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보려 했는데 새벽”···오늘도 ‘쇼츠지옥’에 빠졌다
“부작용 공론화하고 청소년 보호 필요”
지난 3월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인근의 정보통신기술(ICT) 복합문화공간 앞에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과 20대 대학생·취준생 등 10여명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SK텔레콤이 운영하는 ‘송글송글 찜질방, 도파민 쫙 빼 드립니다’라는 체험 전시장으로, 스마트폰과 강제로 분리되는 경험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입장과 동시에 스마트폰을 보관함에 맡기고 도파민 중독 테스트를 거쳐 명상, 독서, 퀴즈 풀기 등을 한다.
체험장에는 20대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들은 숏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쓴다고 했다. 숏폼은 유튜브의 ‘쇼츠’와 인스타그램(메타)의 ‘릴스’, 바이트댄스의 ‘틱톡’ 등에서 보는 1분 이하의 짧은 영상을 뜻한다. 대학생 A씨(23)는 기상하자마자 쇼츠를 본다. 그는 “쇼츠를 보면 커피를 마신 것 같은 각성 작용이 생겨 아침잠을 쫓는 효과가 있다”며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콘텐츠가 무한대로 나오고 영상의 자극 수위가 높아져 간혹 놀랄 때가 있지만, 손을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B씨(21)는 숏폼을 ‘공기’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뉴스부터 트렌드, 요리, 여행, 자취생활 팁 등 일상에 필요한 정보를 릴스와 틱톡 같은 숏폼에서 얻는다. 그는 “주말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백색소음처럼 틀어 놓고 숏폼을 골라 보느라 밖에 나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어 “숏폼에 익숙해져 정상 속도로 나오는 긴 영상이나 극장 영화를 감상하기가 힘들다”며 “인터넷 강의 같은 학습 영상을 볼 때도 최대한 빨리 속도를 높여 보게 되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말했다.
직장인 C씨(30)는 유튜브 앱(애플리케이션) 깔기와 삭제를 무한반복하고 있다. 그는 “퇴근 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쇼츠를 보기 시작했는데 웃다 보면 새벽 3~4시까지 보고 있을 때가 많다”며 “앱을 지워봤지만, 인터넷 웹으로 들어가 보고 있는 모습에 다시 앱을 깔았다. 지금은 삭제와 깔기를 반복하는 무한루프에 빠진 상태”라고 토로했다.
숏폼 시장이 커지면서 중독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일상에 지장을 받아 앱을 지우는 이들도 있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손가락 하나로 넘기면 계속 등장하는 영상에 홀린 듯이 빠지면서 ‘도파민 중독’이라는 용어도 유행한다.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도파민은 보상(자극)이 있을 때 분비되는데, 숏폼으로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것에 중독된다는 의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류현재 SK텔레콤 매니저(33)는 “스마트폰을 차단하는 것에 대해 이용자들이 거부감을 느낄까 걱정했는데, 우려와 달리 주말에는 2시간가량 대기해야 할 때도 있다”며 “자극을 좇다 보니 깊게 생각하고 집중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에 문제가 있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숏폼 시청 시간 OTT보다 5배 길어
실제로 국내 숏폼 이용자들의 시청 시간은 OTT보다 5배나 많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작년 8월 기준 1인당 월평균 숏폼 사용 시간은 46시간 29분이었다. OTT 플랫폼 이용 시간은 월평균 9시간 14분에 그쳤다. 와이즈앱은 “10분 길이의 영상을 1편 보는 것보다 60초 안팎의 숏폼을 10번 이상 보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숏폼의 인기는 한국 시장 내 유튜브의 성장도 견인하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유튜브 앱 1인당 월평균 이용 시간은 40시간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세계 평균(중국 제외) 이용 시간(23시간)보다 1.7배 이상 많다. 정보통신(IT) 업계는 2021년 7월 중국의 틱톡과 경쟁하기 위해 출시한 쇼츠가 유튜브의 성장을 이끈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2월부터는 쇼츠 제작자들도 광고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유튜브가 지원해 더 많은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해외와 달리 중국 기업 틱톡의 인기가 덜해 사실상 쇼츠가 숏폼의 인기를 독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독 수준의 과도한 숏폼 사용은 주의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뇌 기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뇌가 현실에 둔감해지고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숏폼을 ‘디지털 마약’으로 부르기도 한다. 틱톡 열풍으로 청소년 자살 등의 홍역을 치른 세계 각국에서는 숏폼 중독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대학이 숏폼에 과다 노출된 대학생들의 뇌를 분석한 결과, 집중력 결핍이나 기억력 감퇴 등 뇌 기능 감소와 연관된 수동적 뇌 신경계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김주현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숏폼은 단시간에 잦은 빈도로 도파민 분비를 반복적으로 유도해 뇌의 보상회로를 변화시켜 중독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며 “숏폼으로 생활에 지장이 생겨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보고 금단현상에 힘들다면 넓은 의미의 중독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숏폼 플랫폼은 이용자들이 중독되도록 설계돼 있다. 구글과 메타, 틱톡 등의 빅테크 기업들은 이용자를 붙잡아 두기 위해 알고리즘과 사용자환경(UI), 디자인 등을 설계한다. 이른바 ‘중독 비즈니스 모델’로 고객의 집중력을 뺏어 자사 플랫폼 안에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콘텐츠가 끊임없이 나열되는 무한 스크롤과 자동재생이라는 편리함 속에 사용자가 자신도 모르는 새 무력해지고 있던 셈이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중독 비즈니스 모델로 사업을 하는 빅테크 기업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는 등 관련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틱톡을 상대로 디지털서비스법(DSA)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플랫폼 기업이 유해 콘텐츠를 차단·제거하도록 하고 불공정한 경쟁 행위 등을 막는 등 빅테크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DSA의 골자다. EU는 조사를 통해 청소년 중독과 ‘토끼굴 현상(알고리즘을 통해 비슷한 영상만 반복)’을 유발하는 사업모델, 개인정보보호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DSA를 위반한 기업은 매출의 최대 6%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미국 뉴욕시도 10대를 중독시켜 돈벌이하고 있다며 틱톡과 유튜브, 메타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뉴욕시는 이들 기업이 청소년을 유치·포획·중독시키기 위한 알고리즘으로 공중보건과 사회 서비스에 심각한 악영향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메타는 지난 10월에도 미국 41개 주로부터 같은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
IT 업계 관계자는 “편리한 서비스로 고객이 체류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개인정보 등 빅테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으로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이 문제”라며 “기본적으로 모든 플랫폼은 수많은 심리학자와 엔지니어를 고용해 중독을 유발하는 설계를 하는데, 대부분 이용자는 자신이 중독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선 숏폼 같은 중독 콘텐츠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사회 문제로 드러나 다양한 층위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도 손 놓고 있으면 개인적 문제를 넘어 확증편향을 유발하는 알고리즘으로 사회가 양극화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인 삶의 효능감이 낮아지는 것으로 끝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 중독 비즈니스 사업에 갇힌 사람들
근본적으로는 청소년과 2030세대가 왜 숏폼에 빠져드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의 의지력 문제가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방송 등에서 숏폼 중독 위험성을 경고해온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실제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는 가운데 (경쟁 압박이 심한) 압력솥 같은 사회적 환경에 어릴 때부터 노출돼 가장 손쉬운 자극을 찾을 수밖에 없다”라며 “더 큰 자극을 쫓게 만들어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숏폼을 즐겨보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가성비(가격 대비 만족도)와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를 꼽았다. 분·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며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생활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체화돼 여가 시간도 ‘낭비 없이’ 보내고 싶다는 의지다. 취준생 D씨(26)는 “숏폼은 돈과 에너지, 감정 등을 쓰지 않고 즐길 수 있어 가성비가 가장 높은 놀이”라며 “시성비 측면에서도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 숏폼을 대신할 대체재가 없다”라고 말했다.
숏폼을 둘러싼 사회현상을 디지털 중독 폐해에 대한 넒의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뇌가 발달하는 청소년 시기에는 숏폼 중독이 인지·정서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 해외 사례와 논문에서 확인되고 있는 만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실제로 프랑스와 중국,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는 아동·청소년을 숏폼과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 디지털 중독에서 구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연령에 따라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만들거나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숏폼은 각종 전문가가 도파민을 최대한 뽑아낼 방안을 연구해 만든 중독 비즈니스 ‘끝판왕’으로 디지털 마약과 흡사하다”며 “디지털 미디어 소비 패턴의 변화가 갖고 올 개인적·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선량한 중재자 역할에 나서 디지털 중독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공중보건학적인 연구와 함께 빅테크 기업들이 중독을 줄이는 기술적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모니터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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