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내가 병역 기피? 허위사실…스스로 물러나는 일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시민사회 측 추천 후보였던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을 '병역 기피'를 이유로 13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임 전 소장은 ‘윤석열 정부 심판론’의 핵심 사건인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의 진실 규명을 촉구해온 인물이다.
임 소장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병역 기피'로 규정한 데 이의를 제기했지만, 더불어민주연합은 이같은 이의 신청을 한 시간여 만에 기각했다. 임 소장은 기각 통보를 받은 직후인 14일 자정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은 이미 대체복무를 인정하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병역기피와 구분하는 선진제도를 갖춘 나라"라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이유로 정당한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람은 제가 마지막이길 바란다"고 썼다.
더불어민주연합은 시민사회 추천 후보 4명 가운데 전지예‧정영이 후보를 '반미 성향'을 이유로 공천을 배제한 데 이어 임 소장까지 3명을 탈락시켰다. 이에 시민사회는 민주당과의 연대를 파기하는 방향까지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사회 측은 11시부터 이에 따른 대책회의에 돌입한다. 다음은 14일 임 소장과의 전화 인터뷰 내용이다.
"컷오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프레시안 : 컷오프를 예상했나.
임태훈 :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국민후보 추천 투표에서 좋은 성적(1위)이 나온 데다가 병역 거부 운동을 통해 제도화시켰기 때문에 시민사회에서는 병역 거부 운동 경력이 플러스(+)면 플러스지, 마이너스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헌법 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데다가 입법부가 법을 통해 병역 거부를 대체복무라는 제도로 편입시킨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선진 사회로 가는 제도적 안착을 시킨 공로도 인정받아 법무부 장관 표창까지 받았다. 그런 운동을 부정한다니 너무 안타깝고 민주당이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정당으로 비춰지는 점도 안타깝다.
프레시안 : 민주당 양심적병역거부 대체로 지지해 왔고 대체복무제도 문재인 정부 때 도입하지 않았나. 당이 신념을 저버렸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임태훈 : 문재인 정부 때 대체복무제가 도입된 게 맞다. 그리고 그에 앞서 이 사안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추진되던 것이고, 노 전 대통령은 대체복무제 도입을 계속 말씀하신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뜻을 이어나가는 당으로서도 본인들 스스로를 부정하는 셈이 됐다.
무엇보다 내가 병역 거부를 했을 당시 변호인이 진선미 의원이었고, 대체복무 법안을 제출하신 분들이 많이 있다. 당시 본회의 표결에서 의결했기 때문에 표결에 참여하신 의원들 스스로가 본인의 결정을 뒤집고 부정한 것이다.
프레시안 : 당이 밝힌 컷오프의 사유가 '병역 기피'였다. 실무자 등으로부터 이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을 들은 게 있나.
임태훈 : 부가적 설명은 따로 없었다. 이의 신청을 밤 11시까지 하라고 했고 12시 좀 넘어 기각 문자가 왔기 때문에 제가 제대로 소명할 수 있는 과정이 없었다. 제가 '병역 기피'를 했다고 한다면, 그건 명백한 허위 사실 적시다. 법적으로 병역을 면탈하기 위해 의료기록을 훼손하거나 한 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병역 기피 의혹이 있는데, 그런 분들과 저를 동급 취급한다는 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큰 모멸감을 느낀다. 저는 병역 기피가 아니라 폭력적인 군대 문화를 바꾸고자 당당하게 내 발로 감옥살이도 했다. 개인의 문제를 떠나서도 36개월 보조 업무를 하며 병역 거부를 했던 이들에 대한 부정이기도 한다.
프레시안 : 국민후보 추천 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1위를 했는데,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임태훈 : 2만3000표를 얻어 1등으로 국민후보에 선출됐다. 가장 합법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통해 비례대표 후보로 선출됐다. 만약 투표 과정이 잘못돼서, 이를테면 부정 투표가 있어서 자격을 박탈한 것이라면 수용하겠지만, 그런 것도 없는데도 민주적 경선 과정을 부정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프레시안 : 당 일각에서는 병역 문제에 더해 성소수자라는 점 때문에 임 소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임태훈 : 당에서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문화적으로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이고, 나는 방송인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공개적으로 활동을 했다. 병역 거부 운동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활동을 숨긴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문제 삼는다면 납득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박정훈 대령 안타까워해…당 판단 지켜보려 한다"
프레시안 : 박정훈 대령이 추천해서 정치를 마음먹게 됐다고 했다. 입후보한 과정을 좀 설명해달라.
임태훈 :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의 실체는 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를 빼기 위해 대통령이 수사에 개입한 것이다. 이는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로 국가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사단장 하나 보호하려고 군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공명정대하게 수사하던 박 대령을 항명죄 수괴로 몰아넣었다. 박 대령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양심적인 공무원을 지키지 못하고, 약자들이 점점 더 억압받는 사회로 갈 것이라는 우려가 모아졌다고 본다. 신범철 국방차관이나 임종득 안보실 2차장이 다 국회로 들어오게 생긴 상황 아닌가. 그들에 맞서서 '박정훈 대령을 지킬 배지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들이 있었다.
프레시안 : 컷오프 후 박정훈 대령과 연락했나. 어떤 반응이었는지 전해달라.
임태훈 : 소통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공유했고 박 대령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안타까워하셨다. 계속 힘내라고 하시고, 저한테 다 잘될 것이라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셨다.
프레시안 : 이미 이의 신청에서 기각됐기 때문에 탈락을 만회할 다른 절차가 없지 않나.
임태훈 : 사실 저는 박 대령을 지키고자 하는 국민적 염원, 그리고 저의 역할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확인했다는 것만도 의미가 크다고 본다. 다만 저의 컷오프 문제와 관련해서 당원들과 비당원을 가리지 않고 비판적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정치와 정당은 생물과 같은 집단이라서 여러 가지 정무적 판단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당의 판단을 지켜보려 한다.
프레시안 : 오전 11시에 시민사회에서 대책회의를 연다고 한다.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 같나.
임태훈 :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저는 경선 과정에서 최다 득표를 얻었고 그 채점표까지 공개됐다.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저를 컷오프시킨 것은 더불어민주연합이 연합체의 합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고, 이는 국민적 불신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은 문제라 그런 지점에서 연석회의가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지켜보려 한다. 그에 따라 저도 추가 입장이나 의견 표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제가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다. 스스로 물러나면 시민 사회 운동진영이 파렴치한 범죄자 집단으로 몰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 : 인터뷰에 응해주어 감사하다.
임태훈 : 저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너무 화가 난다고 하신다. 그래서 괜히 죄송한 마음도 있고 해서 지지자분들을 모아서 '컷오프 파티'라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웃음). 컷오프는 마음 아픈 일이지만, 민주‧진보 진영의 승리를 생각한다면 너무 슬픔에만 잠겨있으면 안 되지 않겠나.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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