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가 얻고 잃은 것

전혜원 기자 2024. 3. 14.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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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천 파동을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배경에는 민주당 지지율 하락이 있다. 섬세한 설득과 조정이 필요한 정치가로서의 태도가 공천 과정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5일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월4일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40분 가까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3월5일에는 서울 영등포구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앞에서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안에 말을 아끼던 모습에서 벗어나 적극 발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배경에는 민주당 지지율 하락이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이 상승하고 민주당은 하락하는 추세다. 이재명 대표는 지지율 하락 이유에 대해 “국민들께서 공천을 둘러싼 내부 갈등에 실망하시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1월12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출범한 이래 공천 갈등이 위험 수위로 치달아왔다. 민주당은 2월19일부터 현역 의원 평가 결과 하위 20%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평가 결과를 통보하기 시작했다. 3월13일 현재까지 자신이 하위 20%라고 밝힌 민주당 의원 9명(박용진·송갑석·김영주·윤영찬·박영순·김한정·설훈·홍영표·박광온) 모두 공교롭게도 ‘친이재명계’로 분류되지 않는 이들이다. 이에 ‘친명 횡재, 비명(비이재명계) 횡사’라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는 이런 비판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미 1년 전에 아주 세세한 규정을 두고 그에 따라서 객관적인 3자들이 위원회를 만들어서 평가하고 선정하게 되어 있다.” 그가 말한 위원회란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를 가리킨다. 위원장은 송기도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로 지난해 1월 임명됐다. 2022년 이재명 대선후보 직속 균형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인물이다. 위원장을 포함해 총 12명인 이 위원회는 지난해 7월 출범했다. 명단은 비공개다.

민주당의 21대 국회의원 평가 기준은 크게 의정활동(380)·기여활동(250)·공약이행(100)·지역활동(270)으로 나뉜다. 총 1000점이다. 평가 항목 중에서 상임위 출석률이나 입법 완료 법안 같은 수치는 이견이 있기 어렵다. 문제는 의정활동에 배정된 380점 중 70점, 기여활동 250점 중 50점이 ‘정성평가’라는 점이다. 의원들이 서로를 평가하게 하는 ‘다면평가’도 의정활동과 기여활동 중 각각 50점과 40점을 차지한다. 현역의원 평가 총 1000점 중에서 가장 배점이 높은 항목은 지역활동 분야의 ‘지역활동 수행평가(130점)'다. 권리당원 대상 여론조사 50점, 지역 주민 대상 여론조사 80점을 합산해 평가한다.

이재명 대표는 정성평가의 문제는 아니라는 인식을 보였다. 특히 현역의원 평가 하위 20% 통보를 받은 당일 민주당을 탈당하고 이후 국민의힘에 입당한 김영주 전 국회 부의장에 대해 3월3일 “채용비리 부분에 대해서 소명을 못하셨기 때문에 0점 처리 되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기여활동 250점 중 50점을 차지하는 ‘공직윤리 수행실적’ 평가 기준을 보면, 5대 비위(성폭력·음주운전·금품수수·채용비리·갑질)에 연루된 경우 감점할 수 있다. 김 전 부의장이 신한은행 채용비리 의혹을 소명하지 못해 50점을 모두 감점당했다고 이례적으로 평가 이유를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전 부의장은 “경찰 조사도, 검찰 수사도 받은 적이 없다”라고 반발했다.

설령 김영주 전 부의장 건에 다툼의 여지가 없다고 해도, 다른 의원들이 하위 20% 평가를 받은 이유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박용진·김한정 의원이 평가 근거를 공개해달라며 재심을 신청했지만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은 하루 만인 2월22일 이를 기각했다. 같은 날 이재명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동료 의원들의 평가, 거의 0점 맞은 분도 있다고 한다. 여러분이 아마 짐작하실 수 있을 분이기도 한 것 같다”라며 웃기도 했다. 하위 20%에 속한 이들이 의원 간 다면평가에서 점수를 낮게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2023년 9월2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받기 위해 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체포동의안 가결의 여진

이튿날인 2월23일, 민주당 인재위원회 간사로서 공천 작업에 관여하는 김성환 의원이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한 발언은 ‘0점 웃음’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해) 9월 말에 이재명 체포동의안 과정에서 우리 당에 한 서른 분 정도는 가결표를 던졌고, 열 분 정도는 기권 무효표를 던졌지 않나? … 이 요소들이 당시 공직자 평가에 반영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원들의 다면평가나 당원들의 여론조사가 체포동의안 가결 직후인 지난해 11월 이뤄진 만큼, 이에 대한 각 의원들의 입장이 평가의 기준이 됐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의미심장한 주장인데, 체포동의안 가결을 둘러싼 입장 자체가 소위 ‘친명계’와 ‘비명계’를 가르는 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패배 직후인 2022년 6월 ‘수사를 앞두고 방어권 행사를 위해 출마한다’는 ‘방탄 논란’을 무릅쓰며 송영길 전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같은 해 8월에는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2023년 6월에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했다가 석 달 만인 2023년 9월 이를 뒤집으면서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했지만, 민주당에서 일부 이탈표가 나오면서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 한데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재명 대표는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이후 민주당의 ‘내전’은 불가피해졌다.

법원에서도 영장을 기각할 만큼 증거가 불충분한 수사였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정말 ‘검찰의 하수인’처럼 군 것일까? 당시 가결 표를 던졌다고 밝힌 설훈 의원은 2월26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렇게 말했다. “체포동의안을 앞두고 의총(의원총회)을 하면서 ‘이재명 대표가 직접 가결시키라고 얘기를 하는 게 옳다’고 발언했다. (그 이유는) 첫째,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둘째, 만일 이재명 대표가 가결시키라고 하고 국회의원들이 동의해서 가결시키게 되면, 부결시킨 것보다 훨씬 더 큰 위력을 갖는다. 이재명 대표가 ‘나는 잘못한 게 없다. 법정에 가서 당당히 이야기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스스로 불체포특권 포기를 실천하고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상황을 이끌어냄으로써, 정치적 명분도 가져가고 검찰 수사의 부당함도 입증할 수 있다고 봤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훈 의원은 이번 하위 20% 평가가 당시 체포동의안 가결에 대한 복수라고 했다(그는 하위 10% 통보를 받고 민주당을 탈당했다). 물론 체포동의안 표결은 무기명으로 이뤄졌다. 설훈 의원처럼 본인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누가 가결 투표를 했는지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일부 민주당 이재명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체포동의안 가결 표를 던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의 명단이 돌았다. 부정확한 정보이지만, ‘응징’은 가능했다는 뜻이다.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는 지난 총선 때와 비교해 ‘다면평가’와 ‘정성평가’로 이뤄진 ‘의정활동 수행평가’ 배점을 23점(97점→120점) 늘렸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선 하위 20% 의원들의 경선 득표율을 20%만 감산했지만, 이번 총선에선 하위 10%에 대해서는 경선 득표율을 30% 감산하도록 강화하는 당헌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당무위원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를 종합하면, 지난해 하반기에 진행된 비공개 평가위원들의 정성평가와 권리당원 대상 여론조사 등에서,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평가위원과 당원, 의원들의 뜻이 ‘시스템상’으로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경선은 권리당원 대상 여론조사 50%, 지역 주민 여론조사 50% 합산으로 치러진다. 3월6일 밤 발표된 경선 결과, 하위 20% 페널티를 안고 뛴 박광온 의원(3선·경기 수원정)은 책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2021)를 쓴 김준혁 한신대 부교수에게 패했다. 체포동의안 가결 당시 원내대표를 지낸 박광온 의원은 이후 가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바 있다. 비명계 모임 ‘원칙과 상식’에서 활동했고 현역 평가 하위 10%에 속한 윤영찬 의원(초선·경기 성남중원, 전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친명계 비례대표 초선 이수진 의원에게 졌다. 역시 하위 10%로,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 출신이자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김한정 의원(재선·남양주을)도 3인 경선에서 친명계 비례대표 김병주 의원에게 졌다.

민주당 강원도당위원장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선 자격을 얻어 논란이 된 김우영 전 은평구청장은 현역 강병원 의원(재선·서울 은평을)을 꺾었다. 한 지지자는 김우영 전 구청장 페이스북에 “당대표 앞에서 마태복음을 읽으며 공격한 사람을 믿을 순 없지”라는 내용의 홍보물을 올렸다. 강 의원이 체포동의안과 관련해 이재명 대표에게 헌신을 권고했다고 알려진 일을 가리킨다. ‘대장동 변호사’ 중 박균택 당대표 법률특보는 광주 광산갑에서 현역 이용빈 의원을 이겼다. 하위 10%에 속해 경선 득표 30% 감산을 받는 박용진 의원(재선·서울 강북을)은 3자 경선에서 결선에 진출해 ‘친명계’를 자처하는 정봉주 전 의원과 겨루게 됐지만, 감산의 벽을 넘지 못하고 3월11일 정봉주 전 의원에게 졌다.

민주당은 청년 전략특구로 지정한 서울 서대문갑에서 3월7일 공개 오디션 결과 권지웅 전 비상대책위원과 김규현 전 서울북부지검 검사, 성치훈 전 청와대 행정관 3인이 경선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날 저녁 민주당 전략공관위원회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관련 2차 가해 논란이 있다’며 성 전 행정관을 빼고, 차점자인 김동아 변호사를 포함한 3인으로 경선 후보를 바꿨다. 민주당 최고위는 이튿날인 3월8일 이런 내용의 안건을 의결했다. 전국 권리당원 여론조사 70%, 지역주민 여론조사 30%로 치러진 경선에서 김동아 변호사가 3월11일 공천을 받았다. 그는 이재명 대표 측근 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을 변호한 ‘대장동 변호사’다. 3월12일에는 역시 하위 20%에 속한 송갑석 의원(재선·광주 서갑)이, 이재명 대표 멘토로 불리는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후원회장을 맡은 조인철 전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에게 패배했다. 앞서 이재명 대표는 3월6일 발표된 경선 결과에 대해 “민주당은 당원의 당이고, 국민이 당의 주인이란 사실을 증명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반전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이재명 지도부가 내린 판단들, 예컨대 임종석 전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대신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서울 중·성동갑에 전략공천한 것이나 홍영표 의원 컷오프(공천 배제)에 대해 친명계 핵심 의원은 “정치적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는 끝나봐야 안다. 역사를 보면, 당내 논쟁에서 소수파였던 의견도 결론적으로 (선거에서) 이기고 나면 다수파가 된다”라고 말했다. 한 지도부 인사도 “총선에서 지면 대표는 지금 받고 있는 재판에서 유죄가 나온다. 3년 뒤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누구보다 지금 절실할 사람이 대표일 거다”라고 말했다. 총선에서 지면 ‘사법 리스크’가 커지는 만큼, 이기기 위한 일련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자신의 이익과 당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설명이다.

2023년 9월21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자 민주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이 항의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공천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시선

유권자들이 그렇게 보는지는 다른 문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3월4∼6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국민의힘 공천에 대한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43%, ‘잘못하고 있다’ 42%로 팽팽한 반면, 민주당 공천에 대해선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53%로 ‘잘하고 있다’는 응답(32%)을 크게 앞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재명 대표는 2022년 펴낸 자전적 에세이 〈함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습니다〉에서 “나는 겁이 없다. 살아가면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날 때부터 강심장이어서가 아니라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경북 안동의 산골에서 태어나 소년공 시절과 검정고시를 거쳐 성남시장·경기도지사·대선후보에 올라선 소년은, 공천에 반발하며 탈당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입당도 자유고 탈당도 자유다”라고 말할 수 있는 리더임을 드러냈다. 그는 하천 계곡의 불법점유 영업행위를 단속하거나 코로나19 국면에서 특정 종교시설을 봉쇄하는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공천 과정에서 섬세한 설득과 조정이 필요한 정치가로서의 태도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측근들이 대선 패배 뒤 인천 계양을 출마와 당대표 출마를 만류했을 때도 듣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이번 공천 과정에서도 사퇴 요구가 불거지자 “툭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라고 일축했다. 불체포특권 포기도, 대표직 사퇴도, 불출마도 민주당의 정치적 부담은 덜 수 있지만 이재명 대표 개인에게는 불리한 선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재판에 출석하면서, 중앙 선거를 이끌 뿐 아니라 일부 여론조사에서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과 오차범위 안으로 좁혀진 자신의 계양을 지지율도 높여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본인 말대로 이재명 대표는 “이번 공천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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