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파장] "우리가 노예인가"…'전공의 대타' 공보의는 두렵다

조소현, 김영봉 2024. 3. 1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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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경험도 없는데 응급·중증 환자 맡겨
"준비 없이 생소한 업무, 억만금도 싫어"

14일 보건복지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한 '의사 집단행동 대응 대체인력(공보의·군의관) 지원·운영 지침'에 따르면 정부는 공보의·군의관의 수당 지급 요건을 규정했다.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더팩트ㅣ조소현·김영봉 기자] 정부가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파견한 공중보건의사(공보의)와 군의관을 부적절하게 운영한다는 지적(본지 3월14일자 보도 '의료공백 차출' 공보의 법적보호는 민간 떠넘기기…복지부 지침 논란)이 나오는 가운데 본격 진료에 들어간 공보의들은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인턴 업무 경험조차 없는 공보의들은 준비도 없이 전혀 다른 분야 업무에 투입돼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 명령으로 파견 나온 공보의들은 전날부터 본격 진료를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 11일 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4주간 전국 20개 병원에 군의관 20명과 공보의 138명을 파견했다. 각 병원에 파견된 이들은 하루 내지 이틀의 짧은 교육만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

공보의들 사이에선 생소한 업무에 투입되는 두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보의는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공중보건업무에 종사할 것을 명령받아 군 복무를 대신하는 의사다. 보건의료 취약지역 보건소나 보건지소, 지방의료원 등에서 3년간 진료업무를 담당한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대공협)에 따르면 이번에 파견을 명령받은 공보의는 일반의 92명, 전문의 46명으로 주로 일반의다. 일반의는 이제 막 의대 6년을 마치고 인턴도 하지 않은 이들이다. 의사면허만 있을 뿐 수련 경험이 부족한데도 급박한 상황에서 응급·중증 환자를 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서울 '빅5' 병원에 파견된 2년차 공보의 A 씨는 지난 주말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차출돼 다음 날 바로 기차 타고 병원에 왔다며 당황스러워했다. A 씨는 "전공의는 교수들 지도 아래 수련하고 전문성을 쌓는 의사인데, 그 빈자리에 들어가는 게 모순"이라며 "우리처럼 1차 병원에 종사하는 일반의와는 전혀 다른 분야다. 너무 준비된 게 없는 상태에서 병동에 혼자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주 80시간 근무와 법적 책임을 두고도 "말 그대로 우리를 노예로 보는 느낌이다. 병원에서 '80시간 일할 애들 왔다'는 말도 있었다. 도와주러 온 입장인데 부려 먹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갑자기 몸이 힘들어지면 판단력과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어 환자에게도 위험할 수 있다"며 "병원에선 확실히 소속 의사를 보호하는 측면이 있는데, 제가 그런 보호를 받을 것이란 확신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

복지부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의사 집단행동 대응 대체인력(공보의·군의관) 지원·운영 지침'을 내려보냈다. 지침은 파견 공보의·군의관의 근무시간을 주 80시간으로 명시하고 법적 보호 책임을 민간이 대부분인 병원에 맡기는 내용을 담고 있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성환 대공협 회장은 "비단 공보의, 군의관 뿐만 아니라 모든 파견 근로자는 원청에서 보호해주는 것이 맞다"며 "파견을 명한 중수본(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에 지속적으로 법적 보호를 요청했고 지침에 반영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미진한 것 같아서 아쉽다. 대공협 차원에서 법적 보호와 관련해 서류가 미비한 병원들에 이를 준용해달라고 전달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14일 공보의들 사이에선 생소한 업무에 투입되는 두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 /더팩트DB

주 80시간 이상 일하는 파견근무에 따른 처우를 두고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공보의들이 주로 불만을 제기하는 건 숙박비와 식비, 일비 등 출장비다. 복지부 지침에 따라 숙박비는 파견 지역에 따라 차등을 둬서 서울의 경우 하루 10만원, 광역시는 8만원, 그 외 지역은 7만원을 지급한다. 식비와 일비는 전 지역 공통으로 2만5000원씩 총 5만원을 받게 된다.

이 회장은 "지방에서 올라온 분들은 서울에서 방을 구하기 어렵다"며 "이른바 '빅5' 병원 등은 숙박을 해결해주지만 이런 부분도 병원 재량에 맡긴 상황이라 지역별, 병원별로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공보의 중 전문의들은 과에 따라서 소아응급실을 도맡고 있는 경우도 있다"며 "업무 강도가 낮지 않다. 중증 환자 비율이 높아지면서 긴장도도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온라인에서도 '초짜 선생님 뽑아가서 무슨 대형병원 중환자를 보게 하겠다는 것이냐', '인턴도 안 한 의사들을 응급실에서 일을 시킨다니,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보는 것이냐', '공보의가 무슨 노예냐. 정부는 의사들을 노예로 생각하는 것인가',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책임져야지, 정부가 명령하고 왜 민간에 책임을 지라고 하냐' 등 쓴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서울 대형병원에 파견된 또 다른 공보의 B 씨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억만금을 줘도 싫다"며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이 중요한데 이 부분이 중요하지 않게 다뤄지고 있고 있다. 돈을 안 받더라도 위험한 근무를 안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강조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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