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신비로운 '갈색'...시신으로 만든 물감일지도 모릅니다 [송주영의 맛있게 그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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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영화 '파묘'가 개봉 18일 만에 누적 관객 800만 명을 넘겼다. 파묘는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무덤을 파낸다'는 뜻이다. 생명과 영혼이 빠져나간 시신의 모습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온갖 감정과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장례 의식은 시대, 지역, 문화에 따라 다양하지만, 고대 이집트에선 유달리 특별했다. 죽은 자의 육신이 부활해 생전의 삶 그대로 살아가리라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시신을 방부 처리해 ‘미라(mummy)’로 만들었다. 건조한 기후 탓에 자연건조된 시신에 익숙했던 이집트인들은 시신의 부패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미라가 기이하고 신비로운 대상이었다. 16세기 무렵부터 유럽으로 이집트 미라가 유입됐다. 미라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팔려나갔다. 어떤 미라는 약재가 됐고, 어떤 미라는 공연장에서 구경거리로 해체됐다. 심지어 어떤 미라는 화가의 물감이 됐다. 바로 미라의 피부를 갈아서 만든 갈색 물감, ‘머미 브라운(mummy brown)’이다.
오해가 불러온 미라의 오용
고대 로마 철학자 플리니우스가 집필한 과학사전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는 미라가 효능 있는 약재로 소개됐다. 희귀 약재였던 '역청(bitumen·석유에서 유래하는 검은색 점착성 물질)'이 미라화 과정에 사용됐다는 추측 때문이었다. 12세기 페르시아의 한 과학자도 미라의 피부가 검게 변한 건 역청 때문이라고 봤고, 미라가 역청의 대체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청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무미야(mumiya)는 방부 처리된 시신을 뜻하는 '머미(mummy·미라)'가 됐다. 썩지 않는 미라의 몸에 신비한 생명력이 있다고 믿은 서유럽에서는 수백 년 동안 이집트 미라를 약재로 여겼다. 18세기부터 약재 상점에서 미라의 판매가 감소한 것은 '치료 효과 없음'이 확인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즈음부터 미라는 안료 제조자들이 찾는 상품으로 바뀌었다.
영국 피츠윌리엄 박물관의 연구원 샐리 우드콕은 15~19세기 문헌과 19세기 영국 물감 제조사 '로버슨앤드코(Roberson&Co)'의 기록물을 토대로 '보디 컬러: 미라의 오용(1996)'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우드콕은 "누가 처음으로 미라로 물감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 300년에 걸쳐 이집트 미라로 안료를 만들고 이를 판매·사용했단 기록들이 존재한다. 이는 상업적인 이유로 이집트의 유물을 파괴했던 유럽인들의 오만함"이라고 꼬집었다. 16세기 말의 이탈리아, 영국 문헌에는 미라로 물감을 만들었다는 짧은 기록이 있으며, 1797년 영국 왕립아카데미 회장 벤자민 웨스트는 "(시신의) 살이 가장 많은 부위에서 가장 좋은 안료가 나온다"고 했다. 1843년의 독일 문헌에는 "미라를 조각 낸 후 물속에 수일 담가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따뜻한 물로 6~8회 거른 뒤 건조하여 분쇄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기의 모든 갈색 안료가 '머미 브라운'이었던 건 아니다. 땅과 흙을 상징하는 갈색은 선사시대부터 흙, 나무, 황화철 등 자연에서 얻었다. 17세기 화가 반 다이크가 애용한 '반 다이크 브라운'은 독일 카셀의 흙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카셀 어스(cassel earth)'라고도 불리는데, 오랫동안 이와 같은 천연 안료로 갈색 물감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갈색이 부패 및 분비물을 연상시켜 기피되던 색상이었고, 여러 안료를 배합하면 채도가 낮은 갈색을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었기에 갈색 안료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좋은 품질의 갈색 안료에 대한 요구가 늘어난 건 17세기 이후부터다. 풍경화의 유행으로 화가들이 빈번하게 찾기 시작했고, 19세기에 휴대용 물감 튜브가 개발되면서다. 그리고 바로 이 시점부터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사용된 머미 브라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머미 브라운 물감의 장례식
19세기 기록에 따르면, 사형수나 부랑자의 시신에 싸구려 첨가물을 넣고 오븐에 구워 만든 가짜 미라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가짜 미라가 유통될 정도로 수요가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세기 영국 화가 에드워드 번-존스(1833~1898)의 아내와 조카가 남긴 회고록에 담긴 1881년 어느 오후의 장례식 이야기다.
화가의 아내 조지아나 번-존스(1840~1920)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남편의 친구이자 화가인 로렌스 알마-타데마(1836~1912)와 그의 가족이 우리 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던 날이었어요. 우리는 모두 이날을 미라 물감의 장례식으로 기억합니다. 식사 후에 물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알마-타데마가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어요. 최근 어떤 안료 제조자가 '자기 작업실에 미라가 있는데 물감으로 만들기 위해 갈아버리기 전에 와서 보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 말에 남편이 경악하면서 '미라로 안료를 만들 리 없어! 그건 그냥 미라 색과 비슷해서 붙여진 거야'라고 소리쳤어요. 곧 그게 사실임을 깨닫고는 작업실로 뛰어가더니 머미 브라운 물감 튜브를 들고 왔어요. 지금 당장 이 물감에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며 다들 밖으로 나오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초록 잔디밭에 구멍을 파고 그 속에 조심스럽게 튜브를 넣었습니다. 아이들이 그 무덤 위에 데이지 꽃을 심어줬어요."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조카는 당시 10대 소년이었다. "이모부가 머미 브라운 물감을 손에 들고 내려왔어요. 이 물감은 죽은 파라오로 만들어졌으니 우리가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러 줘야 한다고 말했어요.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랬듯 우리 모두가 정성껏 장례에 임했죠. 나는 지금도 그 튜브가 어디에 잠들었는지 삽으로 정확히 찾아낼 수 있어요." 10대 소년에게 이날의 기억은 특별했을 것이다. 어린 조카는 훗날 소설 ‘정글북’으로 영미권 최초이자 최연소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디어드 키플링(1865~1936)이다.
라파엘전파와 들라크루아가 사용했던 머미 브라운의 최후
"미라를 적절한 가격으로 구합니다. 최근 미라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안료를 만들기 위해 미라가 필요합니다. 2,000년 된 이집트 미라는 돌아가신 분의 유령과 그 후손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웨스트민스터 홀이나 다른 곳의 고귀한 프레스코를 장식하는 데에 사용될 것입니다."
1904년 6월 30일 자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실린 한 물감 제조사의 광고다. 에드워드 번-존스처럼 대중들도 미라로 물감을 만드는 것을 몰랐던 걸까. 이 광고를 보고 여러 간행물에서 논평이 실릴 정도로 관심이 쏠렸다.
번-존스는 머미 브라운 물감을 가지고 있었던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화가들과 관련이 있다. 라파엘전파는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27~1910)를 중심으로 사실적 복고주의 회화운동을 펼친 단체다. 번-존스의 스승이었던 로세티가 머미 브라운 안료를 자주 구매했으며, 그의 동료 화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외에도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 대표 화가인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도 머미 브라운을 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머미 브라운 안료로 그려진 그림은 명확히 특정된 바 없다. 이를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일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미술품 보존·복원 기관 '게티 보존연구소'의 앨런 페닉스 박사는 2016년 인터뷰에서 "수세기에 걸쳐 시신 방부처리 기법이 조금씩 달라졌고, 각기 다른 첨가물이 사용됐기 때문에 분자생물학적 조사를 해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극히 소량의 '포유류 분자'가 추출될 수 있겠지만 고비용이 드는 분석 조사를 위해 굳이 작품을 손상할 명분도 부족하다. 라파엘전파 화가들과 알마-타데마, 들라크루아의 작품에 공통으로 보이는 '투명하면서도 탁한 갈색'을 보면서 육신으로 부활하지 못하고 캔버스 속으로 들어간 옛날 그 누군가를 가늠할 뿐이다.
놀랍게도 머미 브라운 멸종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로버슨앤드코의 1933년 카탈로그에 머미 브라운 물감이 등장하고 1960년대 초에 마지막 튜브가 판매됐다. 1964년 제조사는 "더 이상 미라를 구할 수도 없지만 그 사용이 적절치 않기에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에 밝혔다. 현재 미국 하버드미술관 '포브스 안료 컬렉션'은 로버슨앤드코가 1930년대 제작한 머미 브라운 물감 튜브를 소장하고 있다.
한때 삶을 살았던 ‘미라화된 사람’
2021년 영국 그레이트노스 박물관의 학예연구원 조 앤더슨의 블로그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다. '미라의 저주' 또는 '초자연적 괴물'로 묘사되는 대중문화 속 '미라'를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자고 촉구하는 글이었다. 2023년 1월 CNN은 영국 대영박물관,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 그레이트노스 박물관 등에서 '미라'라는 용어 대신 '미라화된 사람(mummified person)'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관람자가 과거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의 편견에 대해 돌아보고, ‘미라화된 사람’이 한때 살아 있었던 인간이었음을 느끼게 한다는 취지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어떻게 소개되는지가 중요한 건 미술작품도 마찬가지다. 여러 온라인 글과 유튜브 영상 중에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을 머미 브라운으로 그린 작품이라며 소개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들라크루아가 머미 브라운으로 이 작품을 그렸을 가능성은 있으나 아직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 자칫 머미 브라운 이야기를 괴담처럼 만들어 또 다른 편견을 만들 수도 있다. 머미 브라운을 사용한 화가들이 당시에는 그 실체를 몰랐을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함부로 파묘하지 않으려는 마음처럼, 오래전 그림과 화가도 소중하게 부르고 신중하게 소개되길 바란다.
미술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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