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 "한국사회, 탈북민에 '품' 내줬으면"
'서울 유일 교육부 인가' 탈북민 대안학교
통일 준비하는 실험장, '민원'에 이사 전전
[더팩트ㅣ강서=조채원 기자] "인간 쓰레기들 왜 이리로 모이냐는 말까지 들었다. 탈북민들에겐 '땅'이 아니라 '품'이 필요하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은 지난 12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학교를 옮겨다니면서 탈북민들이 한국사회에 터 잡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 지자체, 지역 주민들이 이들에게 '품'을 내주지 않더라"면서다. 조 교장은 탈북민 학교를 혐오시설화 하는 주민들 반응에 "그 모진 말들을 아이들이 아니라 나만 들은 게 천만 다행이란 생각까지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여명학교는 탈북 청소년들의 남한 사회 적응,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학생들이 적용될 수 있는 교육 과정 모델을 만들고자 설립된 곳이다.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실험장인데 뿌리 내릴 곳조차 없어 헤매고 다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2004년 문을 연 여명학교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교육청 인가를 받은 탈북 청소년 중·고등학교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과 중구 명동의 상가 건물을 거쳐 2019년 은평구에 부지를 매입해 학교 건물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반대 이유는 "탈북 청소년들이 내 자녀와 섞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값 떨어진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2020년 폐교한 서울 강서구 염강초등학교에 둥지를 틀었다. 학습 공간도 넓어졌고 운동장도 있어 학생들 반응이 좋지만 2026년 2월 계약이 만료되면 이곳마저 떠나야 한다.
남북이 통일은커녕 사이가 점점 멀어지다 못해 험악해지는 분위기다. 누군가에게 '통일 준비'는 내 일이, 우선순위도 아닐지도 모른다. 1997년부터 '김일성 시대'를 살았던 탈북민들을 현장에서 부대꼈던 조 교장은 오히려 이런 시기에 통일이 찾아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 선언'으로 내부결속을 다져야 할 만큼 북한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조 교장은 "2015년 여명학교를 방문한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서독 젊은이들이 가장 통일에 관심없었던, 가장 안 좋은 시점에 통일이 됐다'는 말을 했다. 남북한도 어찌될 지 모른다"며 "탈북민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들은 사회통합을 위한 통일 예습, 미래 통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생산적 시도로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조 교장과의 일문일답
-여명학교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2010년 서울시교육청 인가를 받았다. 현재 학생 수는 90여명, 정원은 100명이다. 이들 중 10% 정도만 북한 출생이고 90%는 중국 등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민 자녀다. 3년 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탈북민 수가 급감했고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 강제혼이나 인신매매로 출산한 아이들이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제3국 출생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학비와 기숙사비는 무료다. 운영 예산 1/3은 서울교육청, 1/3은 통일부, 나머지는 후원 모금 등으로 마련된다.
-일반 교육과정과 어떻게 다른가.
탈북 청소년들은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는다. 특히 제3국 출생 아이들은 자신을 방치한 아버지, 홀로 한국으로 간 어머니에 대한 분노 때문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있다. 북한 출생 청소년들이 많을 땐 정말 기본 중 기본, 애국가부터 가르쳤는데 지금은 상처 치유나 심리적 안정에 주력하고 있다. 3국 출생 아이들은 한국어 소통조차 안 돼 한국어 교육 시간을 주 15시간정도 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중국어가 가능한 여명학교 출신 교사 둘을 추가로 고용했고 한-중 통역 두 명을 별도로 두고 있다.
-여명학교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탈북민 75%가 여성이고, 대부분 30~50대 여성이 가장인 한부모가정이다. 학교는 한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엄마들의 짐을 나눠지려 하고 있다. 엄마들이 일하는 동안 육아는 학교가 담당하는, 일종의 '한반도형 늘봄학교'다. 학생 90%가 평일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엄마가 일을 쉬는 주말에 집에 간다.
'어렸을 때 버림받았다'는 감정에 휩싸인 아이와 엄마의 관계가 소원한 가정도 많다. 이런 경우는 엄마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도 말이 먹히지 않는다. 남북한 분단이라는 환경과 엄마의 상황을 아이에게 이해시켜 줄 수 있는 제3자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힘을 키워주는 것도 학교 몫이다.
-한국 사회의 차별적 시선·편견에 상처를 받는 학생들도 있을 것 같은데.
종종 짱깨(중국인을 비하하는 말)라고 놀림 받거나 탈북민 비난 댓글에 상처받는 학생들을 마주한다. 가슴이 아프지만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여명학교도 처음부터 정부, 교육청 지원을 받았던 게 아니다. 처음에는 전액 후원을 받아 운영됐다. 이 학교의 존재 자체가 아무 대가 없이 탈북민 청소년들을 도와주는 좋은 사람이 많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탈북민 자녀 지원은 어떤 방향이어야 하나.
북한 출생과 제3국 출생 아이들 혜택 간극을 좁혀야 한다. 북한 출생자들은 대학 특례입학 대상이고 학비도 지원받는다. 반면 제3국 출생자들은 둘 다 안되는 데다 남자 아이들은 군대도 가야 한다. 특례입학은 탈북민들의 한국사회 적응에 큰 도움이 되는 제도다. 제3국 출생자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바뀌어야 한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은? 1970년생. 서울 노원구 상계동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1993년 사범대학 재학 시절 산업재해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일을 시작했다. 1997년부터는 중국에서 탈북민을 구조하고 남한까지 데려왔다. 같은 해 베트남-중국 국경 사이에서 벌어진 '핑퐁난민사건'을 계기로 신원이 노출돼 귀국했다. 2003년 탈북민 야학 '자유터'를 운영하던 중 탈북 청소년 교육기관 필요성을 느꼈다. 2004년 교회와 단체 등의 지원을 받아 여명학교 문을 열었다. 2004년 교감, 2021년 3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남편은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 이호택 대표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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