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경기 성적 좋아도 걱정이 되는 이유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미국도, 한국도 시범경기에 돌입했다. 2024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제법 친다. 올 시즌 뒤 자유계약(FA) 자격을 얻는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꽤 친다. 아무도 모르게 ‘품절남’이 된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의 방망이도 불을 뿜는다. 그런데 ‘와~’ 하는 느낌표보다 ‘음…’ 하는 물음표가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은 어쨌거나 시범경기 기간이기 때문이다. 시범경기 때 타격감이 올라오면 정작 정규리그 초반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 현장 감독들도 이를 우려한다. 오버페이스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런 사례가 제법 있었다.
올라간 자와 내려간 자
당장 2023년 케이비오(KBO)리그 시범경기만 봐도 그렇다. 2023년 시범경기 타격 1위는 엘지(LG) 트윈스 소속이던 서건창이었다. 옛 사령탑 염경엽 감독을 다시 만난 그는 시범경기 13경기에 출전해 47타수 17안타(타율 0.362)를 기록했다. 오피에스(OPS, 출루율+장타율)는 0.859. 도루도 4개나 했다. 하지만 정작 정규리그 때는 성적이 좋지 못했다. 4월 개막 달에 2할대 타율(0.222)에 그쳤고 5월에는 무안타에 그친 끝에 2군으로 내려갔다. 9월 확대 엔트리 때 1군에 재합류했으나 반등하지는 못했다. 2023시즌 타율은 0.200. 2022시즌(0.224)보다 오히려 좋지 못했다. 서건창은 엘지에서 방출된 뒤 고향 광주를 연고지로 하는 기아(KIA) 타이거즈로 적을 옮겼다.
2023시즌 타격 1위 손아섭(NC 다이노스)의 시범경기 성적은 어땠을까. 그는 시범경기 타율이 0.231(39타수 9안타)에 불과했다. OPS 또한 0.615밖에 되지 않았다. 45타석에서 삼진도 열 차례 당했다. 그러나 시즌 개막 뒤 서서히 예열(4월 타율 0.294)하더니 5월 3할 타율로 올라서고 정규리그 마지막날 타율 0.339를 찍었다. OPS는 0.836. 손아섭은 2022년 때는 시범경기 타율이 0.344(32타수 11안타)에 이르렀는데 정규리그 본게임 때 타율은 0.277에 그쳤다. 타격감을 너무 빨리 끌어올린 느낌이 없지 않았다.
2022시즌 시범경기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당시 타율 1위는 ‘제2의 이종범’으로 평가받으며 화려하게 프로에 입성한 기아 내야수 김도영이었다. 김도영은 시범경기 동안 4할대(0.432·44타수 19안타 2홈런)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OPS는 1.068. 도루 또한 3개를 기록하며 ‘5툴 플레이어’(장타력, 콘택트, 스피드, 수비, 송구 능력 모두를 갖춘 선수)의 면모를 선보였다. 기대치는 한껏 높아졌지만 정작 정규리그 개막 뒤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타이거즈 구단 역사상 처음 고졸 신인으로 개막전 리드오프 역할을 맡기도 했으나 데뷔 달(4월) 타율(0.179)이 2할에도 못 미쳤다. 정규시즌 성적은 타율 0.237(224타수 53안타), 3홈런 19타점이었다.
2022년 시범경기 타율 2위(0.375)는 노시환(한화 이글스)이었는데 정규리그 타율은 0.281에 그쳤다. 다만 2023년에는 달랐다. 그는 시범경기 때 5홈런을 쏘아올리며 이성규(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홈런 공동 1위에 올랐는데, 정규리그 때도 생애 첫 홈런왕이 됐다. 2000년대생 첫 홈런 1위였다. 노시환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이성규는 정작 정규리그 때는 홈런 한 개(109경기)밖에 때려내지 못했다. 시범경기 공동 홈런왕의 희비는 그렇게 갈렸다.
컨디션 조절이 관건
2021시즌 시범경기 타격왕 강백호(KT 위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짧게 치른 시범경기에서 무려 6할대(0.626·16타수 10안타)의 타율을 선보인 그는, 정규리그 전반기 동안 타율 4할을 넘나드는 파괴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도쿄올림픽 때 일명 ‘더그아웃 껌 씹기’ 논란으로 마음에 생채기가 나면서 후반기에는 타율이 곤두박질쳤고, 결국 타격 3위(0.347)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당시 시범경기 타율 2위(0.476)는 조용호(KT)였는데 정작 시즌 때는 타율(0.236)이 뚝 떨어졌다.
늘 잘 치는 타자는 없다. 타격에는 사이클이 있고, 사이클이 바닥을 쳤을 때 얼마나 빨리 반등하느냐가 중요하다. 시범경기 때 ‘날고 기는’ 타자들에게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기선 제압을 해야 하는 정규리그 초반에 타격 사이클이 내림세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시범경기 동안 투수는 야수와 마찬가지로 경기 감각을 찾아간다. 겨우내 새롭게 연마한 구종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새롭게 마주한 타자들의 약점을 파악해가기도 간다. 물론 신인이나 1.5군급 투수들은 100% 전력을 다한다. 감독 눈에 들어서 1군에 비집고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전급 투수들에게 시범경기는 개막 날짜에 맞춰 투구 수와 이닝 수를 늘려가는 장일 뿐이다. 그래서 시범경기에서 이른바 상대 타자들에게 두드려 맞아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본게임에선 분명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2023시즌 시범경기 때 평균자책점 1위(1.20·3경기 15이닝 2자책점)는 외국인 투수 숀 앤더슨(KIA)이었는데 14경기 등판에서 4승7패 평균자책점 3.76을 기록한 뒤 시즌 중반에 방출됐다.
시범경기 팀 순위에 일희일비할 필요 또한 없다. 시범경기 1위의 기세가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어진 사례는 1987년 해태, 1992년 롯데, 1993년 해태, 1998년 현대, 1999년 한화, 2002년 삼성, 2007년 에스케이(SK·현 SSG) 정도뿐이다. 2017년 케이티와 2021년 한화는 시범경기 1위를 하고도 정규리그 꼴찌를 했다. 2023년 시범경기 1위도 한화였는데 정규리그 때는 9위에 그쳤다. 예비고사를 잘 치르고 본고사를 망친 격이다. 혹은 초반부터 너무 힘을 썼거나. 반면 1984년 롯데, 1988년 해태, 1996년 해태, 2013년 삼성은 시범경기 꼴찌를 하고도 시즌 마지막날에는 1위를 했다. 2023년 29년 만에 통합 우승을 차지한 엘지는 시범경기 순위가 3위였다. 키움 히어로즈는 시범경기 때도, 정규리그 때도 최하위였다. 2024년에도 시즌 전부터 ‘1약’으로 구분되고 있다.
시범경기는 모의고사일 뿐
일찍 타오른 장작은 일찍 꺼진다. 야구도 예외는 아니다. 시범경기는 그저 모의고사일 뿐이다. 예방주사일 수도 있고. 올해 시범경기에서는 볼·스트라이크 자동판정시스템(ABS·로봇심판)이 처음 적용돼 진짜 실험 무대가 됐다. 로봇심판에 적응하는 자 리그를 정복할지니, 이 또한 정규리그 개막전(3월23일)이 열리기 전까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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