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불패·비명횡사 만든 시스템 공천 뒤엔 ‘악마의 디테일’
4·10 총선 공천에서 여야 모두 ‘시스템 공천’을 주장했지만, 국민의힘은 ‘현역 불패’ 행진을 이어간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비주류 현역들이 대거 탈락한 ‘비명(非明)횡사’ 양상을 보였다. 여야 모두 중진과 평가 하위 의원에게 감점을 줬지만 심사 기준과 당원 구성 등에 따라 결과가 딴판으로 나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이 명확히 드러난 셈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1월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현역 의원 심사 평가를 해 하위 10%에 해당하는 의원들은 컷오프 하겠다고 밝혔다. 당무 감사 결과와 당 기여도 등을 반영해 ‘교체 지수’를 매긴 뒤 하위 10%를 쳐내겠다는 것으로, 지역구 현역 90명(불출마 인사 등 제외) 중 7명이 대상이었다. 그러나 공식 컷오프 된 의원은 없었다. 하위 10% 의원들을 컷오프 하지 않고 ‘중진 재배치’란 명목으로 지역구를 바꾸게 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동일 지역구 3선 이상은 15%를 감점하고 현역 의원 평가에서 하위 10~30%일 경우 20%를 감점했다. 그러나 충청권의 한 중진은 3선 감점(15%)과 하위권 감점(20%)을 모두 받았지만 여유롭게 이긴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치러지는 경선은 당원 투표 20%, 일반 국민 여론조사 80%로 결정되는데, 인지도가 높은 현역 의원이 조직표뿐 아니라 일반 여론조사에서도 훨씬 유리했던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보수 정당엔 민주당의 ‘개딸’ 같은 열성 지지층이 존재한 적이 거의 없다”며 “결국 조직과 인지도를 갖춘 현역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영남 등 텃밭 지역은 당원 투표 50%, 일반 여론조사 50%라 신인에게 더 불리했다. 현역 의원이 아닌 도전자의 경우는 경선이 시작돼야 당원 명부를 볼 수 있어 불리한 구조다. 평소에 지역구 관리를 해온 현역 의원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선에 도전했던 한 참가자는 “절대적으로 현역에게 유리한 경선이었다”고 했다.
민주당의 현역 의원 평가에 따른 가·감점 제도가 ‘비명횡사’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지난 총선과 달리 이번에는 ‘하위 10%’에 대해서는 감점을 20%에서 30%로 늘렸다. 경선에서 1~2%포인트 차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은 것을 감안하면 승부에 결정적일 수 있다. 가령 수도권의 현역 의원 A씨는 이른바 ‘수박(비명계)’으로 낙인찍혀 있고, 이번 평가에서 하위 10%에 들었다. A 의원은 지역구 평가와 조직력이 탄탄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경선 결정이 상당히 후순위에 나왔고 여성 신인과 경선을 치르게 됐다. A 의원은 30% 감점, 여성 신인은 25% 가점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A 의원은 낙천됐다. 해당 의원실 관계자는 “출발점이 너무 차이가 나는 싸움이라 뒤집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을의 박용진 의원은 결선 끝에 3%포인트를 앞서고도 이 페널티를 적용받아 최종 패배했다. 하위 평가 사실을 공개한 비명계 박광온·김한정·송갑석·윤영찬 의원 등은 모두 경선 탈락했다.
또 현역 의원 평가에서 비명계가 하위 10%에 몰린 것은 ‘정성 평가’ 항목이 큰 비율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동료 의원과 당직자, 보좌진 등의 평가가 반영되는데, 이 시점이 공교롭게도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 가결’ 파동과 겹쳤다. 한 중진 의원은 “평가 시스템 자체는 잘 만들었지만 이 ‘평가 시점’ 변수는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당원 구조가 친명 성향으로 크게 변한 것도 경선의 유불리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 당원의 절반(약 130만명) 정도가 지난 대선 때 가입해 이들이 확실한 ‘친명 성향’ 성향을 갖고 있는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부분의 경선이 당원 투표 50%,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로 결정되다 보니 조직표가 비명 현역이 아닌, 친명 도전자들에게 오히려 몰렸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 룰은 당 지도부의 의중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지도부의 ‘정치적 코딩’대로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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