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막판 뒤집기? 뒷말 무성한 포스코 장인화 체제
"후추위 제시한 기본 요건 미충족…선정 문제 제기"
보국철강 회귀·포스코 패싱 우려에 취임 이후도 부담
국내 재계 순위 5위 포스코 그룹이 6년 만에 새 수장을 맞습니다. 오는 21일 열리는 포스코홀딩스의 정기 주총에서 장인화 전 포스코 사장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이 예정돼 있는데요. 이날 장인화 체제가 공식 출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최근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글래스루이스는 주총을 앞두고 장인화 회장 후보 선임 안건에 찬성할 것을 주주들에게 권한 상태입니다. 여전히 국민연금의 표심이 변수라는 분석이 있기는 하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내주 새 회장으로 첫걸음을 뗄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입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번 포스코 그룹 회장 후보 선임안을 뒤집으려는 기류도 포착됩니다. 일부 인사들이 소위 '막판 뒤집기'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단순히 '일부에 불만의 목소리가 남아 있다'는 수준을 넘어서 꽤 조직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물론 전례를 봤을 때 이런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과거 권오준 회장이나 최정우 회장을 처음 선임할 때도 막판까지 불만의 목소리가 있긴 했지만 원안대로 통과한 것을 되짚어보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주총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꾸준히 흘러나오는 얘기들을 한번 곱씹어볼 필요는 있습니다. 이들이 '막판 뒤집기'에 나선 근거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는 첫걸음을 떼야 하는 장인화 체제에 앞으로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장인화, 기본요건도 충족 못해…외부자문단 요식행위"
앞서 포스코홀딩스의 CEO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는 신임 회장 후보 선정 과정에서 10곳의 서치펌(헤드헌팅 업체)에 후보 추천을 의뢰한 바 있습니다. 후추위는 이때 회장 후보의 자격 요건 목록을 서치펌에 제시했는데요. 최근 재계에서는 관련 내용이 돌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장인화 후보가 후추위가 제시한 자격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따르면 후추위는 '최근까지 경영일선에서 경영감각을 유지한 자'를 후보 선정 대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이사회 고유의 선임 권한에 부당하게 영향을 끼치려 하는 등 포스코그룹의 독립경영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자는 후보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런데 장인화 후보의 경우 이미 3년 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데다가 해외 호화 이사회 건으로 후추위와 함께 고발당했다는 점에서 이런 요건들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후추위도 이런 논란을 예상한 듯합니다. 지난 8일 장인화 전 사장을 회장 후보로 결정했다고 발표하면서 '2021년 주총 이후 현재까지 포스코 자문역을 수행하면서 여전히 경영 현안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강점'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바 있는데요. 3년 전에 물러나긴 했지만 경영감각은 여전하다는 설명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통상 기업에서 퇴임한 임원이 경영 고문으로 있는 경우 실질적인 '자문'을 해주는 등의 역할을 하는 사례는 굉장히 드뭅니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후추위는 이번 회장 후보 선정 과정에서 외부전문가 5인으로 구성한 'CEO후보추천자문단'을 신설한 바 있는데요. 이 자문단에 평가 의견을 의뢰해 공정성을 확보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실제 이 자문단에 참여한 인사에 따르면 후보자들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제공되지도 않았고, 외부 자문단 개개인이 후보자를 알고 있는 경우에만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합니다. 자문단의 역할이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포스코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런 회장 후보 선정 과정에 대해 "신입사원도 이렇게 뽑지는 않는다"고 촌평했습니다. 그는 "도대체 어떤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후보자들을 공정하게 평가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며 "A4용지 3장의 자기소개서와 1시간 정도의 인터뷰가 후추위에 본인을 설명할 수 있는 전부였다고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법 리스크에 포스코 패싱까지…과제 산적
장인화 후보에 반대하는 이들은 한목소리로 사법리스크 우려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앞서 일부 시민단체는 장 후보를 다른 전현직 경영진과 함께 호화 출장 등으로 고발한 바 있습니다. 또 장 후보가 지난 2020년 4월 1조원 규모 자사주 취득 결의에 앞서 최정우 회장 등과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도 고발을 진행했습니다.
사실 포스코 그룹 회장 선출 과정에서 검찰 고발 등의 잡음이 나오는 것은 낯선 일은 아닙니다. 지난 2018년 7월 당시 최정우 회장 후보에 대해서도 국회의원과 시민단체가 나서서 그를 배임과 횡령범죄 방조, 직무유기 등으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최정우 회장 선출 방안이 주총을 통과한 뒤 이런 목소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최근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일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진의 사법리스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바 있는데요. 그는 "포스코홀딩스의 사외이사 전원은 배임과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된 것으로 안다"며 "재임 중 호화 이사회 논란 등에 과거 사외이사 활동이 과연 독립적이었는지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유영숙·권태균 사외이사 재선임안을 상정하기로 한 바 있는데요. 이에 대해 김태현 이사장이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됩니다. 김 이사장은 장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 후보 역시 사외이사들과 마찬가지로 사법리스크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목소리가 여전합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표심은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포스코홀딩스 이사회의 결정에 다시 한번 엇갈린 의견을 냈다는 점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는데요. 기존 최정우 회장의 경우 윤석열 정부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각종 대통령 행사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는 점에서인데요. '포스코 패싱'이라는 단어가 쓰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장인화 체제에서도 여전히 포스코 패싱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관련 기사: 출범 앞둔 포스코 장인화호…국민연금 제동, 순항 변수 될까(3월 5일)
취임 전 사장단 인사 왜?…아직 불안한 '장인화 체제'
장인화 후보 선정 이후 포스코 그룹은 미뤄뒀던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오는 주주총회를 통해 장 후보가 회장으로 공식 취임하기도 전에 사실상 '장인화 체제'가 구축된 모양새입니다. 포스코 그룹 측은 이와 관련해 "현 최정우 회장과 후보자가 서로 공감대를 이뤄 인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한 재계 인사는 "CEO 후보가 주총에서 승인도 받기 전에 그룹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것을 보면 이사회와 경영진의 주주 존중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와 함께 포스코 그룹 내부에서는 장인화 후보의 불안감이 반영된 조급한 인사라는 시선도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최종 후보로 선정된 이후에도 사실상 정부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민연금과 의견이 엇갈리는 등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건데요. 이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체제를 만들려 한 것 아니냐는 의견입니다.
'장인화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그가 정통 철강맨이라는 점에 우려를 표하기도 합니다. 포스코 그룹이 다시 과거 '제철보국'을 외칠 시절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죠. 실제 장인화 후보가 선정된 이후 포스코가 이차전지 등 신사업에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김준형 포스코홀딩스 친환경미래소재총괄은 최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4'에서 이와 관련한 언급을 했습니다. 그는 "장인화 차기 회장 후보도 전체적으로 이차전지 투자 속도를 조절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앞서 포스코 측은 지난 1월 실적발표 행사에서도 "새로운 회장 선임 이후에도 투자를 되돌린다거나 방향을 크게 바꾸거나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장인화 회장 후보의 추천안은 이번 주총에서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다만 주총 직전까지 지속되고 있는 자격 논란은 그만큼 '장인화 체제'가 탄탄하지 않음을 방증할 수 있습니다. 장인화 체제 출범 이후에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해 보입니다.
과연 이번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어떤 선택을 할지, 또 비중이 75%를 넘어서는 소액주주들이 장인화 후보에 얼마나 힘을 실어줄지 끝까지 지켜보시죠.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최지훈 (jhchoi@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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