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1호선 연장 전곡역 자전거 여행] 연천은 '역사‧자연 박물관', 이제 자전거로 즐기세요
'경기도 북부의 한적한 최전방 도시.' 원래 내가 가졌던 연천에 관한 이미지는 이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껏 연천에 가본 적은 딱 '한 번'뿐이었다. 당시 나는 파주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하고 있었고, 스타렉스를 운전해 37번국도를 따라 연천의 한 부대에 들렀다. 그때 연천에 머무른 시간은 1시간 정도밖에 안 된다. 말 그대로 연천은 내게 '스쳐 지나간' 도시였다.
그때 본 풍경은 단순했다. 내 또래 장병들이 장갑차를 타고 도로를 달렸고, 다리를 건널 땐 병풍 같은 주상절리가 보였다. 아! 그 앞에서 타프 치고 야영하던 사람들도 기억난다. 그리고는… 없다. 이게 전부다. 한마디로 나는 연천과 별 인연이 없었다. 전역한 이후로도 연천에 갈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3월호 수도권 1호선 연장(동두천-연천) 특집이 확정되고, 나는 전곡역 취재를 맡게 됐다. 가장 먼저 지도 어플을 켰다. 초록 검색창에 '전곡역'을 입력했다. 한반도를 닮은 전곡읍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는 마우스 스크롤을 내려 지도의 축적을 작게 만들고, 위성지도 모드로 바꿨다. 그러자 전곡읍을 굽이굽이 감싸고 도는 한탄강이 보였다.
한탄강은 뱀처럼 연천군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하지만 산이라고 할 만한 곳은 없었다. 마땅한 등산로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딜 가야 하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선배, 전곡역에서는 어느 산을 가야 하죠? 도저히 모르겠어요. 제가 모르는 둘레길이라도 있나요? 제발 알려주세요!"
선배가 답했다.
"너는 이번에 산 탈 필요 없어. 대신 자전거를 타. 월간 산 기자 중에 자전거 가진 사람이 너뿐이니 어쩔 수 없다. 찾아보면 꽤 괜찮은 코스가 있을 거야."
다시 지도앱을 켜고 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한탄강을 따라가던 시선은 임진강에서 멈췄다. 이번엔 임진강을 따라 북쪽으로 쭉 시선을 올렸다. 군남댐을 지나자 그 옆으로 연천역이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전곡역에서 출발해 연천역에서 끝내는 자전거 여행을 해볼까?' 지도상으로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곧 여행 계획을 세웠다. 꼼꼼히 GPX 경로 파일을 만들어 전곡역으로 향했다.
연천은 역사와 지질의 박물관
새로 지은 1호선 전철 전곡역 신역사는 말 그대로 번쩍번쩍 빛이 났다. 으리으리한 외관이 마치 미래도시에 온 듯한 기분도 들게 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역 근처엔 오고 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중 절반은 전곡역 인근에 복무하는 군 장병들이었다.
역 구경을 마치고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자전거에 거치된 휴대폰에 GPX 경로를 띄웠다. 헬멧을 쓰고 안장에 올라탔다. 페달을 밟자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마구 강타했다.
읍내를 빠져나와 은대리성으로 향했다. 은대리성은 전곡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차를 타고 먼저 도착한 양수열 사진기자가 말했다. "정말 여기가 맞는 거냐? 아무것도 없는데?" 선배 말대로 '성'이라 할 만한 것이 보이질 않았다. 건물은 고사하고, 아주 자그마한 크기의 '돌곽'만 보였다. 이곳이 은대리성임을 증명하는 것은 입구의 안내판이 유일했다. 나는 안내판의 설명문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은대리성에서는 1995년부터 2003년 사이에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이때 다수의 고구려 토기 일부가 발견됐고, 이것을 근거로 은대리성은 삼국시대에 지어진 고구려의 요새라고 추측할 수 있다.'
개활지처럼 텅 빈 은대리성은 구릉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서쪽으로 산책로가 나있었다. 일단 그 길을 따라 들어갔다. 소나무 오솔길을 지나자 전망대가 나왔다. 차탄천과 한탄강이 합류하는 풍경이 선물처럼 짠!하고 나타났다.
전망대 북쪽으로 '차탄천 주상절리길'이 이어졌다. 덕분에 왔던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운전해야 하는 양수열 선배는 주차장으로 돌아갔고, 나는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내리막을 내려갔다.(선배는 취재 촬영을 위해 차량으로 이동했다) 돌계단이 젖어 있어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걸었다.
아래쪽에는 '삼형제 바위'를 볼 수 있다는 나무 데크가 있었다. 하지만 잡목이 자란 탓에 삼형제 바위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앞으로 볼 것이 훨씬 많았기에 그리 아쉽진 않았다.
"경훈아 다음 코스는 좀 위험하겠다. 조심해서 와라!"
양수열 선배가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먼저 떠났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동이리 주상절리'였는데, 여기 가는 길이 좀 까탈스러웠다.
사실 코스를 짤 때 가장 먼저 '안전'을 생각했다. 그래서 공도가 아닌 자전거길로 이루어진 코스를 만들고자 최대한 노력했다. 하지만 특정 구간은 어쩔 수 없이 공도를 지나야 했다. '은대리성-동이리 주상절리' 구간이 바로 그 구간이었다.
이곳을 지나려면 37번국도를 타고 동이대교를 지나야 했다. 때마침 훈련 중인 전차 여러 대가 보였다. 국도로 들어설 땐 '정말 여기로 가도 괜찮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주행은 '생각보다' 무난했다. 지나는 차가 적었고, 갓길이 꽤 넓었다. 그럼에도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진 않았다. 무사히 통과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한적한 시골길의 비포장도로를 지나자 "우와!" 감탄이 터져 나오는 주상절리가 나타났다. 25m 높이의 절벽이 2km가량 병풍처럼 이어진 '동이리 주상절리'였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연천 한탄강 일대에는 이같은 주상절리가 곳곳에 분포해 있는데, 동이리 주상절리는 그중 현무암 주상절리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 곳으로 유명해 찾는 이가 많았다.
나는 전망대에서 한참동안 이 커다란 절벽을 바라봤다. 군 복무 시절 자동차로 지나가다 우연히 이 주상절리를 보고 "굉장하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6년 전 봤을 땐, 분명 강변 소로에서 사람들이 타프 치고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내려가지 못하도록 강변 입구가 철조망으로 막혀 있었다. 주상절리를 가까이서 보지 못해 아쉬웠다.
주상절리 이후는 본격적인 자전거길
주상절리 이후는 비교적 안전한 길이 이어졌다. 이곳부턴 '평화누리 자전거길 6코스'에 해당하는 자전거길이었다. 도로 오른쪽에는 파란색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 실선이 자전거길임을 명확히 알려줬다. 군데군데 '자전거길 이정표'가 많이 붙어 있었다. 이 이정표들을 따라 10분 정도 달리니 당포성이 나왔다.
당포성은 은대리성과 마찬가지로 고구려 시기 처음 축조된 성이었다. 여기는 비교적 '성'이라고 할 만한 성벽이 남아 있었는데, 이것도 규모가 그다지 크진 않았다. 과거 병사들이 밤낮으로 지키고 서 있었을 자리는 이제 달 모양 조형물과 '나홀로 나무'가 대신 들어서 있었다. 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자 장쾌하게 뻗은 한탄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삭막한 겨울이 아닌 꽃 피는 봄에 왔다면 180도 다른 싱그러운 풍경이 펼쳐질 것 같았다.
내리막을 내려가 숭의전으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이 등을 밀어줘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페달을 굴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갑자기 발이 무거워졌다. 자전거가 고장난 것처럼 서서히 느려졌다. 원인은 코앞에 있었다. 굉장한 오르막이 떡하니 서있었다. 마치 '넘어볼 테면 한 번 넘어봐라!"는 듯한 경사였다. 기어를 최대한으로 낮추고 댄싱을 시작했다. 분명 발은 평소처럼 굴러가는데, 거리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때 먼저 가 있던 양수열 선배가 저 멀리서 소리쳤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더 힘내!"
선배의 응원은 큰 힘이 됐다. 나는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마침내 정상이 보였다. 정상을 오른 나에게는 내리막이라는 달콤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숭의전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내리막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헬멧 구멍 사이로 상쾌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샘물이 있는 주차장에서 숭의전은 가까웠다. 가벼운 오르막을 오르자 조그만 안내소 건물과 함께 몇 개의 안내문이 보였다. 안내문은 숭의전의 역사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숭의전은 조선시대 때 고려시대의 왕과 공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 1397년 처음 지어진 이후 수백 년 동안 개수와 중수를 반복하며 이 자리를 지켰는데, 한국전쟁 중 전소하고 말았다. 1971년에는 관계 문중의 노력으로 숭의전지가 사적 제 223호로 지정됐고, 이후 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됐다.'
숭의전 앞으로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파수꾼처럼 우뚝 서 있었다. 수령 600년이 넘은 이 보호수들은 숭의전 역사를 간직한 진정한 '산증인'임이 분명했다. 숭의전 안쪽으로는 산길을 따라 '경기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 길을 넘으려면 산을 넘어야 했기에, 나는 자전거를 돌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후 지옥 같은 언덕길을 다시 넘어야 했다)
강변 따라 이어진 벚꽃터널길
숭의전 이후부터는 자전거 타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전거길을 따라 군남댐까지 쭉 가면 됐기 때문이다. 보겨울마을로 들어서부터 임진교까지는 차량 한 대도 마주치지 않았다. 덕분에 한결 편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간혹 복병이 등장하긴 했다. 공사 중인 비포장길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자갈이 많은 비포장길은 전날 내린 눈 때문에 완전히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바퀴로 물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첨벙!'하는 소리가 났다. 그때마다 자전거와 다리에 진흙이 마구 튀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싫진 않았다. 자전거와 몸이 진흙으로 더러워질수록 되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한층 강해졌다.
임진강 강변은 천국 같은 자전거길이었다. 사람 하나 없는 포장도로는 마치 비행기 활주로처럼 뻥 뚫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엔진을 달고 날아오르고 싶은 확 트인 곳이었다. 카라반이 많이 세워진 '임진 물새롬랜드'를 지나 임진교를 건너자 또 다른 멋진 길이 나타났다. 강둑을 따라 만들어진 벚꽃터널길이었다.
이곳은 작년 처음으로 '임진강 벚꽃 축제'가 열렸던 곳으로 자전거와 사람, 차량 모두 다닐 수 있는 길이었다. 길의 폭이 넓어 주행하기 편했다. 아직은 꽃과 잎이 없는 황량한 풍경이었지만, 벚꽃잎 가득 핀 봄길을 상상하기엔 충분했다. 이곳을 지날 땐 페달 밟는 다리와 안장의 엉덩이가 저절로 들썩였다. 꽤 흥분됐다.
북삼교부턴 다시 선배와 헤어졌다. 자전거길이 분리됐기 때문이다. 다리를 지나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가니 군남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임진강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군남댐은 우리나라 최전방에 위치한 댐으로 북한의 황강댐 무단방류를 대비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었다. (군남댐이 지어지기 이전에는 북한이 사전 통보 없이 무단방류를 해 목숨을 잃는 사례가 꽤 많았다고 한다) 매년 10~3월 중순에는 갈수기에 대비해 담수를 진행한다는데, 그래서인지 군남댐 근처 강가는 고요했다. 두루미 테마파크를 지나 전망대에 올라섰다. 아까와는 아예 다른 각도의 군남댐이 보였다. 댐 상류 쪽은 얼음덩어리가 둥둥 떠다녔다. 그 풍경을 본양수열 선배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두루미들은 저 댐이 싫을지도 몰라. 군남댐 상류에는 두루미의 주요 서식지인 여울이 많거든. 근데 담수를 하게 되면 수위가 높아져서 여울이 잠기게 돼. 즉, 두루미는 집을 잃게 되는 거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아무쪼록 좋은 방향으로 상생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군남댐을 떠나 마지막 읍내리 고개를 올랐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니 난코스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뚝딱! 오를 수 있었다. 고개에서 연천역까지는 금방이었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신나게 내리막을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연천역 역사가 나타났다.
연천역 옆으로 오래된 급수탑이 굴뚝처럼 우뚝 서 있었다. 급수탑 곳곳에는 한국 전쟁의 상흔(총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담쟁이덩굴로 가득 덮였던 급수탑은 이제 할 일 없이 유유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옆으로 1호선 열차가 서서히 승강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전곡역 자전거 여행 꿀팁!
지하철에 자전거 싣기
토·일·공휴일만 허용, 접이식 자전거는 평일도 가능
일반 자전거의 경우, 지하철 여행은 약간의 제약이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주말과 공휴일에 한정해 자전거 휴대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과 공휴일에도 모든 칸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보통 지하철 맨 앞쪽이나 뒤쪽에 지정된 '자전거 휴대승차 가능 칸'을 이용해야 한다.
다만, 접이식 자전거는 다르다. 1) 길이+너비+높이 합계 : 158cm 이하, 2) 중량 : 32kg 이하의 조건을 만족한다면, 평일에도 접이식 자전거를 휴대하고 승차할 수 있다. 접이식 자전거는 반드시 '접은 상태'로 탑승해야 하고, '끌고' 다녀야 한다. 자전거 휴대승차 가능 칸을 이용해야 하는 것 역시 동일하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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