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우리, 학교에서 만납시다

장윤서 기자 2024. 3. 1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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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스승 ‘짱구쌤’의 세상에 없던 학교 이야기
“학교,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곳”
”20년 후 만나자!”...약속 지킨 스승과 제자

섬진강과 지리산이라는 천혜의 배경 앞에 자리하고 있는 전남 구례 용방초등학교에서 지난 4년간 내부형 공모 교장으로 일하던 저자가 학생, 교직원, 자연과 소통하며 보낸 기록을 담은 책이 나왔다. 운동장 너머 노고단이 보이고 울타리를 따라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이 흐르는 자연과 하나된 학교에서 근무하는 행운을 누린 교장선생님은 가슴 따뜻한 아이들과 교감하며 빚어낸 빛나는 순간을 기록했다. 책은 지나친 경쟁의식으로 각박해진 사회적 분위기 속 정서가 메말라가는 시대에 교사와 학생 간 진정한 교감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다.

우리, 학교에서 만납시다./르네상스 제공

신간 ‘우리, 학교에서 만납시다’는 교사 생활 28년째 되던 2020년 전남 구례 용방초의 공모 교장으로 부임한 저자가 학교에서 보낸 4년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에서는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과 추억을 그린 사진들도 담겨 있다.

전남 용방초는 불과 5~6년 전만 해도 전교생이 20여명 이하에 불과한 폐교 직전의 학교였으나, 열정을 가진 교원과 학교를 신뢰하는 학부모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70명이 넘는 전남 혁신학교로 우뚝 서게 됐다.

저자는 책에서 30년간 생각해 온 학교 건축에 대한 꿈을 실현할 기회를 잡았다고 술회한다. 개교 80주년을 넘긴 낡은 건물을 그대로 둔 채로 새로운 학교를 꿈꾼다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학교는 유능한 건축가와 힘을 합쳐 사업계획서를 냈고, 도 교육청 ‘공간혁신 전면 개축 학교’에 선정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의 바람이 이뤄진 것이다. 학교는 이웃집 마실 나가듯 걷고 싶은 캠퍼스, 365일 놀며 배우는 ‘세상에 없던 학교’로 탈바꿈한다.

제자들은 교장을 ‘짱구쌤’이라고 부른다. 이름(장규)와 외모(볼록한 뒤통수)에서 떠올린 이 별명에는 아이들과 거리를 가깝게 하는 힘이 있다. 짱구쌤은 교문에서 전교생이 다 등교할 때까지 아침맞이를 하고, 아이들과 실내화를 빨거나 전래놀이를 하고, 학교 곳곳에 아이들의 아지트를 만드느라 드릴을 들고 활보한다. 그가 있는 교장실은 ‘누구라도 교장실’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교시를 마치면 ‘누구라도 교장실’에 예약한 아이들과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케이팝(K-pop), 이성치구, 수업 이야기를 끝없이 한다. 짱구쌤이 바라는 학교는 세상에 나가기 전 주인공을 경험하는 곳,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즐거운 곳, 모두가 더 나은 사람으로 함께 성장하는 곳이다.

저자는 교장이지만 일주일에 네 시간 정도 수업에 참여한다. 정기적인 수업을 통해 교실과 학생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다. 저자는 “30년간 해 오던 일이 수업이니 교장이 됐다고 멈출 이유는 없다”면서 “아이들에게 학교 안에 존재하는 모든 어른은 선생님이므로 성장하는 일도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훌륭한 교사가 훌륭한 교장이 된다고 믿는다.

책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 내면에 숨겨져 있던 감성을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일본 작가 야마오 산세이의 책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에 나오는 봉숭아와 조몬삼나무의 대화를 응용한다. 저자 역시 읽는 내내 웃음이 지어지는 따뜻한 그 대화를 흉내 내어 자신과 팽나무의 대화를 기록한다. 팽나무를 의인화한 대목에서는 눈물이 핑 돈다. 저자는 “지난 여름 코로나19로 일주일 간 관사에서 격리 생활을 했을 때 당신(팽나무)의 푸름과 우아함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팽나무는 “내가 가장 좋을 때는 아이들이 나를 오를 때”라면서 “나는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답한다. 이 팽나무는 용방면에서 뿌리를 내리고, 아주 오래 한 곳에서 쭉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목이다.

모두가 교실의 위기를 말하는 요즘, 자연에 있는 혁신학교 역시 설 자리는 더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용방초에는 희망이 있다. 저자는 “주변에서 혁신학교가 어찌될 것 같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면서 “어떻게 바뀌든 이제는 교실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10년 넘게 시행된 혁신학교제도로 인해 우리 교육이 상당히 창의적이고 자율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받는다”고 말한다. 학교 차원의 혁신은 쉽지 않을뿐더러 교실까지 변화시키는 것인 제한적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오래전부터 혁신학급, 혁신학년을 이야기해 왔다. 교실의 교육력을 믿고 전폭적으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학교와 교사 모두에게 큰 배움과 성장을 가져갈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저자는 교실 내에서 수업기술이 아닌 ‘수업예술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업이 획일화, 표준화된다면 교실과 학교는 창조의 공간이 될 수 없다는 믿음에서다. 이는 엘리엇 아이스너의 ‘수업예술론’과 맥을 같이 한다. 좋은 수업 말고, 행복한 수업이 먼저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는 “가장 좋은 것은 사람이 자라는 것,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함께여서 좋은 것”이라면서 “교사 스스로 수업행위를 생생한 자기 목소리로 들여다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선배의 말을 새긴다”고 말한다.

저자의 꿈은 아직도 ‘좋은 선생님’이라고 한다. 책의 말미에는 지난 2004년 영암초 졸업생들과 20년이 흐른 2024년 1월 1일 재회한 내용도 담겨 있다. 당시 그는 학생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첫 번째는 20년 후 다시 만나는 것이고, 두 번째 약속은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졸업한 지 20년 만에 모교에서 다시 만난 담임교사와 제자들의 동화 같은 순간을 담은 영상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린이는 내일의 희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지금, 여기 이미 존재합니다.” 짱구쌤 명함 뒷면에 적혀 있는, 폴란드 출신의 교육학자 야누슈 코르착의 말이다. 스승은 설레는 마음으로 제자들과의 또 다시 ‘20년 후’를 고대한다. 책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가슴 한 켠에 온기가 스며들 것이다.

이장규 지음ㅣ르네상스ㅣ216쪽ㅣ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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