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임태훈 날린 민주당 비판 비등···시민사회 연대 판 깨지나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의 공천 탈락을 확정지으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 기피’로 규정해 인권 퇴행에 보조를 맞춘 것이라는 비판이 정치권 안팎에서 비등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한다”던 이재명 대표의 과거 발언과도 배치된다. 임 전 소장을 국민후보로 추천한 시민사회는 비례연합정당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더불어민주연합은 14일 병역 기피를 사유로 임 전 소장을 최종 부적격 처리했다. 임 전 소장이 이의신청을 했으나 1시간 만에 기각됐다. 임 전 소장은 지난 10일 국민후보 추천 심사위원회 공개 오디션에서 시민 문자투표 2만3172표를 받아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심사위원, 국민심사단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해 종합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임 전 소장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대체복무가 인정되지 않던 2004년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이듬해 광복절에 특별사면됐다. 이후 2009년 군인권센터를 설립해 군 인권 증진을 위해 힘썼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를 도입하지 않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 판단한 뒤 임 전 소장은 국방부 대체복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대체복무 도입에 기여했다.
이같은 이력에 더불어민주연합 공천관리위원회 내부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는 예외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공관위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해 서류 심사 단계에서 결국 탈락했다. 임 전 소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이유로 정당한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람은 제가 마지막이길 바란다”고 썼다.
더불어민주연합은 표면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문제삼았지만 실제로는 임 전 소장이 커밍아웃한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제외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임 전 소장에 대한 종교계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교회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한 임 전 소장 반대 메시지가 나오니 차마 자진 사퇴해달라고 요구하지는 못하고 비겁하게 한 사람의 인생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컷오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소장이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됐어도 국민후보 4번이기 때문에 비례명부 후순위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았다.
국민후보 추천 심사위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 다수가 민주당을 비판했다. 생명안전시민넷 대표인 송경용 신부는 항의 의사를 보이기 위해 심사위원직을 자진 사퇴했다. 송 신부는 통화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양심의 자유를 부정한 것”이라며 “인간의 존엄성, 양심의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그 어떤 당리당략보다 우선해야 한다. 기본 가치를 훼손한 승리는 정당한 승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사위는 이날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2시간가량 긴급 전원회의를 진행한 뒤 더불어민주연합에 임 전 소장 부적격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심사위는 더불어민주연합이 공천 탈락을 번복하지 않는다면 인권단체, 시민사회 등과 함께 공동 항의 행동을 벌이는 등의 대응책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심사위는 이미 전날 더불어민주연합에 시민사회는 비례연합정당에서 빠질 의사도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참여연대는 성명서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병역 기피자로 낙인찍고 차별과 탄압을 자행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는 SNS에 “임 전 소장이 군인권센터에서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등 군 인권문제를 위해 일해왔는데 이제 와서 병역기피라니. 어찌 이리 천박하고 무식하단 말인가”라고 했다.
진보당, 사회민주당 등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한 다른 세력들도 더불어민주연합에 유감을 표했다.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는 SNS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 기피라 판단하고 컷오프 통보를 하다니 유감”이라고 밝혔다. 임명희 사회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재심 신청이 기각되었지만 다시 한 번 재검토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한편 시민사회는 앞서 사퇴한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운영위원과 정영이 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을 대신할 여성 후보로 서미화 전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과 이주희 변호사를 재추천했다.
윤영덕 더불어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임 전 소장 부적격 결정을 번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공동대표는 입장문에서 “정해진 심사 기준과 절차에 따라 결정한 사안으로 번복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지 않기에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며 “민주개혁진보선거연합의 합의 정신이 훼손되거나 윤석열 정권 심판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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