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개국 수퍼 선거의 해 ‘선거노믹스’에 세계 경제 골병든다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 70개 이상 국가에서 선거가 열리는 ‘수퍼 선거의 해’를 맞아 이른바 ‘선거노믹스’(electionomics· 일렉셔노믹스)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최근 한국에서도 정부·여당이 내놓은 339㎢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 주식·채권·펀드 같은 금융상품 투자 수익에 매기는 세금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이 ‘포퓰리즘 경제 정책’이라는 논란을 부르고 있는데,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지난달 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 보수당 지지율은 20%에 그쳤다. 이 회사 조사 기준으로 1978년 이후 46년 만에 최저다. 노동당 지지율 47%와 견주면 27%포인트 차이가 나며, 14년째 집권 중인 보수당은 이대로 선거를 치르면 정권을 내줄 판이다. 이 때문에 수낙 보수당 정부는 총선 패배를 면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지난해 11월 200억파운드(약 33조7800억원) 규모의 감세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수낙 정부는 여기에 더해 지난 6일 100억파운드(약 17조원) 규모의 추가 감세를 발표했다.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이날 오후 의회에서 2024년 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다음달부터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국민보험(NI) 부담금 요율을 2%포인트씩 인하한다고 밝혔다. 국민보험 인하에 따른 비용은 연간 100억파운드로 추산됐다.보수당의 최근 세금 감면 정책은 올해 하반기 열릴 것으로 보이는 총선 패배 가능성이 크자 재정 상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내놓은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선거노믹스는 주로 정책 결정권을 쥔 여당이 꺼내기 쉽다. 오는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재대결이 유력한 미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자산운용사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에 따르면, 미국 대선을 앞둔 올해 풀리는 채권은 지난해 3조달러, 2018년 2조3천억달러와 견줘 각각 33%, 74%나 급증했다. 내각 지지율이 전례를 찾기 어려운 10%대까지 떨어진 일본 집권 자민당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국민 1인당 4만엔(약 34만원)에 이르는 감세 정책을 반전 카드로 흔들고 있다
2014년 5월부터 10년째 집권 중인 인도인민당(BJP)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올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도 내년 예산안 지출 규모를 전년 대비 6% 증가로 억제하고 있다. 인도인민당이 이끄는 정당 연합인 국민민주동맹(NDA) 지지율이 40%대에 이르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가 있다. 하지만 이런 모디 정부도 농민에 대한 현금 지급 등 ‘선심성 표밭 대책’만큼은 빼놓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선거노믹스가 집권당만의 무기로 쓰이는 것만도 아니다. 야당이 선거노믹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자 감세, 법인세 인하 같은 주장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아르헨티나에서 정권 교체에 성공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경제위기를 해결하겠다며 복지 삭감, 중앙은행 폐쇄, 미국 달러 통화 채택 같은 극단적 공약을 남발했다. 지난해 11월 그가 대통령에 선출됐고 공약 일부는 새 정부의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아르헨티나 가톨릭대학(UCA) 조사에 따르면 밀레이 대통령 집권 뒤인 지난 1월 빈곤율은 57.4%로 20년 만의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
선거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과도하게 활용된 거시경제 정책은 장기간 커다란 후유증을 남긴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게다가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는 2010년 70% 수준이던 게, 2020년 90%에 육박하더니 최근 3년간 100%를 넘나들 만큼 이미 위험 수위에 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거노믹스의 방식도 중앙은행을 동원하는 등 더 교묘해지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국제금융협회(IIF) 보고서를 인용해 “다가오는 선거가 사회적 긴장을 통제하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이어질 경우, 정부 차입은 더 많아지고 재정 규제는 더 축소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수퍼 선거의 해’인 올해 정부 지출이 급증하면 이미 높은 수준의 국가 이자 부담을 더욱 가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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