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한동훈의 ‘시스템 공천’
시스템 공천을 자부하던 국민의힘에서 총선 후보들의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돈 봉투 수수 및 회유 의혹이 불거진 정우택 충북 청주상당 후보(국회부의장) 공천을 14일 철회한 것도 여러 후보의 동시다발 논란이 민심 이반으로 번질 것을 우려해 뒤늦은 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중·성동을 경선에서 승리한 이혜훈 후보(전 국회의원)가 ‘경선 여론조사 거짓응답 권유 논란’이 제기된 단체대화방에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형동·박덕흠 후보는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다. 도태우·조수연·장예찬 후보의 막말 논란도 현재 진행형이다. 시스템 공천에 허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경선을 통해 공천이 확정된 정우택 후보에 대해 공천 취소를 의결하고, 해당 선거구에 서승우 후보(전 대통령실 비서관)를 우선추천(전략공천)하는 것으로 재의결했다”고 밝혔다.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은 “정우택 후보에 대한 불미스러운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국민의힘이 강조해온 국민의 눈높이 및 도덕성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안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결정은 공관위원들이 예정에 없던 오찬 회동을 한 직후 나왔다.
정 후보의 돈 봉투 수수 의혹이 처음 알려진 것이 지난달 14일로 벌써 한 달이 지났다는 점에서 뒤늦은 조치다. 정 후보 외에도 공천이 확정된 후보들에 대한 각종 의혹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날도 이혜훈 서울 중·성동을 후보와 관련한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이 추가로 불거졌다. 앞서 이 후보를 지지하는 A씨가 지지자 등 436명이 모인 단체대화방에서 경선 여론조사에 나이를 속여 응답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날 입수한 제보에 따르면 이 후보도 이 대화방에 있었다.
제보자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이 후보는 해당 대화방에 초대돼 이달 초 다른 참가자들을 초대했다. 이 후보는 한 참가자가 “당원이 아니라고 답해야 참여할 수 있다” 등의 글을 올리는 동안에도 대화방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당내 경선을 위한 여론조사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다수의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성별·나이 등을 거짓으로 응답하도록 지시·권유·유도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이 후보는 이날 통화에서 “수많은 채팅방이 있는데 나는 거의 채팅은 안 한다”며 “단톡방에 캠프 사람들이 들어오라고 나를 초대하고 이러면 인사나 하고 그런 것이다. 경선 첫날은 제일 중요한 황금 타이밍인데 기사니 뭐니 볼 형편도 안 되는 사람이 뭘 볼 수 있겠나”라고 반박했다.
김형동 경북 안동·예천 후보(의원)는 경선 중 선거사무소 외 다른 사무소를 운영했다는 의혹(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으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박덕흠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 후보(의원)는 지난해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지역주민들에게 무료로 마술공연을 선보인 것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충북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박 의원과 보좌관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막말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성일종 충남 서산·태안 후보(의원)의 이토 히로부미 발언 논란을 시작으로, 도태우 대구 중·남 후보의 ‘5·18 폄훼성’ 발언 및 ‘일베 글 공유’ 논란, 조수연 대전 서갑 후보의 “조선 시대보다 일제강점기에 더 살기 좋았을지 모른다”는 발언 논란이 잇달아 터졌다. 이날 장예찬 부산 수영 후보는 2012년 11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문화회관에서 일할수록 보편적인 서울시민들의 교양 수준이 얼마나 저급한지 날마다 깨닫게 된다. 시민의식과 교양 수준으로만 따지면 일본인의 발톱의 때 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싶다”고 쓴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논란 대부분이 공천 과정에서 불거졌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의 검증 시스템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의혹이 불거진 지 한 달 만에야 정 후보 공천을 취소한 점이 대표적이다. 김형동 후보와 경선했던 김의승 경북 안동·예천 예비후보는 전날 공관위에 이의를 제기하며 “김형동 후보에게 공천을 준 것은 국민의힘 기본 정신인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자멸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혜훈 후보와 경선한 하태경 의원도 공관위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정 후보의 공천 취소를 계기로 논란이 된 의원들에 대한 추가 조치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초 국민의힘은 공천 취소에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앞서 장동혁 사무총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각종 의혹에 대해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혜훈 후보 의혹과 관련해서는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고 해서 당내 경선에서 모두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경남 김해시에서 진행된 학부모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조수연 후보 등의 막말 논란에 대해 “정치를 하기 이전 발언에 문제되는 게 많이 있죠”라며 “정치인 아니었다고 해서 모든 책임이 면제 되는 건 아니지만 정치인으로서, 후보로서 하는 발언과는 아마 여러 가지 무게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옹호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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