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 회사를 계열사로 품을 순 없어” 주식 살 의무 포기하고 돈은 대겠다는 나이스그룹
임플란트 업체 디오의 대주주(지분율 29.65%)인 나이스그룹이 향후 디오 지분을 추가로 인수해야 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장치를 마련했다. 2018년 계열사를 통해 디오 지분을 인수한 나이스그룹은 디오 인수에 함께 참여했던 재무적 투자자(FI)들이 요구할 시 그들의 보유 지분을 사줘야 할 의무를 짊어지고 있었는데, 이 의무를 최근 제3의 신규 투자사에 넘긴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의무가 사라진 건 아니다. 지분을 직접 사지 않는 대신 수백억원에 달하는 주식 매수 자금은 여전히 나이스그룹이 부담해야 한다. 지분은 다른 제3자가 떠안지만 돈은 나이스그룹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셈이다. 이는 지분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 디오가 나이스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신용평가와 결제, 금융데이터 등을 주로 하는 기업집단이다 보니 임플란트 회사를 아예 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나이스그룹은 디오의 FI들과 풋옵션 변경 계약을 체결했다. 풋옵션이란 주식 등 자산을 미리 정한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앞서 지난 2018년 나이스그룹 계열사인 나이스투자파트너스는 9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펀드 ‘매그넘사모투자합자회사(이하 매그넘)’를 결성해 특수목적회사(SPC) 디오홀딩스를 설립했다. 매그넘에는 나이스뿐 아니라 다수의 FI가 함께 출자했다. 디오홀딩스는 다시 산은캐피탈과 IB캐피탈로부터 인수금융 310억원을 조달해 디오의 구주와 전환사채(CB)를 사들였다. 디오 지분 29.65%를 디오홀딩스가 보유하고 나머지 지분은 기존 오너인 김진철 회장(5.88%), 김진백 대표(0.78%) 등이 나눠 가진 구조다. 즉, 큰 틀에서 ‘나이스→매그넘→디오홀딩스→디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췄다.
당시 나이스그룹은 매그넘에 함께 출자한 FI들과 풋옵션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애초에 회사를 계속 경영하기보다는 다른 곳에 팔아 차익을 얻을 목적으로 디오를 인수했다. FI들은 만약 매각에 실패한다면 나이스그룹에 ‘내 지분을 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었다.
이번에 풋옵션 변경 계약이 체결됨에 따라, FI의 지분을 되사줄 의무는 디오에 새로 투자한 에이치프라이빗에쿼티(PE)에 넘어가게 됐다. 매그넘에 출자한 FI들이 풋옵션을 행사하면 에이치PE는 그들이 보유 중인 디오 주식과 CB를 매입해야 한다. 이 주식과 CB의 가격은 지난해 기준으로 약 240억원이다.
이처럼 풋옵션 의무자는 에이치PE로 변경됐으나, 주식과 CB를 살 돈은 나이스그룹이 대부분 부담해야 한다. 나이스그룹과 김진철 회장, 김진백 대표가 에이치PE의 블라인드 펀드에 658억원을 출자하기로 확약했기 때문이다. 즉, 나이스그룹이 ‘전주(錢主)’로 남되 에이치PE를 내세워 디오 지분을 대신 인수하게끔 복잡한 지배구조를 만든 것이다.
매그넘의 FI들이 풋옵션을 행사하면 에이치PE는 나이스그룹 등에 돈을 요청해 받아 갈 수 있다. 최초 출자는 525억5000만원 한도 내에서 이뤄진다. 그래도 돈이 모자란다면, 135억7000만원을 추가 출자하기로 했다. 출자 확약 한도 총액 가운데 약 438억원을 나이스그룹이 부담한다.
나이스그룹이 굳이 이처럼 복잡한 구조를 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신규 투자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목적이 있다. 에이치PE는 블라인드 펀드에서 700억원을 출자해 디오가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을 인수하기로 했다. 디오 입장에서는 회사 운영자금 700억원이 새로 유입된 셈이다.
디오의 경영권 매각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를 대비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만약 매각이 계속 불발돼 FI들이 풋옵션을 행사한다면, 나이스그룹이 보유한 디오 지분율은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주주가 자회사의 의결지분을 30% 이상 보유하게 되면,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라 해당 자회사는 그룹 계열사로 편입된다. 나이스그룹은 금융 인프라 기업이기 때문에 성격이 다른 치과 의료기기 업체를 그룹사로 편입하길 원치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스그룹은 꾸준히 디오의 경영권 매각을 추진해 왔지만 매번 불발됐다. 디오 주가가 5만원을 넘었던 2021년부터 지분을 팔고자 노력해 왔다. 2022년에는 세심컨소시엄과, 작년엔 제이커브인베스트먼트와 협상을 진행하다 끝내 결렬됐다. 금리 인상과 주가 하락 등이 매각 실패의 원인으로 꼽혔다.
IB 업계에서는 나이스그룹의 디오 매각이 앞으로도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13일 디오의 종가는 2만1000원으로, 나이스그룹이 투자했던 단가(3만7500원)에 한참 못 미쳤다. 회사 실적도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디오의 매출액은 307억원, 영업적자는 60억원으로 어닝쇼크(전망치보다 나쁜 실적)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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