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사외이사들, 연임 돌아가며 상호 추천… 이사회 고질적 병폐 여전

임기 만료 사외이사 절반 연임
사외이사끼리 서로 후보 추천
은행권, 이사회 고질적 문제

대구은행 본점 전경. /대구은행 제공

대구은행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상호 추천·연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대구은행의 사외이사 절반이 임기 연장됐는데, 이 과정에서 임원추천후보위원회(임추위) 소속 사외이사끼리 재선임 후보를 추천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구은행은 사외이사들이 임추위에서 본인의 임기 연장 안건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아 법적인 절차의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구은행에서 불법 증권계좌 개설 등 금융사고 발생으로 이사회의 일부 책임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사외이사들이 자정 노력 없이 관례로 기존 사외이사의 임기를 늘려줬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구은행 임추위는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4명 중 2명의 연임을 결정하고 오는 28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 이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 이번에 임기가 연장된 2명의 사외이사는 모두 임추위 위원이다. 대구은행의 임추위는 사외이사 재선임 및 신규 사외이사 후보자를 선정하고 자격을 검증해 최종적으로 이사회 합류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연임이 예정된 사외이사들이 본인들의 연임을 결정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에 따라 본인의 연임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의결권도 행사하지 않아 법적인 절차를 모두 지켰다.

금융감독원 역시 “재선임 후보로 올라온 사외이사가 본인의 재연임 결정에 대한 표결에는 제외됐다”라며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금융사지배구조법 제17조 5항은 ‘임추위 위원은 본인을 임원 후보로 추천하는 임추위 결의에 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조선DB

법적인 절차의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대구은행 임추위는 은행권 이사회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호 추천’ 문제가 반복됐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외이사 연임을 결정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현재 대구은행의 임추위에서 유일하게 임기가 1년 남은 사외이사 A씨가 사외이사 재선임 후보로 B씨를 추천했다. B씨는 또 다른 임기 만료 예정 사외이사 C씨를 재선임 후보로 추천했다. 임추위에서 함께 활동한 사외이사들이 서로의 연임을 추천하면서 결국 B씨와 C씨는 재선임 후보로 결정됐다.

이사회의 상호·셀프 연임 문제는 비단 대구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은행의 이사회에서도 이러한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 이사회 독립성 및 안정성을 위해 금융사지배구조법은 사외이사 임기를 최장 6년까지 보장하는데, 사외이사들이 서로를 재선임 후보로 추천하며 임기를 연장하는 일이 암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외이사 선출 과정을 제지할 만한 수단은 거의 없다. 은행 경영진에서도 이사회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사외이사 교체 등을 강하게 요구하기는 어렵다. 사외이사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자정 노력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사회의 상호·셀프 연임을 막기란 쉽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사외이사의 상호 추천 문제는 오래전부터 거론된 문제다”라며 “금융 당국이 나서 이사회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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