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확정 수술’ 외국 원정 안 가도록…양지로 나온 젠더 의료

채윤태 기자 2024. 3. 1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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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섹스(간성) 환자가 있는데, 의료비 지원이 필요합니다. 꼭 도와주세요."

인터뷰에서 만난 트랜스젠더들은 "성확정 수술은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타이로 갈 수밖에 없다"며 "나중에 의사가 되면 우리를 위한 의료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황 교수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문을 연 젠더클리닉에선 성확정 수술을 통한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이 정신적으로도 안정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초진 때부터 정신건강의학과의 분석까지 거치는 등 다학제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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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④ 황나현 고대 안암병원 젠더클리닉 교수
“의사 되면 우리를 위한 의료 생각해줘요”
의대생 시절 만난 트랜스젠더들 호소 듣고
차별 걱정없이 치료받는 병원 만들기 고민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로 죽고 싶다”며
60~70대 돼서 성확정 수술 받으러 오기도
고려대 안암병원 젠더클리닉의 황나현 교수가 지난 1월29일 오후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인터섹스(간성) 환자가 있는데, 의료비 지원이 필요합니다. 꼭 도와주세요.”

2014년, 고려대의료원 의료사회사업팀에 이런 내용이 담긴 장문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이 병원 성형외과 4년차 레지던트였다. 그는 ‘미용성형’이 아니라 “‘성확정(성별확정) 수술’을 전문으로 하고 싶다”며 성형외과에 지원한 특이한 전공의였다. ‘성확정 수술 전문의’란 타이틀을 내세운 의사는커녕, 성확정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조차 찾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 전공의는 2021년 전국 최초이자, 상급 종합병원 유일의 성소수자 전문 클리닉인 ‘고려대 안암병원 젠더클리닉’을 이끌고 있는 황나현 교수다.

황 교수는 대학생 시절 잡지사 기자인 친구의 취재를 따라갔다가, 처음으로 젠더클리닉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인터뷰에서 만난 트랜스젠더들은 “성확정 수술은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타이로 갈 수밖에 없다”며 “나중에 의사가 되면 우리를 위한 의료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황 교수에게 부탁했다.

“한국 의료 수준은 아시아 ‘톱’ 수준인데, 성확정 수술을 받을 곳이 없어 외국으로 가야 하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황 교수는 그때부터 ‘젠더클리닉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돌아온 건 ‘필요한 건 알지만, 가능하겠느냐’는 뜨뜻미지근한 반응뿐이었다. 그래도 굴하지 않았다. 성확정 수술 석학들에게 직접 연락을 해, 2013년 10월 벨기에로 건너가 겐트대학 병원 스탄 몬스트레이 교수에게서 성확정 협진 체계 등을 배워 오는 등 관련 공부를 이어갔다.

고려대 안암병원 젠더클리닉의 황나현 교수가 지난 1월29일 한겨레와 인터뷰 도중 가운에 단 ‘트랜스젠더 프라이드 플래그’ 배지와 ‘유방 재건의 날’ 배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안 되는 일인가’ 싶어 포기하려고 할 때쯤, 2021년 병원에서 답이 왔다. “시대정신에 맞게 한번 해보자”고. 그때부터 젠더클리닉 개소는 일사천리였다. 신바람이 난 그는 2022년 5월 성확정 수술의 대가로 알려진 타이의 사응우안쿠나폰 박사를 만나 수술 방법을 사사하는 등 적극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문을 연 젠더클리닉에선 성확정 수술을 통한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이 정신적으로도 안정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초진 때부터 정신건강의학과의 분석까지 거치는 등 다학제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은 수술이나 호르몬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성소수자들에게도 열려 있다. 황 교수는 “보수적으로 봐도 외래 환자 7%가량이 성소수자인데, 모든 사람들이 차별받을 수 있다는 걱정 없이 찾을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젠더클리닉에선 진료할 때 본명이 아닌 원하는 이름으로 호명될 수 있게 했고, 환자 식별 표기에도 성별을 표기하지 않도록 했다.

젠더클리닉에는 종종 60~70대 노인 환자들도 찾아온다. 황 교수는 “(어떤 사정으로든) 그동안 수술을 못 받다가 찾아온 분들”이라며 “누군가는 ‘그 나이에 수술해서 뭐 하냐’고 할 수도 있는데, 이분들은 ‘태어날 땐 남자(혹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죽을 때라도 여자(혹은 남자)로 죽고 싶다’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황 교수는 성소수자 의료에 더 많은 의사들이 관심을 갖길 바라고 있다. “수술을 마친 환자들에게 ‘생명의 은인이다. 다시 태어난 것 같다’는 이야기를 어떤 성형외과 의사가 들을 수 있겠나. 이 보람 많은 일에 많은 후배 의사들이 관심을 갖고 성소수자 의료에 대한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

<용어 설명>

·인터섹스: 우리말로는 간성. 생식기나 성호르몬과 같은 신체적 특징이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

·성확정 수술: 기존에는 태어날 때 부여된 성별을 바꾼다는 의미로 ‘성전환 수술’이란 표현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트랜스젠더 등이 주도적으로 스스로 느끼는 정체성에 맞게 성을 지정한다는 의미를 담아 이런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한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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