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도발 때 대만은 공개 중단, 필리핀은 생중계... 다른 대응 왜
필리핀, 충돌 현장 국내외 알리며 공분 일으켜
2020년 8월10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타이완을 방문해 차이잉원 당시 타이완 총통을 만났다.
방문의 목적은 당시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대응 방안 협력이었지만, 에이자 장관은 1979년 두 나라의 공식 외교 관계가 단절된 이래, 미 행정부에서 타이완을 찾은 미 행정부의 최고위 관리였다. 이어 다음 달인 9월17일에는 미 국무부의 키스 크랙 차관(경제성장ㆍ에너지ㆍ환경 담당)이 타이완을 방문했다.
타이완을 수복해야 할 자국 영토로 보는 중국은 미 고위관리들의 방문에 격렬하게 대응했다. 타이완의 방공식별구역(ADIZ)과, 타이완 해협 중간을 지나는 가상(假想)의 직선인 중간선(median line)을 수시로 침범하는 중국인민해방군(PLAㆍ중국군) 항공기와 전함ㆍ미사일의 도발이 본격화했다. 중국군은 두 선(線) 모두 2020년 이전까지는 거의 드물게 침범했다.
예를 들어, 폭 130~180㎞의 타이완 해협 중간선은 일종의 ‘군사분계선’으로, 1955년 소련과 그 동맹국들의 팽창을 막으려고 미국과 타이완이 그린 선이다. 중국은 1949년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이 중간선을 인정한 적이 없지만, 2020년 에이자 장관의 타이완 방문 이전 수십년 동안 이 선을 넘은 것은 두 차례에 불과했다.
타이완 정부가 설정한 방공식별구역(ADIZ)도, 중국군 전투기들이 에이자 장관의 방문 이전인 2019년에 이 선을 넘은 사례는 한 해 20건이 채 안 됐다.
◇중국의 ‘중간선’ 침범: 수십 년 간 2번에서, 매일 수 건으로
이 모든 것은 2020년 8월 이후 바뀌었다. 에이자 장관이 타이완을 방문하자, 중국군은 타이완 섬 주변에서 대규모 군사연습을 했고, 중간선 너머로 전투기를 보냈다. 이어 다음달 크랙 국무부 차관의 방문 때에는, 37대의 중국군 전투기ㆍ폭격기ㆍ대잠초계기가 중간선을 넘었다.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한 2022년 8월에는 중국군 항공기ㆍ미사일이 무려 302차례나 중간선을 침범했다. ‘군사분계선’이라는, 이 선의 암묵적인 기능을 아예 무시해버린 것이다.
동시에 타이완을 포위하는 주변 7개 지역에서 대규모 해군ㆍ공군 합동 군사연습을 전개했다. 이후 중국군의 중간선 침범은 일상사가 됐다. 가장 최근인 3월13일에도 6건 발생했다.
더 광범위한 선(線)인 방공식별구역(ADIZ)에 대한 중국군의 침범은 2019년 20건 미만에서, 2023년 1700여 건으로 확대됐다. 3월13일 하루에만 18건의 타이완 ADIZ 침범이 발생했다.
◇타이완, 중국 전투기 요격 발진에만 국방 예산의 8.7% 소진
이제 중국 전투기는 거의 매일 이 중간선을 넘는다. 타이완으로선 침범 의도가 뭔지 파악할 시간이 고작 수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중국 해군은 또 섬 주변에 ‘항구적으로’ 전함들을 배치했다.
이 탓에, 타이완 국방부도 2020년부터는 매일 중국인민해방군의 중간선 및 방공식별구역 침범 상황을 전투기 유형ㆍ경로를 담아 상세히 발표했다.
그러나 타이완 정부는 2021년 3월말,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중국 전투기에 대해 일대일 긴급 발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전투기들이 ADIZ를 워낙 많이 침범하다 보니, 이 전투기를 요격하기 위해 전투기를 발진하는 데만 2020년 전체 국방예산(3580억 신타이완달러ㆍ약 15조 원)의 8.7%를 썼다는 것이다. 대신에 지상배치 요격미사일로 중국군 전투기를 추적하겠다고 밝혔다.
◇”중국군의 ‘중간선’ 침범은 ‘선제공격’으로 간주하겠다” 발표했지만
펠로시 하원의장의 타이완 방문 이후 중국의 도발이 일상화하자, 타이완 국방부는 2022년 10월 “12해리 영공ㆍ영해 침범은 중국해방군의 ‘선제공격(first strike)’으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했다. 격추하겠다는 뜻이었다.
중국은 2023년 12월 7일부터 2024년 1월25일까지, 모두 58개의 ‘기상(氣象)’ 풍선(balloon)을 중간선 너머로 날려 보냈다. 이 중 상당수는 아예 타이완 섬 상공을 가로질러 서태평양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지금까지 타이완이 어떤 대응을 했는지는 전혀 공개된 바가 없다.
오히려 지난 1월20일, 타이완 국방부는 ADIZ 침범에 대한 정보 공개 방식을 바꿨다. 그동안에는 침범한 항공기의 유형과 항로, 시간, 침범한 전함의 항로를 자세히 밝혔는데, 이후 공개된 정보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중간선에 얼마나 접근했는지, 구체적인 항로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
◇필리핀, “영토 1인치도 포기 못한다” 중국 도발 상황 생중계
필리핀은 타이완과 대조적이다. 필리핀은 자국과 영해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 해상에서 중국 해군이 취하는 무력 시위를 동영상과 함께 낱낱이 공개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2022년 7월26일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필리핀 영토는 1인치까지도 외국의 침범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필리핀 정부는 이후 필리핀 서쪽 남중국해에서 일어나는 중국 해군의 불법적인 해상 활동을 모두 공개한다. 아예 CNN 방송과 뉴욕타임스, BBC 방송 등 국제적인 매체의 기자들을 자국 함정에 태워, 남중국해에서 중국 해군이 벌이는 군사 행동을 취재하도록 돕는다.
전(前) 대통령인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남중국해 현실을 국내에 알리지 않고, “공식적으로 말하는데, 중국은 ‘좋은 친구’”라고 말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이렇게 해서, 필리핀이 실효 지배하는 파가사(Pagasa) 섬 주변에 중국 해군 함정이 위협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필리핀령(領)인 세컨드 토머스 암초(shoal)에 물자를 공급하려는 필리핀 선박에 중국 해상경비대가 지난 3월5일에도 물대포를 쏘고 민간 어선을 가장한 중국 선박들이 필리핀 보급 선박을 들이박는 장면들이 계속 전세계에 공개됐다.
필리핀은 이를 통해, 남중국해에서 자국과 동일하게 중국과 영해 분쟁을 겪는 베트남ㆍ말레이시아ㆍ인도네시아ㆍ브루나이 등을 ‘한 배’에 태우고 국제사회의 공분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미 전문가 “중국은 더 이상 침범할 선도 없다”
이와 관련, 중국 양안의 군사활동 전문가인 미국의 벤 루이스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현재 중국군은 더 침범할 선이 부족한 정도”라며 “더 위험한 것은 타이완 점령에 필요한 중국의 이런 군사연습을 일상적으로 보는 ‘편안함’이 미국과 타이완에 점차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미국의 행동에 대해 비례적으로 ‘보상’했다. 2023년 미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하원의장 내정자 케빈 매카시가 타이완 방문 의사를 밝히자, 오히려 타이완이 이를 만류했다. 그해 4월 5일 매카시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를 방문한 차이잉원 당시 타이완 총통을 만났다.
중국은 며칠 뒤인 4월10일에 중점적으로 중간선을 모두 135회 침범했다. 그 전 해 낸시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했을 때(302회 침범) 보다 ‘훨씬’ 적었고, 기간도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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