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의 호황에도 "샴페인 따기 일러"…K-조선 고삐 죄는 이유
[편집자주] 오랜 적자행진이 끝났다. 앞으로 3~4년치 일감도 쌓아뒀다. 슈퍼사이클에 접어든 K-조선 얘기다. 하지만 기업들은 '샴페인'을 경계한다. 정부와 힘을 합쳐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려고 시도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선 3사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손을 잡고 '기술 협의체'를 만든다. 조선업 슈퍼사이클의 지속을 위한 '미래 기술 확보'가 목표다.
13일 정부 및 업계에 따르면 산업부와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은 각 사 최고기술책임자(CTO)급이 함께 하는 협의체의 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존 조선 3사 CTO들이 비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던 것을 정례화하고, 정부까지 포함해 실질적 논의가 오갈 수 있게 협의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협의체를 통해서는 미래 선박 기술에 대한 공유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수소 및 암모니아 선박, 자율운항뿐만 아니라 조선 3사가 추진하고 있는 부유식 소형모듈원전(SMR) 등도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3사 외에도 중형 조선사들까지 협의체의 영역을 확장하는 방안도 거론 중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없어졌던 생산기술연구소장 협의회도 부활시킬 것"이라며 "세부기술 담당부터, CTO급까지 아우르는 프레임을 준비 중인데, 조선사들의 관심사들을 들여다보고 기술을 얼마나 공유할 수 있을지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CTO급 협의체 구성은 지난 5일 산업부가 주최한 'K-조선 차세대 이니셔티브' 회의를 통해 논의됐다. 회의에 참석했던 김성준 HD한국조선해양 대표가 그 필요성을 언급했고, 삼성중공업·한화오션도 사실상 뜻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안덕근 산업부 장관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본격적으로 힘을 받기 시작했다.
안 장관은 이니셔티브 회의 이후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3사간 기술 협의체는 (조선사들의) 공동 대응을 위한 매우 시의적절한 제안"이라며 "산업부도 참여하여 빠른 시간 내 구성·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초격차 확보를 위한 공동대응 협약을 신속히 이행해 나가자"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의 슈퍼사이클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위기 의식에 정부와 업계가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업계는 최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중심으로 3~4년치의 일감을 이미 확보해놨을 정도로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 조선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LNG 운반선 관련 트랙레코드를 천천히 쌓아나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선 업계 인력의 경우 10년 전 대비 반토막이 났을 정도로 아킬레스건이다.
고부가 선박에 보다 집중하기 위한 초격차 기술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인 셈이다. 산업부 역시 조선 3사와 함께 미래 기술 확보에 9조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을 밝힐 정도로 그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상호협력을 보다 강화해 글로벌 미래 시장을 선점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장관이 직접 나서서 조선업에 대한 지원 의지를 밝히고, 고충 해결에 나선 것만으로도 국내 조선사들에게는 큰 힘"이라고 말했다.
조선업이 슈퍼사이클에 들어서고 있다. 기업들은 호황의 달콤함에 마냥 취하지 않고, 기술을 통한 경쟁력 확보에 나서는 데 주력한다.
13일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신조선가 지수는 지난 2월 181.45를 기록했다. 조선업이 슈퍼 호황을 누렸던 2009년 2월(160.36)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다. 이 수치는 2021년까지 130 내외에 머물러 있었지만, 코로나19 엔데믹을 앞둔 2022년부터 치솟기 시작했다.
팬데믹 시기에 밀렸던 선박 주문이 한꺼번에 몰린 영향이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 가스관이 잠기자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에 대한 수요 역시 폭발했다. 전 세계 수주잔량은 2020년 2월 3802척에서 지난달 4598척까지 확대됐다. 3년 전만 해도 척당 1억8000만 달러 수준이었던 LNG 운반선 가격은 최근 2억7000만 달러까지 오르면서 기업들의 수익성 개선까지 이끌고 있다. 지난해 HD한국조선해양은 3년 만에, 삼성중공업은 9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한화오션의 경우 올해 흑자가 유력하다.
국내 조선 3사들은 이미 3~4년 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들어서만 총 69척, 83억8000만달러를 수주했다. 올해 석 달이 채 안 됐지만 연간 수주 목표(135억달러)의 62%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올해 목표(97억 달러)의 39% 수준인 38억 달러의 수주 물량을 확보했다. 한화오션의 경우 5억1000만 달러 규모의 일감을 따냈다.
간만에 찾아온 호황임에도 국내 조선 3사는 미래 기술 확보에 힘을 쓰고 있다. 고질적인 인력난은 여전하고, 중국의 기술 역시 빠르게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0)'를 천명한 만큼, 기술 확보는 조선 업계의 필연적 과제다. 산업의 다운사이클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각종 연구기관을 신설하고, 투자금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함께 이어지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산하 미래기술연구원에 그린에너지연구랩을 최근 신설했다. 부문장으로 나선 박상민 상무를 비롯해 연구원 50여명 등 총 70명 수준의 인원이 모인 것으로 파악된다. 부유식 SMR(소형모듈원자로)를 비롯해 수소, 탄소포집 등 회사가 추진하고 있는 미래형 사업들에 대한 리서치에 보다 힘을 주기 위한 취지다. 액화수소 운반선과 같은 추후 캐시카우가 될 선박들에 대한 연구도 이곳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중공업은 친환경 기술과 자율운항기술 연구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엔 판교와 대덕에 이어 부산에 대규모 연구개발 센터를 구축했다. 한화오션은 최근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총 1조5000억원 중 신기술 개발에 2071억원을 쏟기로 했다. 기존 3개였던 연구소는 성능혁신·미래에너지·제조혁신·스마트솔루션·방산기술연구센터등 6곳의 연구센터로 개편했다. 분야별로 세밀한 혁신기술을 확보하겠단 전략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조선 3사가 최고기술책임자(CTO)급의 기술 협의체 마련에 나선 것 역시 같은 맥락의 시도로 해석된다. 특히 미래 조선 기술 확보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강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만큼, 신사업 기술 공유에 대한 기대감 역시 증폭되고 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상호 간의 출혈 저가 수주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며 "선박의 가치를 높일 친환경, 디지털화, 생산기술 개발 등 기술 투자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이세연 기자 2count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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