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날 깠어?” “그냥 싫어서” 美 보수·진보 마주앉자 웃음 터졌다
전직 폭스뉴스 앵커이자 이른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열광하는 극우 논객 터커 칼슨(55), 전직 CNN 앵커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당 성향의 언론인인 크리스 쿠오모(54)가 한 대담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두 사람은 각각 미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발언자로, 상대를 비난하고 헐뜯는 데 앞장섰던 인물들이다. 상호 불신과 증오로 가득할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흉금을 터놓고 대화했다. 그리고 “대화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우리 안의 집단 사고와 확증 편향을 내려놓자”는 결론에 이르러 미국 사회에 적지 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미국 시민들은 “서로 진솔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이런 대화가 더 많아져야 한다” “두 사람이 당장 팟캐스트를 시작하라”며 열광하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인터뷰하듯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 2시간짜리 영상은 11일 팔로어가 1250만명이 넘는 칼슨의 X(옛 트위터) 계정, 쿠오모가 최근 앵커로 둥지를 튼 뉴스네이션 방송에 같이 올라왔다. 촬영은 칼슨의 플로리다주 자택에서 했다. 칼슨이 폭스뉴스에서 퇴사한 직후인 지난해 4월 쿠오모가 먼저 “대화하고 싶다”며 연락했다고 한다. 퇴사 과정에서 송사를 겪은 두 사람은 같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기도 했다. 칼슨은 “우리는 작년 봄부터 길고도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며 “많은 경우에 동의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다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고 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공격수’였던 두 사람이 이날만큼은 자세를 낮추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쿠오모는 “나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멍청이라 생각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며 “그러면 아무의 생각도 바뀌지 않는다. 당적이나 소속에 상관없이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들, 다른 생각에 열려있는 사람들이 계속 불편한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CNN은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을 강조하는 보도를 꾸준히 내보냈는데, 정반대 입장이었던 칼슨은 매번 쿠오모를 비판하고 조롱했다. 쿠오모가 웃으며 “그때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냐”고 묻자 칼슨은 “솔직히 그때는 CNN이 너무 싫었고 그냥 화가 났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 조롱하면 동물적 스릴을 느끼는 스타일인데 결과적으로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나도 약점이 있다. 내가 정당한 반박이 아니라 치사한 짓을 한 게 맞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날 성소수자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문제, 1·6 의회 습격 사태 등 여러 사안을 놓고 생각이 갈렸지만 서로를 헐뜯거나 장소를 뜨는 일은 없었다. 칼슨은 지난달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인터뷰해 주요 언론들에 “전범에게 마이크를 쥐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쿠오모는 “인터뷰는 당신의 선택”이라면서도 “푸틴 맞은편에 앉아서 많은 사람을 죽인 사실을 지적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채로 있는 식의 행동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칼슨은 “다른 기자들은 나를 나치라고까지 비판하지만 러시아로 들어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라며 “푸틴 앞에서 내가 ‘터프 가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는 게 내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쿠오모는 “1·6 사태도, 이민 문제도, 우크라이나 전쟁도 결국에는 무조건 어느 한 편을 들어야 하고 그 뒤엔 끊임없이 다른 편을 비판해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모든 분야가 다 이런 식인데 우리 사회의 추락을 보여주는 징후”라며 “대화만이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칼슨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미디어 비평가인 제프리 맥칼 드포대 교수는 정치 전문 매체 더힐에 “지독한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이 시청자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품격 있는 대화를 선물했다”며 “중요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서로를 악마화하지 않고 각자 관점을 공유한 것이 신선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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