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최고수 신진서 “나만의 AI 활용법은 공개 불가”

김창금 기자 2024. 3. 1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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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스타 농심배 우승 신진서
삶의 재미로 “바둑” 꼽을 정도 몰입
“나 혼자 잘 살 수 없다” 솔선수범
기존 일인자와 다른 유형 더 매력적
신진서 9단의 차분함과 정확한 언어 선택은 바둑 한길만을 판 외곬의 기사라는 선입관을 깨트린다. 신 9단이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농심배 6연승 역전 우승 순간을 얘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AI(인공지능)하고 두면 어떨까요.”(기자)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신진서)

우문에 현답이다. “AI는 첫수부터 수학적으로 계산한다. 사람은 200수가 넘어야 그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래도 방법은 없을까. 그는 “못 이긴다. 이미 결정이 났다”고 못을 박는다.

지난 5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만난 농심신라면배 6연승 우승의 주인공 신진서의 냉정한 AI 능력 평가다. 그렇다면 인간은 기계에 종속되는 것인가. AI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는가.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신진서는 “AI는 내 친구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또 “인간바둑이 정점의 AI와 두 점을 깔고 두는 정도인데, 앞으로 더 좁혀질 수 있다. AI가 신적인 존재도 아니다. 저부터 더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신진서는 AI와 빗대 ‘신공지능’이라 불린다. 신진서와 싸우는 선수들은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을 느낀다. 올해 농심배 연승을 비롯해 국내외 대회에서 신진서는 거의 지지 않았다. 지난해 88% 이상의 연간 승률은 기록이다. 바둑 언론인 박치문은 “인간적 면모가 없어 보이는 ‘신공지능’이라고 신진서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신진서는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기사다.

이번 농심배 대회에서 신진서는 셰얼하오, 자오천위, 커제, 딩하오, 구쯔하오 등 중국 최강 기사들을 모조리 제압했다. 월등하게 실력이 앞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비공식 세계 바둑 랭킹 시스템인 ‘고 레이팅스(Go Ratings)’에서 신진서는 우뚝하다. 바둑인들이 “똑같은 9단이라도, 차이가 있다”라고 말하는데, 신진서의 극강의 힘 배경에 AI가 있다는 것은 역설이다.

신진서 9단이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l.co.kr

일찍이 신동이었던 신진서는 승부욕과 배움의 열망이 강했다. 지면 밤을 꼬박 새우며 두는 일도 있었다. 신진서는 “알고 보니 당시 중국 최고의 프로기사였다. 꼬맹이인 제가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어요”라며 웃는다.

요즘엔 달라졌다. 그는 “온라인 대국으로 공부하기보다는 AI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다만 AI가 추천하는 최적의 수인 파란색 표시의 블루스폿만을 따라가지 않는다. 신진서는 “블루스폿이나 제2, 제3의 추천 수만 따라가다 보면 공부가 한정적이다. 어떤 기사라도 이렇게는 다 한다. AI를 연구할 방법은 많은데 내가 하는 방식은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하지만 결국 승패는 인간끼리의 대국이라는, 바로 그 지점에 비밀이 있을 것 같다. 그는 “AI는 쉬운 상황에서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변화가 없겠지만, 사람이 느끼는 강도의 차이는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진서 마법’에 매료된 국내 팬들은 그의 공부 비법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만리장성’에 맞서는 일기당천의 신진서가 자신만의 극강의 무기를 노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농심배에서 한국의 역전 우승을 이끈 신진서 9단.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l.co.kr

AI 시대를 주도해 나가는 그의 비결은 실패를 통한 뼈저린 자기반성에 있다. 그는 지난해 란커배 결승전에서 연패했고, 2020년에는 마우스 오작동 착점으로 커제와의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 졌다. 아시안게임 바둑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수확했지만 개인전 동메달의 아픔이 더 컸다.

그는 “약점을 고쳐나가지만 다 극복하지 못했다. 다시 고쳐나간다”고 설명했다. 농심배 역전 우승 과정에서는 거의 허점을 보이지 않았다. 박정상 해설위원은 이를 두고 “전략가적인 면모”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는데, 전투력이나 수읽기, 마무리에 더해 그의 빼어난 국면 운용 능력을 방증한다.

바둑만 두는 그가 느끼는 삶의 재미는 무엇일까. 그는 “바둑”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게임을 가장 재미있어할 때가 시험기간이다. 수능 끝나면 그때의 재미가 없어진다. 나한테는 실전 대국이 시험기간이다. 실전이 멀리 있다고 다른 것을 하면 재미없다. 그래서 늘 바둑을 둔다”고 했다. 산책과 수면 외에 가장 큰 자기관리는 바둑에만 집중하고 몰두하는 것이다.

언어 선택에서 독서량이 많아 보이는 그는 확실히 과거의 일인자와는 달라 보인다. 바둑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영업사원처럼 한국기원을 위해 발 벗고 나선다. 지자체 마라톤 행사도 뛰고, 기부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는 “바둑만 두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상금도 받고 걱정이 없지만, 실력 있는 기사들도 지금 상황이 좋은 것이 아니고, 또 후배들은 앞으로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진서 9단.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l.co.kr

부산에서 서울로 옮긴지 10여년 만에 부모님과 살 집을 전세에서 자가로 최근 마련한 24살의 청년의 말에는 공감과 배려의 울림이 있다. 중국의 프로기사 리저 6단은 이런 신진서를 두고 “인간바둑의 최고 수준이다. 어린이들이 배워야 한다”고 했는데, 그 깊은 뜻을 알 것 같다. 신진서는 중국에서 전성기의 이창호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과거 모든 일인자들의 장점만을 모은 듯한 신진서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프로답게 계속 성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수준은 범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높은 경지일 것이다.

한국 바둑도 그의 움직임과 말 한마디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것 같다. 일인자의 힘이다. 그런 까닭에 ‘다같이 살아야 한다’는 그 대동의 마음을 어떻게 갖게 됐는지, 계속 궁금하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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