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산소통 안에서 살았던 ‘소아마비 폴’, 희망 주고 떠나다

조해영 기자 2024. 3. 14. 11:3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72년 동안 커다란 철제 산소통에서 살았던 미국 남성이 숨졌다.

이로 인해 호흡이 어려워지자 폴은 얼굴과 목만 겨우 내놓을 수 있는 철제 산소통 안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폴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 '개를 위한 3분: 철제 산소통 안의 내 삶'이라는 책을 냈다.

3분 동안 밖에서 스스로 호흡하면 강아지를 선물해 주겠다는 약속을 시작으로, 그는 철제 산소통 밖에서의 호흡 시간을 하루 최대 4∼6시간까지 늘려갔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70여년 동안 철제 산소통 생활에도
변호사·작가 꿈 이뤄…78살로 사망
2018년 4월27일 폴 알렉산더가 미국 댈러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72년 동안 커다란 철제 산소통에서 살았던 미국 남성이 숨졌다. 그는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호흡을 도와주는 원통형 기계 장치를 이용해야 했지만, 변호사와 작가의 꿈을 이루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미국 텍사스주 출신으로 철제 산소통(아이언 렁·iron lung)에서 한평생을 보낸 폴 알렉산더가 11일(현지시각) 78살로 사망했다고 13일 외신들이 보도했다. 폴은 ‘철제 폐의 사나이’, ‘소아마비 폴’ 등으로 불렸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난달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철제 산소통 안에 있는 폴 알렉산더의 모습. 모금·후원 플랫폼 ‘고펀드미’ 갈무리

1946년생인 그는 6살이던 1952년 소아마비에 걸려 목 아래로 전신이 마비되는 후유증을 얻었다. 이로 인해 호흡이 어려워지자 폴은 얼굴과 목만 겨우 내놓을 수 있는 철제 산소통 안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커다란 원통 형태로 통 안의 압력을 조절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폐로도 호흡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기구다. 일종의 구형 인공호흡 장치로, 소아마비 백신이 나오기 전이었던 당시 대부분의 소아마비 환자는 이 철제 산소통에 의지했다고 한다.

2018년 4월27일 폴 알렉산더가 미국 댈러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그의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AP 연합뉴스

1950년대 후반부터 소아마비 백신이 보급되면서 철제 산소통을 쓰는 환자들이 줄었고, 철제 산소통을 대신할 인공호흡기도 등장했다. 다만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폴은 그사이 흉부 근육이 너무 약해져 다른 기계를 오랫동안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폴은 2022년 전 세계에서 철제 산소통을 가장 오래 이용한 사람(등재 당시 70년)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소아마비에 걸린 어린이들이 철제 산소통 안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영국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폴은 평생 철제 산소통 안에 갇혀 있지만은 않았다. 매일 철제 산소통을 이용해야 하기는 했지만 하루 몇 시간가량은 철제 산소통 밖에서 호흡하는 법을 배웠고 공부를 이어갔다. 손을 쓸 수 없기에 입에 펜과 붓을 물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홈스쿨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경제학 학사와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에는 변호사가 돼 휠체어를 타고 실제 법정에 출석하기도 했다.

폴의 인생은 장애인을 보기 흔치 않았던 시절 ‘편견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2020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폴은 “첫 대학교 수업에 들어갈 때 죽을 만큼 두려웠다. 당시에는 (공공장소 등에) 장애인이 전혀 없었다. 어디를 가든 나뿐이었다”며 “나는 항상 내가 (장애인) 집단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에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과 항상 싸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는 “당신의 배경이나 마주한 어려움과 상관없이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내 이야기는 당신의 과거와 걸림돌(장애)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말하기도 했다.

폴 알렉산더는 틱톡 계정을 만들어 세상과 소통하기도 했다. 틱톡 갈무리

폴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 ‘개를 위한 3분: 철제 산소통 안의 내 삶’이라는 책을 냈다. 책 제목인 ‘개를 위한 3분’은 폴이 어린 시절 철제 산소통 밖에서 숨 쉬는 방법을 배울 당시 간호사가 했던 말에서 따온 것이다. 3분 동안 밖에서 스스로 호흡하면 강아지를 선물해 주겠다는 약속을 시작으로, 그는 철제 산소통 밖에서의 호흡 시간을 하루 최대 4∼6시간까지 늘려갔다. 이 책을 쓰는 데는 무려 8년이 걸렸다고 한다.

폴의 지인들은 그를 ‘긍정적인 사람’으로 기억했다. 폴의 오랜 친구인 대니얼 스핑크스는 “폴은 웃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가진 ‘긍정의 힘’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에이피(AP) 통신에 말했다. 폴의 동생인 필립 알렉산더는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감을 줬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고 썼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