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젊은 의사들은 왜 떠났나... "채찍만 있는 곳엔 못 돌아가"

윤은숙 2024. 3. 14.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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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모 대형병원 전임의 인터뷰..."수련 시스템 소용없다는 회의감 퍼져"
지난달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2024년도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 참석한 각 병원 전공의 대표 및 대의원이 흰 가운을 입고 있다. [사진=뉴스1]

"병원을 나간 근본적 이유는 의대정원 증원이 아닙니다"

의료대란 발생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병원을 떠난 1만명 전공의 복귀는 쉽지 않아보인다.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의료현장의 비명은 커져만 간다. 그렇다면 왜 젊은 의사들은 병원을 떠난 것일까? 이들은 과연 병원으로 돌아올 수는 있을까?

코메디닷컴은 12일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올해 2월 전공의 수련을 마친 A씨를 만났다. '왜곡' 없이 젊은 의사들의 속내를 들어달라는 게 A씨의 부탁이었다. 그는 개원을 해도 다른 과에 비해 수입이 낮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기피한 과 중 하나를 택한 의사다. 환자의 목숨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A씨는 올해 2월 29일까지 대학병원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이미 전문의 자격증이 있지만, 전임의를 하기 위해 올해 3월 병원과 계약했다. 그러나 의료대란 사태가 악화하면서 사표를 냈다.

문제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정부가 채찍질만 하는 시스템 누가 돌아가고 싶나

A씨는 지금 의료대란의 초점이 '의대정원 증원'에 맞춰져 있지만, 젊은 의사들이 돌아선 근본적 원인은 채찍을 들고 의사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정부의 '통제' 정책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정부가 2월초 발표한 필수의료정책패키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는다"면서 "(이름과는 달리) 자세히 뜯어보면 필수의료 살리기를 위한 구체적 지원책은 없다. 대신 의사들을 어떤 방식으로 통제하는 지에 내용만 가득하다"고 말했다.

지원을 통해 필수의료과를 강화하는 내용은 없고, 여러 규제로 의사들을 필수의료과 선택으로 몰아넣겠다는 정부의 의지만 읽힌다는 지적이다. 다시말해 언제 받을 지는 불분명한 당근과 당장 눈 앞에 선명한 수많은 채찍들만 받아들었다는 느낌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정부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강화를 명목으로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통보'했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시장이 포화될 정도로 의사를 많이 뽑으면 결국 '남은' 의사들이 필수의료과를 택하지 않겠냐는 논리가 기반이 됐다.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이미 필수의료과를 선택한 젊은 의사들을 무너지게 만든 핵심이라고 A씨는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당장 환자의 목숨과 직결되는 진료과들을 '대부분 안가려고 하지만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는 진료과'로 만들었다. 누가 그 과를 전공하고 싶겠냐?"고 반문했다.

'환자의 목숨과 직결된 진료과'이기에 지원을 강화하고 위상을 높여 의사를 모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의사를 더 쏟아부어 경쟁에서 진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만드는 정책이 과연 옳은 것이냐고 A씨는 물었다.

A씨는 "(돈때문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지만) 의사 정원을 늘려서 공급이 늘면 의사의 수입이 줄어드느냐 마느냐는 개인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학에 남아서 필수의료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이 분야에 대한 자긍심으로 환자와 함께 현장에 있겠다는 것을 이미 결심한 사람들이다"라면서 "이런 사람들이 병원을 뛰쳐나간다는 것은 정부의 정책에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정부는 의사 양성에는 돈 안쓰면서... "수련시스템 자체 소용 없단 생각 들어"

2월 초 필수의료패키지가 발표된 뒤 혼합진료금지, 개원면허 도입 등의 정책을 두고 정부의 과도한 통제라는 의료계의 비판이 나왔다. 현재 의사 양성에 들어가는 비용은 개인이나 병원 부담이며, 개원의의 경우 병원 운영에 모든 비용 부담을 의사 개인이 떠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의료 시스템에 일방적이고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에 대해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정부가 의사 양성에 들어가는 비용은 지원을 안하면서 공공재로 취급하면서 의무만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A씨는 "(외국처럼) 의사 양성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없는 상태에서, 의사는 공공재와 같으며 무조건 정부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논리에 젊은 의사들은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캐나다 등에서는 선진국에서는 의사 양성 비용의 상당 부분을 국가와 사회가 분담하고 있다. 의료서비스를 사적 재화로 보지 않고 공공적・사회적 가치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 양성에서 국가의 지원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의사들에게 공공재 역할만을 지속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이 젊은 의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A씨는 설명했다.

전공의 처우개선에 대한 지원이나 수련체계의 전문성 강화 정책이 부족한 것 역시 젊은 의사들을 떠나는 원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A씨는 "예전보다는 전공의 처우가 나아졌지만, 시급으로 계산하면 9600원을 받고 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의대생 수만 늘리고 값싼 노동력을 들이부어서 필수의료과 부족을 채우겠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젊은 의사들 입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처우가 개선이 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할 수 있으며, 전문성 강화 역시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A씨는 강조했다.

그는 "수술이나 의료의 난이도가 높을 수록 철저하게 도제식 시스템이다.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는 엄청난 자원과 노력이 든다. 그런데 이걸 (체계적인 지원없이) 무작정 사람 쏟아붓는다고 해결이 되나. 수련체계로 돌아가봐야 싼 값에 노동력만 제공하고, 수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되니 수련시스템 자체가 소용없다고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결국 수련시스템이 소용없으니 빨리 개원을 해서 자리잡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는 이들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전공의 내부의 분위기를 볼 때 이렇게 통제를 계속이어가면 사태가 정상화된다고 해도 70% 정도만 돌아올 것 다"라고 내다봤다.

A씨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진짜 필수의료과의 명맥이 끊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련체계에 대한 회의가 커지면 젊은 의사들은 정말 오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명맥이 끊어지면 정말 환자의 생명과 연관된 고난이도의 전문의사들의 씨가 마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댜.

그는 의료 현장의 상황은 안타깝고 어서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의사들이 왜 반대하는 지 듣지도 않고 정부가 무조건 의사들을 범죄자로 몰아가면서 상황은 더 악화한 것 같다"고 짚었다. 협상의 여지는 없이 찍어누르기식의 정책으로 정부와 젊은 의사들 간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다.

미지막으로 그는 "정부가 무조건 의사들을 통제하고 압박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전공의들이 돌아올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윤은숙 기자 (yes960219@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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