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논의했다" "안 했다" 첨예한데…의·정 협의, 회의록도 없다

박정렬 기자 2024. 3. 1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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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참석자들이 회의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의대 증원을 논의했다는 보건복지부와 그렇지 않다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충돌하는 가운데 1년여간 28차례 열린 '의료현안협의체'(협의체)의 공식기록인 회의록이 작성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갈등이 불가피한 사안임에도 '밀실 협의'에 동조한 정부와 의협이 '의료 대란'을 촉발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4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복지부와 의협은 '필수의료 강화 및 의료체계 개선'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협의체를 구성하고 지난해 1월 26일부터 올해 1월 31일까지 총 28차례(최초 간담회 포함) 회의를 진행했다. 의대 정원 확대 발표 당일인 지난달 6일 오전 열린 28차 협의체는 의협의 반발로 파행됐다.

협의체는 지난 1년간 극심한 굴곡을 겪었다. 3월에는 간호법·의사면허취소법 상정에 반발한 의협이 일방적으로 불참하며 한 달간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6월,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의대 정원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함께 논의"한다고 발언한 이후로는 갈등이 더 심화했다. 보건의료노조 파업과 함께 "의대 정원 확대에 독단적으로 합의"했다는 이유로 이필수 의협 회장의 탄핵이 추진되며 두 달여간 협의체 논의가 중단됐다. 이후에도 의협 내부적으로 집행부가 정부와 의대 증원을 '이면 협의'했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등 잡음이 이어졌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00명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방안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한 달 간격으로 열리던 협의체는 10월 말 이후에는 거의 매주 열렸다. 정부가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진행하며 의대 증원에 박차를 가하던 때다. 의협은 협상단을 전면 교체하며 반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11월 21일, 정부가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까지 증원을 희망한다는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의협 협상단은 협의체를 박차고 나갔고 '의료 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 대책특별위원회'를 발족하며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12월부터는 사실상 의대 증원이 기정사실로 된 시점에 의대 정원 '규모'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협의체와 밀접한 의협 고위 관계자는 "수요조사 발표 후 언론을 통해 증원 규모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면서 23차 회의부터 '숫자'를 논의하자는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민수 2차관이 같은 달 22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정부가 의사 수를 증원하는데 의사와 합의할 이유는 없다"고 발언하며 또다시 냉전이 시작됐다. 다음 해 1월, 역으로 정부가 의협에 의대 정원 규모를 정해달라며 공문을 보내는 등 기 싸움이 계속됐다. 결국 2월 6일, 정부가 내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발표하며 오늘날 '의료 대란'이 촉발됐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사단체와 정부 간 갈등의 핵심은 '2025년도부터 2000명씩'이란 증원 규모다. 하지만 이를 28차례 협의체를 통해 꾸준히 논의해왔다는 복지부와 논의한 적 없다는 의협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복수의 의협 고위 관계자는 "의대 정원을 2000명씩 늘리겠다고 정부가 말한 적이 없다"며 "지금 당장 부족한 의사가 5000명이란 것도, 이를 충원하는 데 의협이 꾸준히 제시한 '시니어 의사'를 투입한다는 계획도 증원 발표 때 알았다"고 밝혔다. 반면 박민수 제2차관은 앞서 TV토론회에서 "2000명이라는 숫자를 놓고 의료계와 흥정하듯 얘기할 수는 없다"고 언급하면서도 꾸준히 "의료계와 논의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대 증원 논의가 어느 수준으로 이뤄졌을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회의마다 길게는 2~3시간 진행된 협의체가 상호 동의 하에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원활한 논의를 위해 회의록을 별도로 만들지 않았다"며 "상호 합의된 공동 보도자료를 발표하는 것으로 의정 간 협의했다"고 말했다. 의협 고위 관계자 역시 "정부와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공동 보도자료는 현재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지만 각 분량이 A4 1~2장으로 내용이 부실하다.

의료현안협의체 주요 타임라인/그래픽=이지혜


일각에서는 원만한 협의체 운영과 보완유지를 위한 목적에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라 해석한다. 정부 주재 회의에 다수 참여해 온 한 교수는 "기록을 남기면 허심탄회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거나 외부에 유출될 염려가 있어 대외비로 진행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필수 의료, 의대 증원 등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주요 현안을 논의하고도 공식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밀실 합의'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록물관리법 시행령 18조 9항에 따르면 회의록 작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주요 회의는 회의록 등 근거 자료를 남기도록 명시돼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감한 이슈라 정부와 의사단체가 모종의 합의를 거친 듯 하나 정상적인 논의 구조는 아니다"며 "국가적인 의사 결정 과정일수록 더욱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논의를 진전시켜야 했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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