틴 대통령은 2020년 자신의 기존 임기를 ‘0’으로 만드는 개헌을 추진해 헌법의 ‘3연임 금지’ 조항을 무력화했다. 이에 따라 이번 대선에서 이겨 6년 임기를 채우고 2030년 대선에서도 이겨 또다시 6년을 채우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이 경우 총 32년을 집권하게 돼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29년 집권)도 넘어서게 된다. 명목상으로만 2인자였을 뿐인 총리 재임 기간(2008~2012년)을 포함하면 러시아 황제 예카테리나 2세의 재위 기간(34년)도 넘어서게 된다.
러시아 당국은 푸틴 대통령의 2018년 득표율(76.7%)을 넘어서기 위해 온라인 전자투표 허용, 독립적인 선거 감시인 배제, 언론 검열 등 투표율 높이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반푸틴 정서가 강한 청년층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영기업들은 정부로부터 청년층 직원들의 투표를 독려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일부 대학에서는 투표하지 않을 경우 학사 관련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협박하는가 하면 투표 인증 사진을 제출하라거나 누구에게 투표할지 사전에 당국에 통지하라는 요구를 한 학교도 있다고 모스크바타임스는 전했다.
승리가 확실한데도 푸틴 대통령이 선거에 열을 올리는 것은 러시아인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선임 연구원은 가디언에 이번 대선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지배 엘리트들에게 지난해 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의 반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의 정당성을 확인받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모스크바타임스는 당국자들을 인용해 “크렘린궁은 다수가 푸틴 대통령에게 투표하도록 함으로써 서방에 우리의 지도자가 무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 승리를 발판 삼아 국내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고 서방과의 관계에서도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올려 전쟁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현재 러시아산 수입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는 북한 등 전쟁 이후 관계가 밀접해진 이웃 국가들과의 협력 관계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을 앞두고 민심 악화를 우려해 미뤄뒀던 추가 징집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투표 마지막 날인 오는 17일 러시아인들이 푸틴 대통령에 대한 항의를 표시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나발니의 아내 율리야 나발나야는 지난 6일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통해 17일 정오에 일제히 투표소에 나가 무효표를 만들거나 투표용지 위에 ‘나발니’라는 이름을 쓰자고 제안한 바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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