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쓰는 ‘간 큰 아빠’ 출생아 100명중 단 5명…저출생 해법, 열쇠는 기업에 있다 [이은아 칼럼]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4. 3. 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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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380조 저출생 예산 중
기업 관련 예산은 3.2% 그쳐
일과 가정 양립 가능하고
승진·임금 차별없는 직장이
‘엄마될 결심’ 돕는 핵심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3월 ‘유리천장 지수’를 발표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여성의 노동 참여율·남녀 소득 격차·고위직 여성 비율 등의 지표를 평가하는데, 한국은 2013년 평가 시작 이래 부동의 꼴찌다. 남녀 임금 격차는 꼴찌(29위), 여성 임원 비율은 28위, 여성 노동참여율은 27위다.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남성 육아휴직이 늘고 있지만, 여성 쏠림이 여전하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한국이 높은 순위(2위)를 차지한 항목이 딱 하나 있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다. 한국에서 법으로 정해진 육아휴직은 최대 1년이다. 이 기간을 6개월 더 연장하는 법률 개정이 추진되고 있고, 출산 휴가 직후 바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자동 육아휴직제’ 도입도 검토 중이다. 유리천장지수 상위권 국가에 뒤지지 않는 제도는 갖춘 셈이다.

문제는 이용률이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사람(2022년 기준)은 출생아 100명당 35명으로 OECD 평균인 74명에 크게 못 미친다. 남성 육아휴직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출생아 100명당 5명에 불과하다. 이처럼 낮은 육아휴직률과 여성 쏠림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부른다. 자녀 성장 후 노동시장에 돌아오려는 여성을 기다리는 것은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육아휴직 제도가 잘 갖춰진 기업이라도 해도 일정 기간 업무 공백기를 가진 후 복귀하면 핵심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승진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은 남녀 간 임금격차로 이어진다. 경력과 소득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는 여성이 늘어나, 출산율이 낮아지는 악순환 고리가 직장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결국 저출생 해결의 실마리도 직장에서 찾아야 한다.

지난해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국민 2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직장 만족도가 높은 경우 직장 만족도가 낮은 경우보다 결혼 의향이 22%포인트, 출산 의향이 12%포인트 높았다. 직장 만족도가 높으면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셈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저출산 해결에 가장 필요한 요소를 묻는 설문에서도 ‘현금성 지원’이라는 응답은 9.5%에 불과한 반면 ‘일·가정 양립제도 확대’는 25.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초과 근무 금지와 아침형 유연근무 도입으로 9년만에 여성 직원 1명당 출산율을 0.6명에서 1.97명으로 반등시켜 ‘기적의 회사’로 평가받는 일본 이토추 상사의 사례에서 보듯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업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도입해도 기업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할 일을 기업에 떠넘긴다는 비판도 있지만,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기업 환경이 저출생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기업도 인구감소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기업은 노동인력 감소와 소비시장 위축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한 만큼, 저출생 관련 대책을 지출이 아닌 투자로 여길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저출생 대책에 적극 동참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공공 조달 시 가점 부여, 금리 인하 등 다양한 방식의 혜택을 제공한다면 실효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부영그룹의 1억원 출산장려금 지급 이후 공론화된 세금 문제에 대해 정부가 세제 개편으로 화답한 사례처럼 정부와 기업이 소통을 늘린다면 다양한 해법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18년간 380조원의 저출산 대응 예산을 투입했지만, 기업 관련 예산은 3.2%에 불과했다. 이제 기업을 저출생 해법 찾기의 도우미로 뛰게 해야 한다.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직장, 임신·육아가 임금 감소·승진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직장을 늘리지 않은 채 ‘엄마가 될 결심’을 하는 여성이 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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