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는 어떻게 살까…41.6%의 삶을 본 다양한 시선들

노형석 기자 2024. 3. 1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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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획전 ‘41.6% 1인가구’
보안여관 2층에 펼쳐진 청년사진가 심규동씨의 ‘고시텔’ 연작들. 좁은 고시텔 공간에 끼여있는 젊고 탱탱한 작가 자신의 몸과 일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노형석 기자

흔히 ‘솔로’라고 불리는 나 혼자 사는 사람들은 요즘 한국 사회의 이슈거리다. 출산율 급감과 노령인구 증가, 양극화 심화로 1인 가족이란 모순된 말이 대세가 될 정도로 급증했다. 사실 그네들은 할 말이 많다. 지독한 경쟁과 저출산 굴레에 놓인 한국적 현실에서 제각기 왜 그리 살게 됐는지 쌓아온 사연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홀로 공간을 어떻게 꾸리는지,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고민하는지를 말하지 않고 드러내는 전시회가 차려졌다. 80여년 묵은 옛 여관의 쪽방 여기저기서 차고 넘치는 그네들의 시공간 이야기들이 오직 사진과 그림 이미지들로만 펼쳐지는 특별한 자리다. 핸드폰이 내쏘는 미세한 광선에 얼굴을 허옇게 비추이면서 에스엔에스 삼매경에 푹 빠진 50대 남성, 함께 힘겹게 살다 숨진 아들을 제사 지내며 시름 짓는 쪽방촌 할머니, 좁은 고시텔 침상에서 탱탱한 몸을 쭈그린 채 자는 청년사진가의 모습 등이 관객을 만나고 있다.

재단법인 숲과나눔(이사장 장재연)의 기획으로 지금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 차린 기획전 ‘41.6% 1인가구’에는 통계와 사회현상, 예술작업이 한 데 녹아들었다. ‘1인 가구’의 급속한 팽창이 한국 사회 전반에 일으킨 변화의 단면을 신예·중견 사진작가 16명에게 포착해 달라고 요청해 최소 여섯달 이상 촬영한 근작들이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작업에 ‘외로움’ ‘친밀감’ ‘반려식물’ ‘반려동물’ ‘고독사’ ‘청년 솔로’ ‘중년 솔로’ ‘고시텔’ ‘쪽방촌’ 등 다양한 표제어를 달고서 결코 단순하지 않은 스펙트럼을 표출한다.

1층 들머리에 나온 임안나 작가의 연작들. 40~60대 남녀 독거생활자들의 내밀한 주거공간을 엿보듯이 앵글에 잡은 연작들은 끊임없이 디지털 기기로 소통하면서도 외로움에 시달리는 듯한 이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드러낸다. 노형석 기자

사실적인 사진 장르의 특성상 ‘1인 가구 삶의 보고서’라 할 만큼, 세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여러 독거생활자의 다기한 생활 양상들이 도드라진다. 1층 들머리에 나온 임안나 작가의 연작들이 우선 눈길을 다잡는다. 40~60대 남녀 독거생활자들의 내밀한 주거공간을 엿보는 듯한 사진들이다. 렌즈를 응시하지 않고 돌아누워 있거나 휴대폰에서 나온 빛에 얼굴이 허옇게 비추어져 표정의 세부가 보이지 않는 익명의 존재들이다.

끊임없이 디지털 기기로 소통하면서도 외로움에 시달리는 듯한 이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단적으로 표상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10여년 넘게 서울 동자동 쪽방사진들만 찍어온 쪽방의 사진사 김원 작가가 찍은 사진들 또한 비애감을 안겨준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 할머니의 제사 모습이 아리게 다가온다. 쪽방에서 함께 살던 아들이 숨진 뒤 두번째 제사상을 차리는 모습을 담았다. 2층은 좀 더 젊은 세대 독거생활자들이 힘차게 혹은 힘겹게 일상을 열고 반려동물 반려식물들과 함께 새 삶을 꾸리는 서사적 이미지들을 담는다.

특히 주목되는 것이 2층에 펼쳐진 청년 사진가 심규동씨의 ‘고시텔’ 연작들이다. 좁은 고시텔 공간에서 젊은 작가 자신의 몸과 일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으로 수년 전 처음 공개될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던 수작들이다. 옛 여관의 낡은 나무부재틀 사이에서 더욱 강렬한 이미지로 증폭되어 다가온다. 2층 안쪽의 쪽방과 복도에 자리한 강홍구 작가의 그림 연작 ‘잠’과 혼자 사는 청년들의 일상을 담은 이두기 작가의 ‘오르막 방:방 안의 청년들’ 연작, 그리고 바닥에 반려식물의 정원을 펼쳐놓고, 반려동물들과 함께 하는 여러 젊은 군상들의 모습을 담은 윤정미 작가의 작품들도 눈에 띈다.

2층 안쪽의 쪽방과 복도에 자리한 강홍구 작가의 그림 연작 ‘잠’과 혼자 사는 청년들의 일상을 담은 이두기 작가의 ‘오르막 방:방 안의 청년들’ 연작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1인 가구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급속히 늘고 있는 가구 형태다. 현재 미국, 유럽 등 서구 국가들에서는 3명 중 1명이 1인 가구이며, 한국도 2023년 지난해 처음 1인 가구의 비율이 전시제목 ‘41.6%’처럼 40%를 넘겼다. 1인 가구의 증가는 한 사회의 자원 활용과 가족체제의 기능, 개인의 신체적 건강과 사회적 관계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지만, 여전히 현실의 사회 복지 문제로 인식되지는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바로 이런 인식의 허술함이 이 전시를 만든 배경이 됐다고 기획자인 최연하 큐레이터는 짚었다.

이런 맥락에서 전시회를 돌아보면, 사진 못지않게 찰진 여운을 울리며 다가오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 열쇳말 같은 표제어와 정책구호들이다. ‘홀로’ ‘때때로 슬프고 대체로 좋아요’ ‘솔로사회’ ‘홀로살이’ ‘홀로서기’ ‘외로움 처리능력’ ‘예상가능한 문제들’ 등의 표제어는 출품작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와 달리 14개 방 입구 곳곳에 눈에 띄게 붙어있는, ‘일인가구 담당기관 및 공무원에 대한 역량강화’ ‘스마트시티 기술을 1인 가구에’ ‘고령의 1인 가구들에 디지털 기기 사용법 교육’ ‘청년 셰어하우스의 대한 제도 확대 체계화’ 등의 정책구호들은 지금 눈앞의 현실적 문제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사회성이 강한 주제지만 무겁고 진지함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관제 캠페인 같은 홍보전시로 흐를 법한 관성도 피해갔다. 사진예술가들이 개성적인 문제의식으로 담은 다른 양상의 홀로 살기 현장들이 여러 쪽방 공간에서 다채롭게 배치돼 다양한 층위의 독거 생활을 대리 체험하는 듯한 현장감을 안겨준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고독해지고 고립되는 속성, 그 숙명적인 인간의 비극성을 드러나도록 만듦새를 짰다는 점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최 큐레이터는 “나를 포함한 출품작가들 상당수가 홀로 생활을 하기에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삶의 모습’이 전시장에 들어왔다는 점이 좋다. 여관의 14개 작은 방에서 전부 다른 삶의 조각과 이야기를 만나길 권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31일까지.

쪽방 사진사 김원 작가가 찍은 서울 동자동 쪽방촌 할머니의 제사 모습. 쪽방에서 함께 살던 아들이 숨진 뒤 두번째 제사상을 차리는 장면을 담았다. 노형석 기자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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