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포럼] 우리 땅에 남아 있는 일본인 죽음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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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백 전 중등수석교사 = '인생을 돌아보려면 무덤을 가라'는 말이 있듯이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면 아미동 비석마을로 향한다.
마을을 돌다가 '嘉永四 辛亥年(가영4 신해년)' 이란 글이 새겨진 비석에 마음이 꽂혔다.
이런 일본인 공동묘지에 6.25 피난민은 천막을 치고, 판자를 이어 집을 짓고 살았고, 묘지의 각종 상석, 비석은 집의 축대가 되었는데, 이놈은 이 집의 출입구 디딤돌이 되어 남아 있다.
그 생존의 생생한 모습이 아미동 비석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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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ㆍ경남=뉴스1) 허정백 전 중등수석교사 = '인생을 돌아보려면 무덤을 가라'는 말이 있듯이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면 아미동 비석마을로 향한다. 마을을 돌다가 '嘉永四 辛亥年(가영4 신해년)' 이란 글이 새겨진 비석에 마음이 꽂혔다. 어느 가정집 입구의 디딤돌로 쓰이고 있다. 너무나 바닥에 딱~하고 깔려 있어 웬만하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감춰진 비석 중 하나이다.
가영(嘉永)이라는 연호가 생뚱맞게 다가온다. 이게 일본식 연호가 맞는가? 대개 일제강점기나 그 이전 개화기의 일본식 연호는 명치(明治), 대정(大正), 소화(昭和) 정도로 알고 있는데 또 다른 연호라면 언제를 말하는 걸까?
급하게 검색해 본 결과, 가영(嘉永) 4년은 1851년 신해년(辛亥年)이다. 강화도조약에 의해 개항하기 전, 그러니까 조선의 근대화가 시작되기 전의 것이다. 그때의 일본인 묘지 비석이다. "야… 이거!" 생각이 좀 복잡해진다. 아미동에 일본인 공동묘지가 세워졌던 것은 1907년으로 알고 있는데 그 훨씬 이전이다. 어떻게 된 거지?
부산이란 곳은 일본인과의 관계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곳이다. 가영4 신해년(1851) 그때는 부산 땅에 초량왜관이 있었다. 지금의 용두산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남포동, 광복동, 동광동, 대청동 일대이다. 그곳에서 전근대적인 방식이긴 했으나 우리와 일본 사이에 공식적인 거래가 행해지고 있었다. 정해진 관청에서 정해진 양의 물품을 거래하였고, 이런 거래를 위해 일본인 일부는 왜관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곳에서 죽는 일본인도 발생하였다. 그들의 무덤은 대부분 왜관 북쪽의 복병산이었지만 일부는 주변 언덕에 흩어져 있었단다.
'嘉永四 辛亥年(가영4 신해년)' 아미동에 처음 세워졌던 놈이 아니라 복병산, 아니면 다른 곳에 세워졌던 옮겨온 것이다. 쉽게 말해 이장(移葬)한 것이다. 이런 일본인 공동묘지에 6.25 피난민은 천막을 치고, 판자를 이어 집을 짓고 살았고, 묘지의 각종 상석, 비석은 집의 축대가 되었는데, 이놈은 이 집의 출입구 디딤돌이 되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비석마을에서 본 비석 중 가장 오래된 비석이다. 마음에 애잔함이 저려온다.
우리 땅에 남아 있는 왜인들의 흔적, 그들의 죽음 흔적이 집 앞의 디딤돌이 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은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 땅에 그들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진하고도 진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속 쓰릴 뿐이다.
무엇보다 이런 곳을 딛고 살아온 우리의 삶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죽음의 흔적을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이 아련히 다가온다. 일제강점기와 6.25라는 엄청난 고난을 통과하고, 산업화의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 이어져 온 우리의 삶은 잊을 수 없고 지울 수 없다.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다. 그렇게라도 버텨내며 생을 이어가야 했다. 그 생존의 생생한 모습이 아미동 비석마을이다.
시대는 변하고 많은 곳이 살만한 모습을 이루면서 이곳 '산만디'는 비석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주민들은 점차 떠나고 오가는 사람들의 여행 장소로 변해 간다. 여행 온 이들 누구라도 이런 마음 에는 경험을 하겠다. 비석을 한참 보고 있자니 더욱 숙연해지고 먹먹해진다. 이곳에선 누구도 잘남을 자랑할 수 없다. 현재의 윤택함을 뽐내지도 못한다. 죽은 자를 딛고 살아온 우리 삶의 적나라한 모습에 할 말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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