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인생에는 언제나 '가지 않은 길'이 있다 - "패스트 라이브즈"

이주형 논설위원 2024. 3. 1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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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의 감동은 때때로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주형 논설위원의 '이 순간[The Moment]'은 영화 등 예술 작품 속의 인상 깊은 장면을 통해 작품이 관객과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다양한 앵글로 들여다보는 스토리텔링 콘텐츠입니다.

불교에서 비롯된 한국말인 '인연'을 주제로 세계적 찬사를 이끌어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를 만든 셀린 송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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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모먼트] '할리우드 신데렐라' 셀린 송 감독은 이렇게 썼다
한 순간의 감동은 때때로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주형 논설위원의 '이 순간[The Moment]'은 영화 등 예술 작품 속의 인상 깊은 장면을 통해 작품이 관객과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다양한 앵글로 들여다보는 스토리텔링 콘텐츠입니다.
 


어린 해성과 나영은 내색하진 않지만 서로 좋아하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영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고 하죠. 한국 사람은 노벨문학상을 못 받는다면서요. 소녀는 떠났지만 소년은 소녀를 잊지 못합니다.

청년이 된 해성이 나영을 잊지 못해 소셜미디어로 찾아낸 건 12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또다시 12년이 흐른 뒤, 그러니까 서울에서 헤어진 지 24년 만에야 두 사람은 뉴욕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름도 노라로 바꾸고 미국에서 작가가 된 나영에게는 이미 서양인 남편이 있습니다. 이들의 인연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셀린 송 감독을 만나 "패스트 라이브즈"의 창작 과정을 들어봤습니다.
 
 
노라
한국에는 '인연'이라는 말이 있어. 섭리 또는 운명을 의미해. 구체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말인데, 내 생각에는 불교와 환생에서 온 개념 같아. 만약에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우연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 거야. 왜냐하면 그들 사이에 전생에 뭔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거거든. 두 사람이 결혼까지 한다는 건 전생에서 8,000겁의 인연이 쌓였다는 거야.

불교에서 비롯된 한국말인 '인연'을 주제로 세계적 찬사를 이끌어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를 만든 셀린 송 감독. 아시아계 여성 감독 최초로 데뷔작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려놓은 그녀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썼습니다.

한국어와 영어가 공존하는 이 영화의 대사는 각본가이자 감독인 셀린 송이 한국어가 먼저 떠오르면 한국어로 쓰고, 영어가 먼저 떠오르면 영어로 쓴 겁니다. 그러니까 때론 한국어 대사도 영어로 먼저 써놓고 한국어로 바꾼 거죠.

이런 방식의 창작은 셀린 송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12살까지 한국에서 살았고, 요즘도 종종 한국 예능을 시청하는 셀린이기에 가능한 독특한 작업 방식이죠.


셀린 송
거기서 저는 두 가지 언어로 다 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한국말도 제가 컨트롤하고 싶고 영어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제가 생각이 영어로 되는 부분은 영어를 먼저 쓰고 한국말이 더 맞다고 생각이 드는 부분은 한국말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때 보자'라고 하는 마지막 라인(대사)은 예를 들자면은 영어가 먼저 왔어요. 'See you then'. 그런데 'See you then'이 온 다음에 한국어를 하려고 했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가 '그때 보자'가 가장 맞는 것 같아서 하게 된 것 같아요.

이주형
한국어 대사가 굉장히 현재적이어서 저는 좀 놀랐는데요. 예를 들면 뭐 미쳤다, 당근, 글쟁이해, 빡세네, 또라이 이런 단어를 다 평소에 알고 계셨던 단어예요?

셀린 송
네. 제가 그래도 한국 예능 같은 걸 좀 봐서. 그래서 그 TV 쇼들에서 좀 본 게 있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이주형
진짜요? 그런데 사실은 더 놀라운 거는 이 부분이었어요. 어떤 대사냐 하면,


이주형
사실은 거기는 '지금은'이 더 어울리는 단어고, 그 다음에 '몸적으로 아니면 정신적으로' 그러니까 피지컬리 또는 멘털리, 그 대사도 사실은 '육체적으로 아니면 정신적으로', 이렇게 해야 더 맞는데 이걸 코리안 아메리칸의 적당히 서툰 한국말로 바뀌어져 있단 말이죠. 이거 이걸 감안하고 쓰신 건가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이주형 논설위원 joo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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