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안목이 정치인 수준 좌우한다[시평]

2024. 3. 14. 11: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정치 품격 저질화 갈수록 심각
도덕과 법치는 안중에도 없어
저질 정치꾼의 말꼬리 잡기뿐
부정부패 후보 퇴출이 급선무
그래야 자유·생명·재산 지켜
27일 뒤 총선이 국가 존망 좌우

오는 4월 10일 총선을 27일 앞두고 공천 탈락자들의 탈당과 입당, 그리고 창당 등으로 정치권이 요란하다. 출마 예정자들은 모두 국가의 장래와 공공의 이익을 강조하며 자신이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 당위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비전과 선진국 수준에 걸맞은 정치 품격은 찾아보기 어렵다. 논리와 역사적 고찰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할 이념 다툼도 진영에 갇혀 시답잖은 언변 일색이다.

어느 사회든 자원은 희소하고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또, 인간은 눈앞의 이익은 크게 보고 먼 이익은 작게 본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에 쉽게 유혹된다. 물론 이런 인간의 타고난 성정은 바꿀 수 없으며 선악의 판단 대상도 아니다. 따라서 모든 사회 분석은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대전제로 해야 한다.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어떠한 분석이나 정책도 그릇되고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만을 위한 행동은 서로의 협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생존 확률을 낮춘다는 사실을 오랜 세월을 통해 경험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덕과 법이라는 정의의 규칙이 만들어지고 발전된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면서도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의의 규칙은 인간이 절대적 정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므로 정의롭지 못한 행동 규칙이 제거되는 과정을 통해 발전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질서 안에서 사회는 문명화되고 진보한다. 그런데도 자기중심적 인간은 정의의 규칙을 위반하고 눈앞의 이익을 얻으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총선철을 맞아 요즈음 정치인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이들에게는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눈앞의 이익만 보일 뿐, 정의의 규칙을 지키는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이익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대다수의 정치인이 개인과 국가와 정부는 무엇이며, 사회질서는 어떻게 만들어져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며, 이를 위해 국회나 행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는 합당한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것 같다. 수준 높은 논설을 펼치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상대방의 언행을 꼬투리 잡아 비판하는 언변만 난무할 뿐이다.

이는 당연히 바로잡아야 할 현상이다. 국가와 공익을 위한다는 그들의 행동이 자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면 인간이 처할 환경을 바꿀 수밖에 없다. 정의의 규칙을 지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명예와 재선 가능성을 키우는 등의 보상을 하고,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불명예, 엄격한 처벌, 낙선시키는 등의 손해를 보도록 하는 것이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정치인은 다시는 정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도록 하는 불문율을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에 정의의 규칙을 지키는 인사들이 모여 정치가 정화되고 품격도 높아진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은, 사라져야 할 정치인도 언제든지 회생할 수 있는 아수라장 정치 생태계를 나타내는 요설(妖說)일 뿐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민주정(民主政)은 전 세계적으로 타락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정 국가의 수는 늘었지만, 질적으로는 떨어졌다. ‘갈등의 시대’로 명명된 2023년 세계 민주정지수의 평균값은 10점 만점에 5.23으로 이전의 최저치 5.29보다도 더 떨어졌다.(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조사기관 인텔리전스유닛(EIU)의 167개국 평가 자료)

지금 대한민국 유권자는 특정 진영의 승패보다는 국가 자체의 존망을 걱정해야 할 때다. 문제투성이인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분법적 논쟁을 떠나 진정으로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사회질서와, 더 나아가 세계 평화를 구현하는 이념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정치 선진화를 구현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져야 할 때다.

그것은 곧 크기는 작지만, 질적으로는 수준 높은 ‘작은 정부’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점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이 가진 지식·관심·품격을 판단하고 선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 선진화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일 것이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