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차 초등교사가 말하는 진상 학부모

서울문화사 2024. 3. 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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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교육계의 진상 학부모. 나도 혹시 진상 학부모는 아닐까? 내 아이의 교육을 위해 지켜야 할 학부모의 에티켓에 관한 이야기.

“선생님은 애 안 낳아봐서 몰라요!”

-20년 차 초등교사의 생생 증언

20년째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초등교사 A씨. 학년 초에는 학부모들이 새로 바뀐 담임교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자기 아이가 집에 와서 담임에 대해 본격적인 평가를 시작하면 그때부터 진상 학부모들의 민원이 심해진다. 특히 아이들끼리 문제가 터지면 그때의 대응 방식에 따라 진상 학부모와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학부모로 나뉜다고 한다. 문제 상황에 대해 담임이 아무리 객관적인 태도로 이야기해도 그걸 전혀 받아들이지 않거나 담임에 대한 불만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이 진상 학부모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휴대전화로 전화해 다짜고짜 “어떤 애가 우리 애를 밀쳤는데도 선생님이 안 도와줬다면서요?” 하는 식이다. 이럴 때는 다음 날 상황을 자세히 알아본 후 연락하겠다고 학부모를 진정시킨다. 이렇듯 자기 아이의 말만 듣고 무조건 교사에게 따지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시각에 약을 먹여라’,
‘학원 스케줄이 바뀌었으니 하교 후 꼭 알려줘라’ 등
자잘한 것까지 요구하며 화를 내니 젊은 교사들의 자존감이 낮아지죠.
 요즘 젊은 교사들은 학창 시절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던 이들이라
교사가 아니라도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있어요.
그렇다 보니 똑똑한 교사의 직업 이탈이
예전보다 많아지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Q 학년 초에 진상 학부모들이 기선 제압을 하려고 교사에게 더욱 압박을 가한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현실은 어떤가요?

특히 젊은 교사에게 그러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젊었을 때는 학부모들이 저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저를 만만하게 보고 반말 비슷하게 말을 놓기도 했지만, 교사가 나이를 먹고 경력이 쌓이면 그런 경우는 좀 줄어들어요. 또 애가 없는 교사에게 “애를 안 키워봐서 모르지”라며 학부모들이 되레 가르치려고 들어요. 물론 그런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사실 의사도 그 병에 다 걸려봐서 아는 건 아니잖아요? 전문가로 교육을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단련돼가는 교사로서 경험치가 중요한 건데, 그걸 기다려줄 여유가 없는 학부모가 너무 많아요.

Q 특히 저학년의 경우 교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진상 학부모가 많다고 들었어요.

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겉옷을 안 입고 왔다고 소리 지르며 화내는 경우도 봤죠. 이럴 때 특히 젊은 교사는 당황해 대응을 잘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있어요. “혼자 스스로 겉옷을 챙겨 입을 줄 알아야 학교에 오는 거라고 말하라”고 알려줍니다. “정확한 시각에 자기 아이 약을 먹여달라”, “학원 스케줄이 바뀌었으니 하교 후 꼭 알려줘라” 등 자잘한 것까지 학부모들이 요구하면서 화를 내니까 젊은 교사들의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물론 시간적인 여유가 있거나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교사들이 챙겨줍니다. 하지만 여러 아이가 함께 생활하는 교실의 현실을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저학년의 경우 교사들이 잘 챙겨주는 편이죠. 안타까운 건 요즘 젊은 교사들은 학창 시절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칭찬만 받고 자란 이들이라 학부모에게 싫은 소리를 들으면 정말 힘들어합니다. 교사가 아니라도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있다 보니 똑똑한 교사들의 직업 이탈이 예전보다 많아지는 것 같아 속상해요.

Q 진상 학부모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자기 아이가 집에 와서 어떤 이야기를 하면 사실 확인 전에 무조건 아이 말만 믿어요. 그러고는 주변 학부모들한테 물어보고 잘못된 정보에 휘둘려 이미 판단을 해버리죠.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교사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가장 힘들었던 학부모는 어떤 경우였나요?

한창 이슈가 됐던 웹툰 작가의 경우처럼 그 학부모도 녹음기를 보냈어요. 반 아이들이 자기 아이 욕을 한다고 해서 아이들한테 물어봤더니 일방적인 주장이었고, 상황 파악을 한 후 학부모에게 알렸지만 학부모는 이미 자신들이 믿는 대로 결정을 해버린 상황이었죠. 자기 아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더 예민했던 거 같아요. 반 아이들이 다 거짓말을 한다면서 그럴 줄 알고 녹음기를 보냈다고 하더군요. 나도 듣고 싶으니 당장 다음 날 녹음기를 가져오라고 했죠. 그리고 담임의 동의 없이 녹음한 것과 교권 침해에 대해서는 나도 문제 삼겠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바로 다음 날 학교에 찾아와서 그동안 학교 폭력 등에 대해 걸어놓았던 것들을 다 취하하고 저한테 말도 안 하고 전학을 가버렸어요.

Q 상황이 제대로 해결된 게 아니라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오랜 기간 저녁마다 그 학부모한테 시달렸어요. 전화로 하소연하고 윽박지르는 것을 다 들어주고 있는 상황이었죠. 아마 녹음기를 보냈던 것도 교사가 말 한마디라도 자기 아이에 대해 잘못한 것을 잡아내고 싶었던 거 같아요. 다행히 제가 그 누구에게도 그 아이에 대한 불만이나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문제는 그 학부모가 저를 들들 볶는 동안 그 아이가 반에서 다른 아이들을 힘들게 해도 제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야단치면 또 집에 가서 무슨 말을 할지 걱정돼 소극적으로 아이를 훈육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때 교사로서 자괴감이 너무나 컸어요. 아이들 앞에 당당하게 서지 못했던 교사로서의 부끄러움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학기 초에 새 담임에게 와서 전 담임의 흉을 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저는 웃으면서 ‘어머니, 내년에는 또 새 담임선생님에게
제 흉을 보실 거죠?’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사들도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A교사

Q 학부모가 학교에서 지켜야 할 기본 에티켓은 어떤 것일까요?

먼저 교육에 대해서는 교사에게 일임해야 합니다. “교육과정을 바꿔달라”, “생활기록부를 고쳐달라”는 상식 밖의 요구를 하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자기 아이가 어떤 것을 싫어한다면서 소수의 의견을 마치 전체 의견처럼 말하죠. 물론 교육과정은 바꿀 수 있습니다. 단, 학부모의 요구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기준입니다. 아이들이 원하면 언제든 변경 가능합니다. 또 학기 초에 새 담임에게 와서 전 담임의 흉을 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저는 웃으면서 “어머니, 내년에는 또 새 담임선생님에게 제 흉을 보실 거죠?”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선생님은 젊어서, 아직 어려서 몰라요. 애를 안 낳아봐서 몰라요”라는 말들은 제발 안 했으면 좋겠어요.

Q 교사들도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죠?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없을 때 학부모가 물어보는 것에 대해 답변해주면 학부모도 안심되고 덜 답답한데, 그걸 잘 안 하는 교사도 있어요. 사실 진상 학부모들은 사소한 것에 꽂히는 경우가 많아요. 평소에 대답을 잘해주고 궁금증을 해결해주면 좋은데, 그게 잘 안 되면 뭔가 일이 생겼을 때 “그 교사가 원래 그렇게 싸가지가 없더라”라면서 예전 일까지 들먹이는 거죠. 교사들도 솔직하게 답변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죠. 그런데 사과를 안 해서 문제를 키우는 경우도 많아요. 사소한 실수를 하거나 도의적 책임이 필요한 경우 바로 사과하면 대부분의 학부모는 마음이 풀립니다. 물론 큰 문제나 법적으로 걸리는 것 등 복잡한 일에 대해서는 함부로 사과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작은 일도 걸고넘어지는 학부모가 많으니까 교사들이 몸을 사리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도 사과하면 오히려 잘 해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다수의 선량한 학부모는 교사를 믿고 지지합니다. 교사 역시 아이들을 보면서 힘든 일을 잊어버리게 되죠.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존중하고 협력할 때 우리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기획 : 하은정 기자 | 취재 : 박현구(프리랜서)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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