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전통 美 전시회에 당당히 내걸린 AI 그림

뉴욕/윤주헌 특파원 2024. 3. 1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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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흐름 주도하는 전시회
미리 가본 휘트니 비엔날레 현장
미국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20일부터 시작되는 '휘트니 비엔날레'에 설치된 'xhairymutants(작품명)'.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프린트 했다. /윤주헌 특파원

12일(현지 시각) 오전 10시 30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휘트니 미술관 6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왼쪽 벽면에 걸린 그림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구름이 가득 들어차 있는 맑은 하늘 아래에 사람 형상을 한 물체가 땅까지 붉은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서 있는 뒷모습이었다. 짙은 녹색으로 된 두툼한 점프수트(상·하의가 붙어 있는 옷)를 입고 있는데, 머리가 일반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과하게 컸다. 작품 설명도 특이했다. 일반적인 그림은 작품 이름 밑에 무엇으로 그렸는지 적혀 있지만, 이 작품에는 ‘AI(인공지능) model’을 사용해 인쇄했다고 써 있었다. 이 그림은 예술가 홀리 헌던(Holly Herndon)과 매트 드라이허스트(Mat Dryhurst)가 생성형 AI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헌던 자신의 모습을 AI를 이용해 재해석했다. 휘트니 미술관은 작품 소개에서 “이들의 작업은 AI의 데이터 학습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면서 “AI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했다.

로즈 심슨의 ‘Daughters: Reverence’.

현대 미술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휘트니 미술관은 이날 정식 개막(20일)을 약 일주일 앞둔 ‘휘트니 비엔날레’를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1932년 시작된 휘트니 비엔날레는 현재 2년에 한 번씩 열리며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의 주제를 아울러 현대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명망을 얻은 거장(巨匠)보다는 새로운 시각을 가진 신예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과 현대미술계 생존 작가 중 최고 낙찰가(價) 기록을 보유한 미국 설치미술가 제프 쿤스 등도 휘트니 비엔날레를 거쳐 갔다. 그만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비엔날레에서 AI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실제보다 나은 것(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이다. 휘트니 미술관은 “이번 비엔날레는 ‘실제(the real)’에 대한 생각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AI 기술이 전통적으로 사람이 차지해 온 자리를 대체해 생산물을 내놓거나, 그동안 우리가 ‘진짜’라고 여겨왔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등 전환기적 시대 상황을 맞고 있다. 휘트니 미술관은 “변곡점에 선 것 같은 현재 상황을 작품을 통해 비판적 논의로 인식해 보자는 것이 전시의 취지”라고 했다.

에디 로돌포 아파리시오의 ‘White Dove Let us Fly’.

휘트니 미술관은 단순히 AI 그림 한 점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 미술관의 인터넷 포털이자 온라인 갤러리인 아트포트(artport)에서는 AI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사이트로 연결된다. 이곳에서 사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문자를 입력하면, AI는 그 내용과 관련된 버전의 헌던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타임스스퀘어’라고 입력하면 타임스스퀘어 앞에 서 있는 헌던의 변형된 이미지가 담긴 그림이 나오는 식이다. 휘트니 미술관은 “2024 휘트니 비엔날레는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과 기계 학습 도구를 탐구한다”면서 “작가들은 AI가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바라며 작품을 선보였다”고 했다. 유명 미술관에 AI가 등장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 1층 로비에는 높이 8m짜리 초대형 디스플레이가 걸리기도 했다. 모마가 갖고 있는 근현대 작품 자료 13만8151장을 작가가 AI에 학습시키면, AI는 학습 결과를 재해석한 창작물을 화면에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휘트니 미술관 전경.

아티스트 69명과 2개의 단체가 참여한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에서는 AI 외에도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이나 낙태 등 현대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주제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실험적인 작품들도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휘트니 미술관에서 오랜 기간 큐레이터로 일한 크리시 일즈와 메그 온리는 미국 전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예술가 200여 명을 만났다. 입장료는 성인 30달러, 시니어 및 학생 24달러, 18세 이하는 무료. 매주 금요일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매달 두 번째 일요일은 무료로 운영한다. 비엔날레는 오는 8월 11일까지 열린다.

☞휘트니 비엔날레

1932년부터 시작된 국제 미술 전시회로 미국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2년마다 열리고 있다. 주로 젊은 신예 작가들을 초청하고 있으며 신선하고 파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현대미술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제프 쿤스, 잭슨 폴록 등이 이 전시회를 거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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