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대통령 오바마의 한 수

2024. 3.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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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대통령이 집무실로 경찰관을 불러 맥주를 대접하며 사과하는 나라. 2009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이야기다. 자기 집 문이 열리지 않아서 강제로 열고 들어가려던 흑인 교수 게이츠와 이를 도둑으로 알고 체포했던 백인 경찰관 크롤리 경사, 그리고 이러한 경찰의 공권력 행사를 공개 비판했던 오바마 대통령이 한 자리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앙금을 푼 것이다. 대통령과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싶다는 '간 큰' 제안을 한 사람은 경찰관이었지만, '통 큰' 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최근 이어지는 입틀막 사건으로 인해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 과잉 경호 및 표현의 자유 억압 논쟁이 뜨겁다. 행사장에서 소란을 피운 사람은 야당 국회의원이었고 카이스트 졸업생은 특정 정당의 당원이기도 했으며, 의료개혁 토론회 입틀막 대상자는 행사의 공식 초청 대상자가 아닌 것으로 파악되지만, 민선 대통령과의 소통 문제나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 보장 주장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표현의 자유도 또 다른 기본권 주체인 다수의 국민을 위한 시간과 장소에서는 내재적 한계를 갖는다.

비록 고성이 오가고 난동에 가까운 행위가 벌어지는 돌발상황에서도 대통령이 여유와 자신감을 갖고 경호원을 제지하거나, 행사 후에 연락해 사태를 정치적으로 유연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에겐 아직 너무 이른 기대일까. 하지만 10여 년 전인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도중 벌어진 광경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대통령의 품격을 기대하는 우리 국민에게는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이민 개혁안 관련 연설 도중에 한 청년이 나서 불법체류 이민자의 국외추방을 멈추도록 행정명령을 즉각 발동해 달라는 '난동'과 맞닥뜨렸다. 오바마의 대응은 놀라웠다. 경호원의 제재 움직임에 대해,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며. 이 청년들은 그대로 두라고 대통령으로서 명령했다. 그리고 청년의 주장에 화답하며, "그래서 우리가 여기 모인 겁니다(That's why we're here)"라고 돌발사태를 진정시켰다.

그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미국은 절차를 존중하는 법치국가라는 점에서, 자신이 국가의 법을 어기면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떠드는 일은 여기서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결코 옳지 않은 일임을 일갈했다. 자신이 가려는 방식은 먼 길(the harder path)을 돌아가는 것으로 그저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민주적 절차(our democratic process)를 따르겠다고 단호히 말한 것이다. 입틀막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 역시 문제 해결에 더 진지했다면 다른 방식을 택했어야 했다. 그저 법과 규칙, 그리고 예의를 어기며 외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만약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도 '유신독재 시대의 외침'을 재현하면 상대방은 저절로 독재자로 각인될 것이라 믿었다면 국민을 너무 쉽게 본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국정 최고의 가치라고 표방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정부 여당은 이번 총선에서 압승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국민에게는 다수당 독재(多數黨 獨裁)의 칼이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겨가는 것 외에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와 여전히 멀리 거리를 둔다면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권획득을 통해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에만 골몰하는 정치권은 국민의 희생을 잊었거나 혹은 국민이 무서운 줄 잊었거나, 둘 중 하나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대통령으로 놓아드려야 한다. 대통령 자신도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품격을 회복해야 한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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