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감독원이 더 키운 배터리 아저씨

문수빈 기자 2024. 3.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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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아저씨’ 박순혁 작가가 공매도 토론회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국회와 한국거래소에 이어 이번엔 금융감독원이 그의 손에 마이크를 쥐여줬다.

박순혁 작가 섭외는 다소 의외였다. 지난해 박 작가는 여러 차례 금감원을 저격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2차전지 과열을 경고하자, “평생 검사직에 있던 이 원장은 주식의 고평가 여부를 판단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입씨름만 한 사이가 아니다. 조사·피조사인 관계이기도 하다. 지난해 금감원은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로 박 작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또 그가 2차전지 소재 기업인 금양의 홍보 이사직과 투자일임사 운용본부장직을 동시에 맡은 것을 두고 겸직 금지 위반 혐의가 있는지 조사를 하기도 했다.

그랬던 금감원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개인 투자자와 함께하는 열린 토론회’에 박 작가를 초대한 것이다. 공매도에 대해 마음껏 말하도록 그를 위한 무대를 마련하고, 박 작가의 말을 언론이 받아 쓰게끔 기자들도 불렀다.

금감원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조사 대상자였던 박 작가를 주최 행사에 부른 건 파격 행보라 할 만하다. 다른 정부부처 관계자가 “자체 조사를 한 사람을 토론회까지 부르는 건 우리로선 절대 못 할 일”이라고 말할 정도다.

물론 박 작가에 대한 금감원의 입장이 바뀐 건 아니다. 조사는 조사이고, 토론회는 토론회일 뿐이라는 것이다. 금감원이 박 작가를 토론회에 부른 이유에 대한 힌트는 이 원장의 말에 숨어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 원장은 “시장 참여자들이 함께 모여 공매도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박 작가는 공매도에 대한 오해를 제기하는 역할로 이번 토론회에 캐스팅된 것이다. 대단히 새로운 역할은 아니다. 이미 앞서 있었던 국회와 한국거래소 주최의 공매도 토론회에서도 박 작가는 같은 일을 한 바 있다.

그리고 이미 두 토론회에서 박 작가의 주장은 반박됐다. 여의도에선 박 작가에 대한 판단이 끝났다.

이전 토론회에서 박 작가가 공매도 전산화를 주장하자 송기명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주식시장부장은 “공매도 주문마다 보유 잔고를 실시간으로 점검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하는 국가는 없다”고 했다. 이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과거 실시간 모니터링 구축을 검토하다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고 부연했다.

박 작가의 “(당국이) 공매도 관리를 수기로 하고 있어 각종 불법적인 공매도를 양산하고 있다”는 주장에 송 부장은 “거래소에 들어오는 모든 주문은 전산으로 들어온다”며 “들어오는 모든 주문에 대해서 시장감시시스템에서 스크리닝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그럼에도 금감원은 무리수를 두면서 박 작가를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이날 토론 역시 앞선 토론의 반복이었다. 박 작가를 비롯한 개인 투자자 측이 의혹을 제기하면 금감원과 증권사, 운용사가 한목소리로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은 말 한마디면 되지만, 이를 확인하는 쪽은 인력을 투입해 수일간 조사해야 한다. 후자가 언제나 더 많은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금감원의 태도는 바람직해 보이지만, 정도가 과해지면 휘둘리는 모양새로 비친다.

일전에도 금감원은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들이 불법 공매도를 하고 있다는 개인 투자자들의 주장, 신한투자증권 계좌에 있던 이동채 전 에코프로 회장의 소유 주식이 불법 공매도 때문에 팔렸다는 박 작가의 주장에 수십명의 인력을 투입해 해당 사실을 점검했다. 결론은 두 주장 모두 사실무근이었다.

금감원은 박 작가의 의혹 제기를 멋지게 받아치는 토론회 풍경을 생각했겠지만, 상대방은 등장만으로도 이미 얻은 것이 많다. 전날 토론회로 박 작가는 금융시장 안정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금감원이 인정한 패널이 됐다. 또 박 작가의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토론회 참석 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됐다. 금감원이 마이크의 힘을 저평가하면 그 파급 효과로 시장 참여자의 피로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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