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으로 그려낸 기억 속의 풍경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4. 3. 1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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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강물 위로 드리웠다.

메마른 겨울, 도시의 외곽에서 우연히 마주칠 법한 풍경이다.

작가는 작업을 한 날짜를 제목으로 삼은 '20240307' 앞에서 작가는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다. 뒤늦게 작가가 됐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노동집약적인 걸 하자 싶어 선택한 방법"이라며 "펜으로 그리는 작업은 고통을 안겨주지만, 반복의 행위는 명확한 위안을 준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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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랑 기획 ‘자연 회귀적 열망’
모혜준 우병윤 이상덕 이채영 4인전
이채영 ‘숨’ [선화랑]
앙상한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강물 위로 드리웠다. 메마른 겨울, 도시의 외곽에서 우연히 마주칠 법한 풍경이다. 어두운 채도로 먹으로 그린 ‘숨’은 이채영 작가(40)가 반복적으로 그려온 나무, 덤불, 저수지, 늪 등을 사용해 만들어낸 현실과 비현실이 뒤엉킨 풍경화다. 풍요로운 도시의 외관과는 대비되는 낯설고 생경한 감각을 선사한다.

작가는 “구상화처럼 보이지만 제 안에선 비구상처럼 보이는 풍경이다. 물에 비친 나무의 모습은 심연을 표현하고자 했다. 뒤집힌 나무가 내면 깊은 곳을 은유한다”라고 설명했다.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화랑들의 기획전은 한국 미술의 내일을 한 발 앞서 볼 수 있는 기회다. 인사동 터줏대감 선화랑이 4월 13일까지 개성 있는 동양화가 4인을 한자리에 모은 기획전을 연다. 매년 이어지고 있는 ‘예감’ 시리즈의 올해 주제는 ‘자연 회귀적 열망’이다.

1층의 1전시실은 모혜준작가와 우병윤 작가의 작품으로 꾸몄다. 두 작가는 자신만의 재료와 물성, 행위가 조화를 이루며 반복과 중첩의 과정으로 이루어진 추상적인 화면을 선보인다.

모혜준 ‘20240307’ [선화랑]
우병윤 ‘중첩’ [선화랑]
모혜준(52)은 미술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다 다시 붓을 잡은 늦깍이 작가다. 한지 위에 검정 펜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선을 반복해 그어 추상적 도상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작업을 한 날짜를 제목으로 삼은 ‘20240307’ 앞에서 작가는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다. 뒤늦게 작가가 됐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노동집약적인 걸 하자 싶어 선택한 방법”이라며 “펜으로 그리는 작업은 고통을 안겨주지만, 반복의 행위는 명확한 위안을 준다”라고 설명했다.

우병윤(36)은 점, 선, 면, 색 등 기본적 조형요소를 통해 불규칙적인 패턴을 만들어낸다. 석고로 질감을 구현하고 색을 입혀 다시 긁어내는 반복적 작업을 통해 무질서하면서도 조화로운 화면을 완성했다. 미술대학을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작업해온 작가는 로스엔젤레스 헬렌제이, 프란시스갤러리 등 해외에서도 전시를 해왔다. 그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것을 찾기 위해 작업한다”면서도 “추상적인 화폭 속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조화와 균형이다”라고 설명했다.

2층의 2전시실은 이상덕 작가와 이채영 작가의 작품이 걸렸다. 두 작가는 본인의 시각적 경험과 기억에서 기인한 풍경을 묘사하며 심상을 담아낸다.

이상덕(42)의 작업은 얼핏 보기엔 노이즈가 생긴 디지털 화면을 보는 것 같다. 컴퓨터로 이미지를 정교하게 구성해 이를 아크릴 물감과 먹을 섞어 채색한 엄연한 그림이다. 작가는 “디지털 기기가 우리 감각을 흩어놓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착시를 설계했다”고 말했다. 기법적으로도 의미를 담았다. 그는 “콜라주를 선택한게 의미있다. 층을 쌓으면서 여백을 통해 드러내기도 하고 입체적이고 물리적인 화면을 구성했다. 평면 조각이라고 불러도 좋다”라고 말했다.

이상덕 ‘3차선 신기루’ [선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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